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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풀 논평
 도서 소개
작성일 : 13-02-17 23:49
새로운 간호 인력이 해결할 수 없는 것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753    

보건복지부가 '간호인력 개편 방향'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문적이라는 말을 듣는 분야인데다, 아주 세부적인 인력 문제니 만큼 크게 관심을 끌 일은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정이 심상치 않다. 어느 직업이든 마찬가지지만, 새로운 직종을 만들거나 업무 영역에 손을 대면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도 마찬가지여서, 일부에서는 파업을 거론할 정도다.    
 
일단 내용을 보자. 복지부가 발표한 대로면 간호인력의 종류가 지금 두 가지에서 세 가지로 늘어난다. 간호사는 그대로지만, 현재의 간호조무사가 1급 실무간호인력과 2급 실무간호인력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2급 실무간호인력의 양성은 대체로 지금의 조무사와 비슷하다. 이에 비해 1급 실무간호인력은 대학 2년의 교육과 실습을 받도록 되어 있다. 간호조무사가 세분화된다기보다 1급 실무간호인력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런 일이 늘 그렇듯, 정부는 새로운 인력을 신설하면 담당하는 업무를 나누어 규정한다. 그러나 이 역시 늘 그렇듯, 환자를 돌보는 업무 그리고 더 좁혀 간호 업무는 수준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입원 환자에게 약을 ‘전달’할 수도 있지만 ‘교육’을 해야 하는 때도 많다. 전문성이 높은 일과 단순 업무가 무 자르듯 그렇게 명확할 리 없다. 설사 구분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다른 어려움도 적지 않다. 

그 중 한 가지는 제도를 ‘악용’하는 동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도 전문 인력의 역할과 기능 가운데는 명확하지 않은 점이 많다. 더구나 아주 뚜렷한 역할 구분조차 보통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때가 많다. 그 때문에 무자격자가 진료나 진료 보조 업무를 했다고 말썽이 되는 일이 지금도 종종 일어난다.  

결국 간호사와 1급 인력 사이에서, 그리고 1급과 2급 인력 사이에서, 업무 영역의 모호함과 중복, 그리고 그 때문에 갈등과 제도 악용이 생길 것은 뻔하다. 인력을 새로 만들어 얻을 이득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정책이 무슨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개편안은 일정 경력 이상을 쌓고 정해진 교육을 받으면 ‘경력 상승’(복지부가 낸 보도자료에서 쓴 표현이다)을 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즉, 실무 경력과 교육만 가지고 2급에서 1급으로, 그리고 1급에서 간호사로 ‘진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밝혀 두자. 우리는 간호사(4년제 대학을 나온 이른바 ‘정규’ 간호사를 말한다)의 직업적 이익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이렇게 하면 간호사의 직업적 권위나 전문성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반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아가, 대학을 순전히 직업인(그것도 기술만 중요한) 양성 기관으로만 보면 이런 방식도 있을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학벌’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지 않는가. 그러니 이런 시도가 왜곡된 고등교육을 ‘정상화’ 하는 데에 보탬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시도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지는 않다. 보기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정책에 목표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더 놀랍다.  

복지부가 낸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보자. “간호인력은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한다는 것이 목표다. 아무리 봐도, 이렇게 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 특히 국민에게 돌아갈 이득이 무엇인지 찾아볼 수 없다. 

간호인력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심하게 표현하면, 간호인력 내부의 문제다. 하다못해 형식적으로라도 현재의 상황이 지금의 의료 서비스에, 또 국민들에게 무슨 악영향과 문제가 있는지 설명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니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환자와 시민의 관점에서 다시 보고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볼 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일까를 물어보자.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답은 아마도 진료의 질이 위태롭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형편이 이런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절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하고 간호 시간이 충분치 않은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보인다. 병원 현장에서 간호사가 부족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중소병원 열 곳 중 아홉 곳은 법으로 정한 그야말로 최소 기준조차 지키지 못하는 상태다. 간호사 한 명이 30-40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하는 병원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0년 말을 기준으로 낸 통계를 보면, 간호사 수가 얼마나 적정 수준 이하인지 잘 드러난다. 인구 천 명당 숫자로 볼 때 OECD 평균이 6.74명인데 비해 한국은 2.37명에 지나지 않는다. 

간호사 부족, 높은 노동강도, 간호의 질 저하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은 이제 병원 안에서는 상식처럼 되었다. 큰 병원이라고 다르지도 않다. 신자유주의의 효율화와 생산성 논리는 병원과 환자 진료조차 남김없이 ‘식민지’로 만들었다.   

악순환의 사이클에서 특히 부족한 간호인력과 지나친 노동강도가 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간호 인력의 부실은 더 많은 사고와 부작용, 합병증, 더 높은 사망률을 피할 수 없다. 간접적인 것까지 치면 얼마나 많은지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외국에서 조사한 증거는 많고 명백하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미국의 케인 박사 팀이 미국과 캐나다의 여러 단편적 연구들을 종합한 결과이다. 여기서는 입원일 하루 당 간호사 수가 한 명 늘어나면 중환자실 환자의 사망률은 9퍼센트, 외과환자의 사망률은 16%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원자료 바로가기). 사망률뿐 아니라 다른 건강 지표도,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뿐 아니라 다른 외국도 이런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환자 쪽만 강조하느라 간호인력이 감당하는 지나친 노동강도를 놓쳐서는 곤란하다. 왜곡된 노동은 환자에게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인권도 침해한다. 저녁번 간호사가 심하면 새벽 1시, 2시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다는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3교대에 불규칙한 생활을 즐길 사람은 드물다. 이런 상황이니 간호사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9개월 경력을 가진 신참이 신규 간호사를 교육해야 하는 현실을 그냥 웃어넘겨야 할까.  

정부의 ‘인해전술’ 정책은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간호대학을 만들고 입학생 수, 졸업생 수를 늘려도 무슨 소용인가. 이런 상황에서는 ‘장롱’ 면허만 잔뜩 늘릴 뿐이다. 큰 병원은 일을 시작하기 무섭게 그만 두는 간호사로 넘치고, 지방과 중소병원은 여전히 구인난에 시달린다.
   
간호인력에 관한 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의료기관이 충분한 간호인력을 확보하고 양질의 간호를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환자와 보통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 정책의 우선순위다.

여러 가지 여건과 정책변화가 같이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질을 높이고 보이지 않는 건강피해를 줄일 수만 있다면(이 전제는 매우 중요하다!) 진료비 인상도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중소도시와 농촌 병원을 위해서는 더 정교하고 과감한 정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간호인력의 질적 수준도 당연히 중요하다. 2년간 교육받은 인력을 새로 만들어 일단 숫자를 확보하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일차적으로 제대로 된 양질의 인력이 충분한 수만큼 있어야 한다. 

간호인력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은 간호인력 ‘내부’에 맡기면 된다. 정부가 더 급하게 그리고 무겁게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제대로 된 간호로 환자가 좋은 결과를 얻는 것, 그것을 위한 조건을 만들고 환경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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