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은 모두 부엌이 없었고, 수도가 연결된 낡은 공간을 세탁실 겸 세면실로 공동으로 쓰고 있었는데, 하수구 덮개 위에 돌이 놓여있었다. 구멍을 타고 쥐가 자주 올라오기 때문이란다. 최악은 공동 화장실인데 그냥 시멘트에 바닥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한 활동가가 쓴 쪽방의 실상(바로가기) 가운데 일부다. 다들 반응이 시큰둥할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날이 추워질 때에는 부쩍 관심이 커지기 마련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사회통합위원회는 지난 14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 지원방안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쪽방도 당연히 중요한 주제였다.
여기서 발표된 쪽방의 실상 역시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쁜 상황이 바뀔 리는 없다. 평균 면적은 5.18㎡(1.57평), 82.5%가 공동 화장실을 사용한다. 화장실이 아예 없는 경우도 6.7%나 되었다.
이젠 ‘주거복지’라는 말이 제법 익숙해졌지만 (2003년부터 정부에 ‘주거복지과’가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금은 국토해양부에 ‘주거복지기획과’가 있다). 쪽방에 사는 사람 말고도 ‘주거취약계층’은 많다.
주거복지연대가 추산한 것을 기초로 하면, 전국적으로 쪽방만 8천개가 넘고, 고시원과 비닐하우스, 숙박업소(여관과 여인숙), 컨테이너에 사는 사람은 통계를 내기도 어렵다. 여기에다 반지하주택에 사는 사람도 15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줄잡아 우리나라 가구 10가구 중 2가구 이상이 이른바 ‘주거 빈곤층’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사는 곳(집)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집이 영향을 미치는 대상 중에는 건강도 중요하게 들어간다. 삶의 환경이 나쁘면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건강과 집은 두 쪽 방향으로 모두 영향을 주고받는다. 집이 건강을 나쁘게 하지만, 그 반대 방향도 성립한다는 뜻이다. 우선, 건강이 나쁘면 주거사정이 악화될 수 있다. 노동을 못해서, 과도한 의료비로, 또는 장애로,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짐작하는 대로다.
“벽돌 나르다가 걸려 넘어졌어요. 한 20년 됐죠. 근데 그게 이제 자꾸 일하다보니까 누적이 되는 거죠. 엑스레이도 안 찍어보고, 계속 침 맞고... 일을 하루만이라도 힘들게 하면 무리가 오는 거야. 삽질 같은 거 하게 되잖아요. 20년 됐으니까 고질병이 된 것이지, 이제..” (국가인권위원회, ‘비주택 거주민 인권상황 실태조사’, 72쪽, 2009년)
반대 방향으로, 좋지 않은 주거환경이 건강을 해치는 것도 분명하다. 먼저, 화장실, 목욕시설, 부엌과 같은 기본설비가 문제가 된다. 환기, 채광, 소음 등은 물론이고, 냉난방 시설도 중요한 위험요인이다(주거와 더위의 관계는 이미 다루었다. 서리풀 논평, 프레시안).
당장이라도 문제가 되는 것은 화재나 수해와 같은 사고이다. 주거취약 지역의 화재 소식은 연례행사처럼 된지 오래다.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반지하가 자연재해로 인한 사고에 얼마나 쉽게 노출되는지는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취약한 주거라고 할 때 적용되는 것은 최소 기준일 뿐이다. 건강문제의 범위를 넓히면 건강한 삶터의 조건도 더 엄격해진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1989년에 주거가 세 가지 측면에서 건강친화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가기).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어야 하고, 사고와 중독, 그리고 만성질환을 막을 수 있어야 하며, 심리적, 사회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전염병 예방은 앞에서 말한 기본적인 설비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식수, 화장실, 쓰레기, 실내 위생, 음식물 조리, 환기와 채광 등이 전염병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제 수인성 전염병은 크게 줄었다 하더라도, 결핵이나 식중독, 호흡기 질환 등은 아직도 중요하다.
사고는 잘못된 설계와 건축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 어린이 사망원인의 1위는 안전사고인데, 가정사고와 교통사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중요성을 모르고 지나치기 쉽지만 가정사고가 의외로 많다. 노인 역시 이런 사고에 취약하다.
주거환경과 연관된 중독이나 만성질환의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적절하지 못하거나 질 나쁜 건축자재 때문에 실내오염과 곰팡이가 생기고, 이는 천식이나 알레르기, 호흡기질환을 유발한다. 납과 석면을 비롯한 중금속이나 화학물질도 무시하기 어렵다. 유럽에서는 폐암의 약 10%가 가정 내 라돈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삶터의 문제를 집을 넘어 주거 환경이나 지역, 이웃으로 확대하면 건강 문제는 더욱 복합적이다. 사회심리적 문제와 스트레스, 사회적 지지망, 음주와 식사 등의 문제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주거 때문에 생기는 건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차례다. 주로 집에 초점을 맞추어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하려고 한다.
하나는 역시 근본적 원인을 생각하는 접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사회적 결정요인’도 마찬가지지만, 주거 역시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사회적 결정요인이 문제해결에 ‘일차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주거 때문에 건강 문제가 생긴다면, 근본적 원인에 손대지 않고 결과만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설령 무엇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그건 미봉책에 그친다.
따라서 좀 더 근본적인 과제, 예를 들어 주거지원을 비롯한 주거복지, 지역사회 복지사업, 일자리 등을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맞다. 특히 주거취약 상태가 구조적이고 만성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앞에서 말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비주택 거주자의 36.7%가 10년 전부터 비주택에 거주해 왔다고 한다. 주거취약계층의 상당수가 비교적 오랜 기간 극단적인 주거 빈곤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다.
쪽방 거주자 중 34%가 노숙을 경험했고 22.8%가 노숙인 쉼터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회통합위원회의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근본적 원인이 이런 것이라면 건강 문제 역시 보건이나 의료 서비스를 넘어서야 한다.
두 번째로 (근본과는 거리가 있지만) 문제 가까이에 있는 원인이 일차 개입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 일이다. 특히 건강과 주거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을 때, 그 연결을 끊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장기간의 결핵 -> 노동능력 상실 -> 빈곤 -> 주거 빈곤 -> 건강 악화” 식의 고리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현실적 시나리오다. 이 경우 결핵을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근본적 문제해결에 다가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다만, 개입의 지점이 정확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세 번째로는 건강과 주거 복지의 통합적 접근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건강과 보건이 주거복지의 한 요소로 포함되어야 한다. 직접적인 주거지원(노인, 장애인, 노숙인, 쪽방 거주자 등)에서 건강이란 요소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 주거복지를 위한 지역 복지사업 등에서도 건강을 중요한 내용이자 사업대상으로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
건강과 보건 측면에서는 다른 사업과 연계되고 통합된 구조 안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쪽방에 사는 알콜 중독자를 의학적으로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잠깐 지나가는 ‘의료봉사’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보건의료 측면의 작은 접근이라도 주거와 지역복지, 소득, 일자리 등과 함께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전략이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통합’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마침 건강세상네트워크가 며칠 후인 11월 22일 ‘쪽방 주민을 위한 건강권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기로 되어 있다 (바로가기). 주거 빈곤층을 어떻게 건강하게 할 수 있을지 알차고 풍부하게 논의되기를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