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진료비를 건강보험으로
김 창 보(연구소 연구실장)
2000년 7월1일, 전국적으로 수백개로 나뉘어 있던 건강보험이 통합하여 새롭게 출범했다. 건강보험 통합은 전국적으로 단일한 운영체계를 갖추어 재정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보장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등 건강보험 제도가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전세계적으로 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또다른 어두운 모습이 있다. 건강보험 보장수준이 62%에 불과해 여전히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가 너무 많다. 이러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계속되고 있다. 2008년의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12%는 치료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 특히 건강보험 가입자 중에서 최저소득층의 경우 무려 26.9%나 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도 있다. 자기공명영상진단(MRI), 양전자방사단층조영(PET)과 같은 첨단 진단장비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두번째로 많이 보유한 국가가 됐다. 수도권의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치료병상은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건강보험 재정지출의 낭비적 요인을 키우고 있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과연 10년 뒤에도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가 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건강보험 제도는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되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개혁을 추진해야만 한다.
개혁의 방향은 건강보험 규모를 줄이는 데 있지 않고, 현재보다 더욱 확대하는 쪽으로 두어야 한다. 노인인구는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의료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치료 포기’가 나오지 않도록 건강보험 보장수준도 지금보다 더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건강보험 재정은 더 커져야 한다.
문제가 있다. 수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지출구조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지출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2005~2009년 사이 연평균 13%씩 늘어나고 있다. 다른 산업분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빠른 속도이다.
최근 연세대 정형선 교수가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의사의 진료량’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를 더 많이 병원에 오게 하고, 서비스나 치료항목을 늘리면 병원과 의사의 수입은 더 늘어나는 이른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건강보험 보장수준은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제도로 개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총액예산제’와 ‘주치의제’가 가장 먼저 추천되고 있다. 1년 동안 우리 국민이 의료이용을 해서 발생하는 전체 의료비를 병원이나 의사, 약국에 예산으로 할당해 운영하는 ‘총액예산제’는 이미 우리 사회에 익숙한 방식이다. 정부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직에서 이처럼 예산을 세워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모든 국민에 대하여 주치의를 정해두는 제도는 일상적으로 건강관리를 하도록 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적절한 치료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비용에 비해 매우 효과적인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이 무한정 늘어날 수 없다면, 재정을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싫다고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료는 직장인을 기준으로 할 때 수입의 5.33% 정도이다. 의료복지 선진국에서는 최저 8~9% 수준인 점과 비교한다면 낮은 수준이다. 이런 점에서 보험료는 인상될 여지가 있으며, 주요하게 고려할 수입확대 방안임은 틀림없다.
다른 방안들도 있다. 얼마 전 진보신당의 조승수 의원이 발의한 ‘사회복지세’ 도입도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부담분을 현재의 20%에서 더 늘려가는 방안도 있다. 이처럼 ‘조세 방식’을 활용하는 것은 노동시장이 불안정하고 노인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좀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술·담배 등에 세금을 붙여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멈추고 그 예산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이런 수입확대 방안은 어떤 것 하나를 취사선택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몇개의 정책이 적절한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건강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국민건강보험을 현재의 규모로 놔두고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저소득층이 보험 가입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민간보험 가입에 따른 차별과 의료비가 비싸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이미 ‘식코’(Sicko)의 나라 미국을 통해 알려져 있다.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뿐더러 대안을 위한 제대로 된 논의도 아니다. 질병과 치료로 인한 경제적 위험에서 보호받고자 하는 건강보험 제도의 취지와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고 오로지 ‘제도’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건강보험을 축소하려는 논의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논의인 것이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을 비롯한 영리화·시장화를 통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을 더욱 튼튼히 하여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치료비를 담당할 수 있도록 개혁의 방향을 맞추어야 한다.
문제는 어떤 계기로 이와 같은 개혁의 판을 만드는가이다. 최근 보험료를 올려 보장수준을 높이자는 시민운동도 이런 계기를 만들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료계 또한 자신의 입장을 중심으로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논의의 판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판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건강보험 개혁을 위한 계기는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의 입장과 태도이다. 이익이 극대화되는 방향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경직된 자세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난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낼 용의가 있다’는 시민운동도 나온 마당에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 통합건강보험 10년, 이제 발전을 위한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한겨레신문 2010년 6월 28일자 '맞대면' 코너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