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은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77892.html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면] “중증질환 부자가 더 걸린다”, 진실인가? / 김명희
최근 한 유력신문은 “중증질환, 부자가 더 걸린다” “가난이 병은 옛말, 부자 동네 4대 중증환자 더 많다”는 제목의 기사들을 게재했다.
기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가난할수록 병에 많이 걸린다는 추정과 달리 소득이 높은 계층이나 지역의 주민이 암을 비롯한 중증질환에 더 시달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심장, 뇌혈관, 암,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질환이 특히 심했다.” 기사는 또 부자 동네라고 알려진 서울의 서초구·강남구와 성남시 분당구 등이 암 발생률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을 호도한 것일 뿐이다. 악용될 소지도 다분해 우려스럽다. 가난한 계층, 가난한 동네에서 질병 유병률, 사망률이 높다는 논문들은 국내외 학회지에 매년 수십편씩 발표되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 통계에서도 이러한 결과는 비교적 일관적으로 확인된다. 기사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부자 또는 부자 동네가 중증질환이 더 많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부정확하다. 소득계층 간, 혹은 지역 간 질병 유병률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조사 자료를 이용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매년 <국민건강통계>를 발간한다. 이 자료를 보면, 고혈압, 당뇨병, 폐쇄성 폐질환, 뇌혈관질환 등 주요 만성질환의 유병률은 모두 저소득층에서 높다. 중증질환의 위험요인인 흡연, 과음, 운동 미실천, 비만(여성) 등도 모두 저소득층에서 높게 나타난다. 통계청이 ‘국가통계포털’을 통해 매년 제공하는 시군구별 연령 표준화사망률 또한 이 신문 기사가 암 발생률이 높은 지역이라고 했던 서초구·강남구·분당구에서 가장 낮다. 암 사망률도 비슷한 양상이다.
둘째, 해당 기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의료 이용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이 자료는 본디 연구목적이 아니라 의료기관의 진료비 청구를 위해 작성된 자료이다. 그러다 보니 진료 정보의 부정확성 문제가 종종 지적된다. 또한 질병은 있어도 의료 이용을 하지 않거나, 질병이 없는데 의료 이용을 하는 경우에, 질환자 규모가 과소 혹은 과다 추정되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의 <국민건강통계>를 보면, 질병이 있는데도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저소득층에서 더욱 빈번하고 건강검진율·암검진율 또한 저소득층에서 낮다.
암검진율이 저소득층에서 낮다는 사실은 매년 시행되는 국립암센터의 <암검진 수검행태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국민건강보험 자료는 전 국민을 포괄할 뿐 아니라 데이터베이스가 잘 구축되어 있어서 ‘빅데이터’로서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자료를 이용하여 좋은 논문들을 출판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문제점으로 인해 분석과 해석에서 항상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은 보건학계의 상식에 속한다.
한국의 빅데이터를 소개하려던 문제의 기사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두가지 교훈을 준다. 먼저, 그 기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의료 이용 자료)는 질병 유병률 자료로서 한계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언론은 무분별하게 ‘트렌드’를 좇아 독자들에게 빅데이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심어주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데이터가 크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자료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가운데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그 기사를 통해 ‘부자들이 중증질환 의료 이용을 더 많이 한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기사가 현 정부의 4대 중증질환 보장 공약 후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부자들이 병에 더 많이 걸리니 국가가 굳이 치료비를 보장해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통해서 말이다. 외려 이 기사는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이 부자들만큼 되지 않으니, 최소한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더욱 높여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