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용역'과 학문의 자율성
김 명 희(겅강형평성연구센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용역’이란 ‘물질적 재화의 형태를 취하지 아니하고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는 일’로 정의됩니다. 한편 법제처의 법률 정보에 의하면 ‘학술 용역’이란 ‘학문 분야의 기초 과학과 응용과학에 관한 연구 용역 및 이에 준하는 용역’을 지칭하고 이 중 ‘위탁형 용역’은 ‘용역 계약을 체결한 계약 상대자가 자기 책임하에 연구를 수행하여 연구 결과물을 용역 결과 보고서 형태로 발주 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새삼스레 용어의 정의를 찾아본 것은, 연기를 거듭하던 노동 패널 학술 대회가 결국 취소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후입니다. 학술 활동과는 무관한 비민주적 정치 세력의 전횡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학술 대회가 취소되고 노동 패널 조사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해 연구 기관이 휘둘린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첨예한 정치적 이슈들을 다루는 노동연구원에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만큼 극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보건학 연구 분야에도 우리가 경계해야 할 ‘학문적 자율성 침해’의 문제들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용역’이라는 단어가 존재합니다.
보건학의 경우, 특정 기술이나 제품과 관련된 임상 연구보다는 인구 집단 혹은 정책과 관련된 연구들이 많고, 그러다보니 사기업의 후원보다는 공공 재원에 의한 연구 수행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연구재단이나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는 자유 과제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중앙 정부의 부처나 지방 자치 단체가 발주자 역할을 하는 학술 연구 용역 과제의 형태를 갖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이렇게 공적 재원에 의해 수행되는 연구 과제는 사적인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학문적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몇 가지 에피소드는 이러한 ‘상식’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2년 전, 공공 연구 기금의 지원을 받았던 한 과제는 중간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던 학회 당일 주무 부처의 ‘권고’에 의해 발표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료되지 않은 연구 과제에 대해 외부에 공표하지 않겠다는 계약 조건, 또 연구 결과를 발표할 때에는 ‘갑’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위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방 자치 단체의 의뢰를 받은 연구 과제였는데, 공개적인 중간 결과 보고회 전날, 분석 결과가 ‘갑’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도 있으니 인쇄물을 배포하지 말고 또 민감한(?) 사안들은 발표 내용에서 제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다른 연구과제는 기이한 서약서 작성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보안 유지나 성실 의무의 수행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들과 ‘급’이 달랐습니다. 과제와 관련된 내용을 누설하는 것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것으로, 누설 시 그에 상응하는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범한 연구자의 상상력으로는 그 과제가 어떻게 국가 안보라는 엄청난 주제와 연계되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사채업자들한테 쓴다는 신체 포기 각서가 이런 거냐는 우스갯소리들을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들은 연구 윤리나 과학 기술의 사회학 문헌들에서 강조했던 부분이 아닙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청부 과학(원제 Doubt is their product)’이나 ‘더러운 손의 의사들(원제 On the Take―How Medicine's Complicity with Big Business Can Endanger Your Health)’, ‘노동자 건강의 정치 경제학(원제 Point of Production)’ 같은 책들은 일관되게 기업과 학술 연구의 유착 관계 혹은 자본에 의한 학문적 자유의 침해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를테면 공중 보건에 심각한 위해가 될 수 있는 연구 결과들이 ‘갑’에 의해 은폐되거나 ‘을’인 연구자가 ‘갑’의 허락 없이 연구 결과를 학술 대회에서 발표했기 때문에 비밀 유지의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기업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사례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같이 ‘공공’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한편 대부분의 국제 학술지들이 논문 투고 시 ‘이해 갈등(conflict of interest)’ 상황을 밝히도록 하지만 여기에서 지칭하는 것은 기업의 연구비 지원이나 자문 위원 활동, 주식 보유 여부 등입니다. 정부의 연구비 지원, 즉 공공 재원에 의해 수행한 연구 결과를 두고 이해 갈등이나 유착이라고 표현한 경우는 본 적이 없고 연구 결과에 대한 정부의 압력이나 은폐를 경계하는 글을 읽은 적도 없습니다.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사안들도, 실무적인 측면에 국한해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제가 민간 서베이 업체에 조사 용역을 의뢰했는데 그 업체가 조사 결과를 중간에 임의로 발표하거나 심지어 그 자료로 자신들의 논문을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제 문제는 간단해집니다. 대학으로 표상되는 연구기관의 정체성이, 혹은 연구 활동이 서비스 제공에 대한 금전적 보상만을 취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용역 수주 ‘업체’의 그것과 동일한지 여부만 결정하면 됩니다 (물론 연구자가 연구 자체와 관련한 신의성실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만일 용역의 개념정의에 따라 그 성과가 오로지 ‘갑’에게만 귀속되는 것이라면 학회발표를 취소시키는 것, 혹은 발표 내용을 수정토록 하는 것이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대학이 ‘업체’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돈을 받는 대가로 정부가 해야 할 지적 노동을 대신 해주는 것이 대학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갑’이 지원하는 연구비 혹은 연구기금은 시민들이 낸 세금이지 정부의 은전(恩典)이나 담당자의 쌈짓돈이 아닙니다. 연구의 진행이나 성과물의 확산은 시민들의 건강개선과 학문발전, 혹은 시민들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원칙에만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담당자의 안위나 정치적 선호, 혹은 조직적 이해에 근거하여 연구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바람직한 학술연구용역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제가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불공정 근로계약서나 소비자 약관에 대한 개정처럼 정부의 학술연구용역 발주와 관련한 연구윤리 - ‘갑’과 ‘을’ 모두에게 해당하는- 에 대해 공개적인 논의와 새로운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을’의 노력이 절실합니다. ‘을’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부끄럽게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술자리에서만 ‘어떻게 이런 일이!’ 언성을 높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적 자율성을 지키는 것은 사소한 문제제기와 일상의 수고로움으로부터 시작되며, 귀찮아서 포기한 작은 권리들이 연구자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이 글은 건강정책학회의 소식지 'Health Sphere' 2010년 6월호 건강정책칼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