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즐겁게 미래를 상상해야 할 시기.
현재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은 과연 무엇을 배우고 상상하고 있는가?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해야 한다는 생존논리뿐이다. 학교는 친구와 함께 자라는 공간이 아니라, 폭력과 따돌림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투쟁의 장소가 되었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학교폭력 사건과 청소년 자살 사건은 현재 한국 사회 청소년들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청소년기라는 특수한 시절은 폭력을 범죄가 아니라 다툼으로 과소평가하고, 자살을 개인의 그릇된 충동이라 평가절하하게 만든다. 가정, 학교, 사회는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보호해야 하며, 긍정적인 삶을 계획할 수 있도록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 국가는 내놓은 대책은 초중고생 전원에게 정신 건강검사를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학교폭력과 자살이라는 문제를 전체 청소년의 문제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심각한 ‘고위험군’ 학생들이 저지르는 특수한 사건임을 전제한다. 정부는 대규모 정신건강검사를 통해 위험한 학생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이후의 장기적 대책이나 현 상황을 바라보는 통찰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단순히 국면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 수업시간을 쪼개 본인의 정신건강 수준을 고백하고, 교사에 의해 점수화되어 평가되는 과정이 과연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현재 진행 중인 ‘학생 정서, 행동발달 선별검사’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학교폭력과 자살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하고자 한다. 대규모 예산과 인력 추가배치로 ‘검사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청소년이 처한 ‘삶의 조건’과 그들의 ‘정신건강’을 개선할 수는 없어 보인다. 필요한 것은 1회성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근시안적인 정신건강검사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청소년들의 삶을 변화시킬 새로운 사회적 논의들이 절실하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현재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비정한 경쟁의 논리들을 걷어내고, 건강한 삶을 꿈꾸게 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상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