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제1기 영펠로우 프로그램을 마치며
손 정 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소 제1기 영펠로우)
작년 5월 햇볕이 따사로웠던 어느 봄날이었어요. 경기도 한 시골 장터에서 연구소 선생님들이 꽈리고추, 상추, 방울토마토, 쌈 채소 등의 묘목과 부추 씨앗을 샀어요. 근처 주말농장에 들러 황토색 흙도 구했고 스티로폼 박스와 자그마한 농기구도 갖추었어요. 이후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베란다에서 작물 재배(?)가 시작되었어요. 저 역시 함께 할 수 있었지요.
보건정책을 건강불평등 렌즈로 평가해보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어떤 보건정책을 다룰지 찾아나서야 했어요. 연구소 선생님들이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았어요. 각자 영역을 나누고 책을 찾았지요. 그리고 도서관 카페에 앉아 논의를 했어요. 보건정책을 구체화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는 다음 모임에서 논의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한국의 담배규제 정책과 건강불평등』 보고서의 첫 발걸음은 시작되었어요. 저 역시 함께 할 수 있었지요.
『한국의 담배규제 정책과 건강불평등』 보고서는 진행 과정에서 여러 선생님들이 함께 하였어요. 귀한 시간 내어 자료를 검토하고 논의하고 의견을 주셨지요. 자그마한 연구 공동체였어요. 게다가 경제학 전공자인 타 민간독립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선생님이 참여한 시민사회진영 간담회 자리도 마련되었어요. 학문적 맥락이 달라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어요. 이렇게 『한국의 담배규제 정책과 건강불평등』 보고서는 다양한 모임을 시도하면서 진행되었어요. 저 역시 함께 할 수 있었지요.
보건복지부에서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을 적극 추진하려고 했어요. 자연스레 연구소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 되었어요. 연구소에서는 시의성 있는 주제라는데 동의하였어요. 이슈페이퍼를 쓰기로 했어요. 선생님들이 모였어요. 역할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수차례 논의를 하고 원고를 검토하면서 이슈페이퍼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시의성 있게 현실을 파고드는 참여적 연구 활동은 시작되었어요. 저 역시 함께 할 수 있었지요.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세계건강보고서 (world health report)』를 발행하지요. 이에 대안적인 형태로 전 세계 민중건강운동 진영은 『지구촌건강감시보고서 (global health watch)』를 발행해요. 2011년 발행 기한이 다소 늦어지고 있지만 격년 발행이고, 건강권, 형평성 측면의 건강운동 사례를 소개하여 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어요. 연구소에서 국내 사례도 소개해보자는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건강세상네트워크가 주도한 ‘건강보험료 체납 탕감운동’을 소개하는 글을 보냈어요. 이렇게 연구소가 전 세계 시민사회운동과 교류하는 자그마한 활동이 시작되었어요. 저 역시 함께 할 수 있었지요.
연구소는 연구뿐 아니라 교육 활동에도 열심이었어요. 국내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필요를 반영하여 조사 분석방법 강좌를 하기로 했어요. 연구가 직업은 아니지만 시민사회운동을 하는데 조사 분석이 필요한 활동가들에게 맞추어 강좌 내용을 짰지요. 불만이 있으신 분도 있겠지만, 연구소 입장에서는 강좌 비용도 저렴하게 하였지요. 이렇게 연구소는 국내 시민사회운동을 지원할 수 있는 자그마한 활동이 시작되었어요. 저 역시 함께 할 수 있었지요.
지금까지 제가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제1기 영펠로우로서 참여했던 활동들을 적어 봤어요. 이것저것 했다고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어요. 단지, 연구소가 규모도 작고 살림도 어렵지만 여러 재밌는 시도들을 하고 그 가운데 제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은 거예요.
이런 걸 통해서 무엇을 얻었냐고 물으시겠죠? 글쎄요. 계량화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2가지 측면에서 감상적인 평가는 할 수 있어요.
한 가지는 바람직한 조직 환경을 경험했다는 것이어요. 전, 아직 산 날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좋은 사람’과 ‘의사소통 환경’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이 둘은 ‘양심’, ‘열린 사고’, ‘실천 노력’, ‘성찰’이라는 개인 차원의 특성과 조직의 ‘제도’적 환경이 어우러져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이런 측면에서 진실로 사람을 존중해주는 ‘좋은 사람’들과 하고 싶은 말을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의사소통 환경’을 연구소에서는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좋은 사람’의 경우 연구소 및 초빙연구위원 선생님들도 계시지만 연구소를 방문하시는 양심적ㆍ실천적 활동을 진행하는 분들도 포함이 되지요.
다른 한 가지는 앞으로 주체적인 연구자가 될 사람으로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배웠다는 것이어요. 연구를 진행할 때 사고나 작업 측면에서 ‘군살빼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이를 몸소 경험했어요. 또한 ‘시선’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각인하게 되었고 일관되지만 열린 ‘시선’을 경험했어요. 또한 ‘근거’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되었고 『한국의 담배규제 정책과 건강불평등』 보고서 활동을 통해 담배규제 정책에 대한 국내외 ‘근거’들을 폭넓게 검토했어요. 이는 정책이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평가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국내 경험을 분석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주었지요. 마지막으로 ‘연구 공동체’, 다시 말하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실제 어떻게 꾸려지고 지속되고 변화하는지를 경험했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좋은 평가만 한 것 같지요? 물론 100% 안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제 스스로 이 글을 쓸 때 최대한 진실 되게 쓰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연구소에서 불편한 ‘추억들’도 있었어요. 연구소 시설과 관련한 ‘추억’으로는 한파에 꽁꽁 얼어버린 화장실, 연료비 걱정에 최소로만 켜는 냉난방 상태, 사시사철 신선하게(?) 공급되는 녹물 같은 것이 있지요. 특히, 지난 한파에는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러 주위 커피숍과 내방역 화장실을 열심히 들락날락했었어요. 연구소 살림이 그만큼 어렵다는 거겠지요. 연구소 회원과 후원기금이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제 개인과 관련한 ‘추억’으로는 뛰어난 선생님들에 비해 제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다는 것이어요. 물론 아직 학위 과정 중이고 공부란 평생 해나가는 것이니까 면죄부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연구소 선생님들이 워낙 내공 있는 분들로 알려져 있어 대부분 제 얘기에 공감해 주시리라 믿어요. 하지만, 이런 느낌이 부정적 ‘추억’은 절대 아니어요. 사회학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을 얘기하는데 ‘비교’가 중요한 방법이더라고요. 자신에 대한 성찰 역시 ‘비교’를 통해 가능한 측면이 있잖아요? 내공 있는 선생님들의 학문적, 실천적 활동과의 비교를 통해 느끼게 되는 점들은 아마 제 성숙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서로 함께하면서 서로 배우면서 그만큼 저도 성숙하고 그 만큼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요?
얘기가 따뜻한 봄볕으로 시작하여 자기 고백으로 끝나니 황망하시지요? 저 자신도 헷갈리긴 해요. 아마 그만큼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마무리 소회를 밝히자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제1기 영펠로우 프로그램은 좋은 경험이었고 앞으로 계속 연구소와의 인연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점이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어요. 정말 연구소에 물적으로, 심적으로 많이 지원해 주시면 좋겠다는 것이어요. 다들 어려우시겠지만 우리 사회가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안적 연구소이니까요.
반드시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지속 가능하고 더욱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제1기 영펠로우 손정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