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수가’라는, 아직도 약간 생소한 말의 뜻을 명확하게 하자. 이 말은 한자로는 ‘酬價’라고 쓰는데 일본에서 직수입한 것이 거의 틀림없다. 1960년대 중반(건강보험 제도를 시작하기 훨씬 전이다)부터 신문 기사에 보이기 시작한다.
‘수(酬)’가 일하고 받는 돈을 의미하는 ‘보수’에서도 쓰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수가는 환자를 치료하고 받는 진료비를 뜻한다. 그러나 의료보험이 시작되고 나서는 뜻이 좁아졌다. 치료비 대부분을 환자 대신 보험이 지불하기 때문에, 수가라고 말하면 보험에서 정한 ‘공정’ 진료비를 말한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건강보험에서 받는 진료비가 의사나 병원의 전체 수입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험과는 크게 상관없는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제외하면 대부분 의사나 병원이 수가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수가는 사실상 모든 진료에 적용되는 가격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수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금 한국에서 건강보험 수가는 ‘협상’으로 정한다.
협상의 당사자는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신하는 건강보험공단이 한 쪽이 된다. 다른 한 쪽은 각 직종과 병원을 대표하는 단체들이다. 건강보험공단과 각 대표(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의사협회 등)가 협상을 통해 수가 인상 정도를 결정한다.
짐작할 수 있듯이 양쪽의 이해관계는 완전히 반대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인상과 억제의 근거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가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여론이 뒷받침하고 지지하는가가 중요하다.
올해는 며칠 전 5월 31일이 내년도 수가 협상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014년에 수가를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정하는 협상 기한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에 합의가 쉬울 리 없으니 마지막까지 갔던 모양이다.
의원급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수가는 각각 3퍼센트와 1.9퍼센트 인상하기로 했다. 또, 약국은 2.8퍼센트, 치과는 2.7퍼센트 올리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어떤 근거로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잘 알 수 없으나, 다른 해보다는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여기에서 수가가 높다 낮다, 또는 지금 수가 제도가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논쟁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지금도 기회 될 때마다 찬반의 논란이 벌어지는, 조금은 익숙한 주제다.
그런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 시민과 소비자, 의료인, 병원에 모두 큰 영향을 주고, 한국 보건의료의 특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특히 진료비를 받는 쪽, 즉 의사나 병원에는 경제적으로 수입 총액이 달려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젠 조금 더 근본적 차원에서 진료 수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근본적 차원에서 진료 수가를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그 중에서도, 진료 수가를 둘러싼 기본 환경이 심각하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진료 수가는 조만간 갈등과 투쟁의 핵이 될 전망이다. 최근 들어 의료제공자의 요구와 진료비 지출 능력 사이에 간격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서다.
전체 진료비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가운데에 ‘시장 참여자’가 날로 늘어나는 것이 긴장의 기본 축을 이룬다. 총액을 늘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배분되는 각자의 몫이 늘지 않거나 줄어든다는 것이 큰 불만 요인이다.
진료비 총액을 크게 늘릴 수 없다는 현실 조건은 특히 심각하다. 수가와 전체 진료비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한, 총액이 수가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균형’을 그대로 둔 채 획기적인 수가 인상은 불가능하고, 한두 항목은 몰라도 각자의 몫을 키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 상태에서는 갈등이 ‘제로섬’의 양상을 보이기 쉽다. 전체가 커지는 속도보다 몫을 가져가야 하는 참여자 수가 더 빠르게 늘고 있다. 각자가 ‘제 몫 찾기’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직종간, 직역간, 분야간 갈등이 계속 심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머지않아 수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기존 제도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기반이 동요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기존 수가 제도가 제도 참여자를 충분히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이 코앞에 다가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이 그렇지 근본적인 개편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금방 시작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모두의 ‘경제’와 관련된 것이라 이해의 조정이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충분히 ‘현실적’이고 또한 ‘참여적’인 변화를 기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근본적 개편의 시작은 무엇보다 올바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건강보험의 진료 수가가 ‘무엇을’ 보상하는(또는 보상해야 하는) 것인가를 (원론적으로) 묻고자 한다.
지금까지 논의해 온 것은 주로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와 ‘얼마나’ 보상할 것인가의 과제였다. 후자가 수가 수준(20만원이나 30만원, 또는 3퍼센트나 5퍼센트)의 문제였다면, 전자는 수가 제도(그 유명한 행위별 보상이나 포괄수가제)의 문제라고 해도 될 것이다.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라거나, 이미 암묵적으로 합의된 것을 굳이 다시 꺼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질문이라는 데는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불거진 몇 가지 일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문제제기라고는 할 수 없다. 2009년 흉부외과와 외과의 수가가 인상된 것은 전공의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또 자연분만과 취약지 분만의 수가를 인상한다는 것이나 마취과 의사 초빙료를 올린다는 논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때 수가 인상은 무엇을 보상하려 한 것인가? 같은 서비스를 하는 데에 비용(즉 원가)이 더 들어가서 수가를 올린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 수가는 정책을 수행하는 데에 한 가지 ‘도구’로 쓰였다.
수가를 통해 바람직한 정책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은 비판 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권장되어야 마땅하다. 건강보험이나 수가 정책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른 정책과 협력하여 좋은 결과를 산출하려는 것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문제는 건강보험 진료 수가의 혼란이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정책적 이유 때문에 수가를 손보느라 수준이 더욱 들쭉날쭉하게 되었다. 원칙과 기준이 혼란스러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술의 난이도가 비슷해도 정책적 고려 대상이 되면 수가가 높고 그렇지 않으면 낮다?
어떤 항목이나 진료분야에 따라 이런 식의 조정을 계속하는 것은 혼란을 더욱 키울 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도 없다. 소아과, 비뇨기과도 어렵다고 하고, 일차의료와 중소 병원을 살려야 한다는 소리도 드높다.
이제 수가의 높낮이를 정하는 기준을 근본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좋은 도구라는 시각으로는 안 된다. 건강보험 수가인 한, 진료비가 무엇에 대한 보상인지 그 성격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는 건강보험의 진료 수가가 ‘무엇을’ 보상하는가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진료 수가는 생산에 들어간 ‘원가’인가 또는 참여한 사람들에게 보장하는 ‘소득’인가? 아니면 시장의 상품 가격으로 보아야 하는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사실 여기에 답하지 않고는 ‘어떻게’와 ‘얼마나’의 문제에도 제대로 답하기 어렵다. ‘무엇을’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는 다음 주 논평에서 계속해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