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연구通>
주류 언론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기술이나 치료법을 소개하지만,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나 건강불평등, 저항적 건강담론에 대한 연구결과들은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수요일,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논문, 혹은 논쟁적 주제를 다룬 논문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흔히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제안 부탁 드립니다. 소개하고 싶은 연구논문 추천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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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일하다간 정말 죽는다>
- Ahola K, Väänänen A, Koskinen A, Kouvonen A, Shirom A (2010). Burnout as a predictor of all-cause mortality among industrial employees: a 10-year prospective register-linkage study. J Psychosom Res; 69(1):51-7. -
<피로사회>, <우리의 노동은 왜 우울한가>라는 책들이 조명을 받는 현상은, 휴식에 대한 갈망을 생물학적, 정신적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낙인 짓고 애써 외면해야 하는 현실을 반증한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1년 기준 2,090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노동이 가져다 주는 자아실현 등의 가치는 그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 주변에는 그 수준을 넘는 극한직업과 극한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쉬지 못함’은 에너지의 지속적인 고갈을 발생시키고 우리를 냉소적으로 만들어 노동자들 개인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논문은 완전히 소진될 때까지 일한 자들이 일찍 사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이한 점이 없다. 다만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핀란드 노동자 (employee)를 대상으로 수행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저자들은 10년이 넘는 기간의 추적을 통해 업무로 인한 극도의 피로 혹은 '소진현상' (burnout)을 경험한 고용 노동자의 총 사망률 (all-cause mortality)이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소진현상을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심리적 반응”으로 노동자의 고유한 에너지 자원을 점차로 고갈시키며, 일시적인 피로(fatigue)와는 달리 과거의 누적된 경험을 반영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저자들은 고갈 (exhaustion), 냉소 (cynicism), 직업 능률 감소 등의 세 가지 요소를 측정하고 이를 합산하여 'burnout'이라는 지표를 산출하였다.
분석 결과 직업 능률의 감소는 사망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냉소 수준이 높을수록 총 사망률은 높았다 (하지만 사회경제적인 상태를 고려하였을 때 이 효과는 상쇄되었다.) 반면 고갈 경험은 사회경제적인 상태와 건강 및 직업 관련 위험 요소를 고려하였을 때도 전체 사망률이 증가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세 가지 지표의 총합인 burnout을 기준으로 분석하였을 때도 사망률은 증가하였으며, 사회경제적인 상태, 건강 및 직업 관련 위험요소를 고려하였을 때도 사망률이 높았다. 주목할 점은 위 결과가 45세 미만의 청장년층의 사망률에만 해당하고 45세 이상 장•노년층의 사망률과는 관계가 없었다는 점인데, 저자들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노동현장에 오래 남아있게 된다는 ‘건강한 노동자 영향’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소진현상이 총 사망률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만 이해하는데 그친다면, 숲과 나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직관적으로 말해 'burnout'을 감소시키면, 즉 쉬어준다면, 사망률이 줄어든다. 하지만 소진현상의 수준을 감소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 개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상위 수준의 개입이 필수적이다. 노동자가 사망에까지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소진현상을 예방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장치들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계기가 된다.
예측이 조심스러우나, 이 연구가 대상으로 하는 핀란드 노동자들보다 긴 노동시간 하에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상황은 어떨까? 노동자의 소진현상을 고민하기 이전에, 그들의 사망에조차 '사회적' 관심이 자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