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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풀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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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3-17 23:13
공직 ‘윤리’의 회복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773    

차마 두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새 정부의 고위 공직자 이야기다. 매번 그러려니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하다. 

한 달에 1억을 벌었다는 전관 예우 정도는 이제 약과다. 무기 중개상에 취직해 있던 자가 국방장관에, 내내 재벌만 대변하던 사람이 공정거래위원장이라니. 기가 막힌다. 청문회를 어찌어찌 통과한 사람들 중에도 비슷한 인사가 부지기수다.  

그렇게 뽑아 놓은 인사권자도 참 그렇지만, 그걸 덜컥 받는 사람도 민망하긴 매 한가지다. 그나마 있던 염치가 없어진 게 세태라고는 들었다. 하지만, 시대착오라고 하는 봉건적 또는 국가주의적 도덕마저도 아쉬울 정도다. 

그래도 총리나 장관 당사자는 꽤나 억울할 것이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특별히 심하지 않다고 할지도 모른다. 따는 그 말도 맞다. 사실이 그렇다. 

어제까지 ‘을’ 노릇을 하던 산하기관이나 대학에 취업하는 공직자가 어디 한 둘인가. 대놓고 바람막이를 찾는 기업으로 바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에 비하면 이들은 ‘윤리적’이다.  

보건이나 의료 분야도 다르지 않다. 말이 좋아 그렇지, 보건 담당 부처의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이 하는 양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제약기업을 모아 놓은 협회의 대표 노릇을 하지 않나, 퇴직 며칠 만에 로펌으로 옮겨 정부를 상대하는 법을 코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하루 이틀 된 문제도 아니다. 진작부터 공직의 ‘회전문’ 현상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았다. 이를 막자고 만든 장치가 벌써 있었고 겉보기는 제법 그럴싸하다. ‘공직자윤리법’이 만들어진지 30년이 넘었고 그 덕분에 공직자가 퇴직 후에 취업하는 것에는 제한 사항이 많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그걸 공직자의 윤리로 본다면, 오히려 더 많이 허물어지고 망가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청문회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문제가 쏟아져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비판적인 사람들은 아직도 공직자의 윤리를 말한다. 몸가짐이니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란다. 대법관을 퇴임하고 편의점을 하는 사람이 모범으로 칭송 받는 이유다. 

개인의 자세와 태도가 문제라면 해결 방법도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다. ‘도덕’ 교과목이라도 되살려 내야 할까.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윤리 캠페인은 어떤가. 온갖 현수막과 결의대회도 동원할 수 있겠다. 

안타깝지만, 지금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야말로 윤리 교육을 가장 많이 받고 현수막을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이다.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는 또 얼마나 익숙한가. 그러니 국가 윤리를 강화하고 윤리교육을 확대한다고 답이 될 리 없다. 
  
만약 그걸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공직 윤리가 허물어지는 이유는 좀 더 근본적이다. 한 마디로 시장이 공공 영역을 잠식하고 대체한 결과라고 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공공 부문이 시장화 되었고, 시장 논리가 곧 공공의 윤리, 공직의 윤리가 된 덕분이다. 

증거는 수없이 많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보건복지부는 속으로는 돈이 되는 산업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제약산업의 경쟁력과 의료관광의 진흥이 중요한 정책 목표가 된지 오래다. 성장 동력을 키운다고 건강보험의 재정 정책에 시비를 거는 일도 드물지 않다. 

다른 국가기관이나 부처라고 다를까. 경영 공백을 걱정해 재벌에게 면죄부를 주는 검찰과 사법부.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보다는 늘 경제 혼란을 걱정하는 고용노동부. 기업 경영에 발목을 잡는다는 이유로 규제 완화에 앞장서는 환경 당국. 시장친화적인 교육을 강조하는 교육자들.    

산업과 시장의 이해관계가 곧 공공(정부)의 제일 목표처럼 보인다. 공공과 시장의 경계는 모호하고, 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공공은 노골적으로 시장을 대변한다. 이러니 공공 부문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의 ‘영혼’ 역시 충분히 시장친화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시장이 공공을 대체하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공공의 후퇴가 일어난 것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 때부터다. 세계화, 공공부문 개혁, 작은 정부, 효율성 같은 말들이 모두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였다.     

이후 공공부문의 후퇴는 뚜렷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른바 ‘민주’ 정부라고 하는 10년 동안에도 신자유주의의 위세가 어떠했는지 모두가 아는 대로다. 오죽하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시장이 권력이다”고 했을 정도니.   

귀에 익숙하다. 공공이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가 민간의 효율성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성공한’ 기업 경영자가 공공기관의 책임자로 부임하고, 공무원을 기업에 파견하는 정도까지 나갔다. 경계는 허물어지고 존립 근거도 구분이 어려워졌다. 

그 덕분에 이제 공공과 시장은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연속적이다. 직장을 옮기는 데 물리적인 장애가 적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목표와 가치, 이해관계의 긴장 역시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당연하다. 민간 기업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던 공무원이 퇴직하고 기업으로 옮긴다 한들 무엇이 그리 달라질까. 보건복지부의 고위 관료가 제약기업을 대표하거나 로펌에서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돕는 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무기중개상의 커미션도 한 달 일억의 보수도 시장 법칙으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아예 노골적인 몇몇을 빼면, 이해관계라는 말로 공직의 윤리를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말로, 늘 하던 일과 그리 다른 것도 아니라면 무슨 방법으로 이직과 취업, 이해관계 대변을 비판할 것인가.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권의 제약이 될 판이다. 

이제 공직의 윤리는 개인에 책임을 묻는 수준을 넘었다. 자세와 몸가짐을 탓하는 것으로는 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비슷한 일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교육도 윤리강령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지금도 공직의 윤리는 필요하다. 낡아빠진 봉건적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공직 윤리의 첫 번째 덕목은 사회의 일부 계급이나 계층만을 대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차마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더 생각하고 옹호하라고 하지는 못하겠다. 최소한 계급 ‘중립’이라도 되어야 한다.   

해결 역시 근본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 다시 명심보감이나 채근담 식의 자기 관리를 촉구하는 것으로는 어림없다. 공공의 가치가 시장의 그것과 구분되지 않는 한, 시장을 통제하는 공직의 역할 또한 살아나지 않는다. 윤리적인 공직 수행은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과제가 된 것이다. 

공공성 회복은 다른 말로 공공부문의 ‘탈시장화’ ‘재(再)공공화’를 뜻한다. 사실 공직 윤리의 범위를 훌쩍 넘는 과제다. 애당초 모순에 가까운 비틀어진 말이지만, 현실의 많은 고통과 불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다.    

공공부문의 제자리 찾기는 단지 공직의 윤리를 넘어 보편적 과제로 이어진다. 물론 말처럼 쉬울 리 없다. 그러나 자격 없는 공직자의 비루함에 절망하기보다는, 아니 그럴수록 처음부터 해야 할 일이 있다. 공공이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에 힘을 보태는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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