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이면 런던 올림픽이 시작된다. 텔레비전 화면 한 구석을 차지한 올림픽 개막 몇 일전이라는 표시가 현실감을 북돋운다. 4년 전까지는 없던 일인 것 같은데, 또 얼마나 요란할까(?) 걱정스럽다.
올림픽에는 분명 긍정적인 역할이 있다. 생활에 지친 보통 사람들에게 재미와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선수들의 비범한 인생사에 감동과 자극을 받기도 하리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모범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런던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 개막식 카운트다운 시계가 보인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 몰두하는 것이 적어도 건강에는 그리 좋을 것 같지 않다. 시차 때문에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창 유행하는 ‘치맥’은 몸무게를 또 얼마나 불려 놓을까.
물론 이처럼 4년에 한 번 하는 올림픽을 두고 생활 리듬이니 건강행태니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지도 모른다. 엘리트 체육만 두드러지고 스포츠를 수동적으로 소비한다는 익숙한 비판도 현실을 부풀렸을 수 있다.
2010년판 체육백서를 보면 생활체육과 신체활동은 꾸준히 늘고 있다. 생활체육 동호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6.3%에 이르고, 한 주에 2-3회 규칙적으로 체육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도 20%를 넘는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는 그 많은 등산인구를 보면 엘리트 체육과 ‘보는’ 스포츠만 있다고 할 것도 아니다.
물론, 같은 자료에 포함된 다른 통계를 보면 판단은 쉽지 않다. 국민의 45.3%는 아무런 생활체육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이 숫자는 1994년 43.3%, 2000년 34.1%, 2008년 53.2%로 들쭉날쭉하다 (그러나 이 통계조차 좋은 쪽으로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건강 측면에서 신체활동(전에는 ‘운동’이라고 불렀으나, 최근에는 체력향상이 아닌 건강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신체활동이라고 한다)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질병을 예방하거나 건강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대부분 사람이 안다.
어디 몸의 건강뿐이랴, 심리적, 정신적 효과도 있다. 사회적 결속력을 높이고 공동체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 삶의 질을 높이는 필수적인 활동이라고 하겠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2011년에 보건복지부가 확정한 ‘제3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에 중요한 국가목표 중 하나로 되어 있다. 성인에서 걷기를 제외한 중등도 이상의 신체활동 실천율을 2008년 14.5%에서 2020년 20%로 증가시킨다는 것이 국가 목표이다.
중요하다는 것에는 다른 의견이 없지만, 정책적으로는 어떻게 신체활동을 늘릴 것인가가 늘 고민거리다. 좋은 방법이 많지 않은데다, 바로 성과를 보기가 쉽지 않아서다. 특히 개인과 사회환경이 맞물려 있다는 점이 정책을 더 어렵게 만든다.
개인적 취향이나 행동, 습관 같은 것이 신체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때문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신체활동이 개인의 영역에 속한다는 시각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말하자면 ‘내 탓’ 패러다임이다. 천성이 게으르다, 의지가 약하다, 작심삼일이다, 등의 자책과 비난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이나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 역시 상식이다. 정책적으로는 오히려 ‘구조적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는 곳 가까이에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어떤 개인인들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우리는 특히 ‘보통’ 사람들이 쉽게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환경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환경이란 것이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2010년판 체육백서를 보면, 규칙적인 운동을 못하는 이유 중 55.2%가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라고 나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시간이 없다는 말의 의미는 그냥 개인의 특성이 아니다.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힘겨운 출퇴근을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딱 맞는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접근성’의 제약도 무시할 수 없다. 적당한 시설이나 장소를 찾을 수 없다거나, 있더라도 경제적, 문화적, 지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면 무용지물이다.
신체활동을 둘러싼 사회적 구조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그대로 반영한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하면 짐작하기 쉽다. 규칙적으로 운동할 시간과 경제적 형편이 될 리 없다. 어떤 여건을 갖춘 곳에서 살고 일하는지도 뻔하다.
그 결과로 신체활동 실천율에서 (다른 건강문제와 마찬가지로) 계층간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2007년 질병관리본부가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월소득이 100만원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400만원 이상인 남자 성인이 적절한 신체활동을 할 가능성이 85% 이상 더 높다.
앞에서 본 것처럼, 보건복지부는 2020년까지 신체활동 실천율을 20%로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우리는 이 목표가 충분한 근거를 가진 합리적인 것인지 잘 모른다. 자칫 공수표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원리가 주로 ‘개인적’ 접근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더 걱정스럽다. 여건은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해보자는 것이 개인 변화 전략의 핵심이다. 드러내지 않아도 개인의 의지와 부지런함, 비용을 스스로 부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추진방향에는 환경적 접근을 옹호하고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도 들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에서는 지침 제정과 프로그램 보급 등 개인적 접근의 비중이 훨씬 크다. 환경적 접근은 추상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회적, 환경적, 정책적 변화가 더 중요하다. 최근까지 나온 연구결과를 종합하면 효과가 있는 정책은 이런 것들이다. 신체활동을 촉진하는 도시계획, 관련 시설(공원, 운동장, 체육시설)의 접근성 향상, 도로와 골목 수준의 시설 개선, 계단 활용, 학교체육 강화 등.
신체활동을 늘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친화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여건을 바꾸는 것이 우선순위가 높다.
다시 런던 올림픽으로 돌아가자. 영국 보건부는 올림픽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미리 연구하고 2009년 보고서를 펴냈다.
여러 정책 권고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페스티발’ 효과를 기대한다는 결론이다. 직접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올림픽이 계기가 되어 사람들이 신체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올림픽을 신체활동을 늘리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 아닐까. 이번 올림픽이 신체활동의 환경과 여건을 만들자는 ‘페스티발’ 효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