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아픔을 미안해하지 않는 사회로
: 법과 제도를 넘어 인권으로서의 ‘쉴 권리’보장을 촉구한다.
- 부천 유치원 교사의 죽음은 ‘인권’이 실종된 한국 노동현장의 사회적 타살이다
지난 2월, 부천 유치원에서 일하던 20대 선생님이 목숨을 잃었다. 법정 감염병인 B형 독감에 걸려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유치원 원장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출근해야 했다. 40도에 육박하는 열이 나고,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허락된 조퇴는 너무나 늦었다. 고인이 생전 지인과 나눈 대화 속에는 “쉬라고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쉬냐”는 절규가 담겨 있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불운이나 특정 운영자의 비정함이 아니다. 아픈 것이 죄가 되고, 휴식이 동료와 직장에 대한 민폐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노동 현장에서 인권이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처참한 증거다.
해당 유치원은 “언제든 병가가 가능했다”고 주장하지만, 동료 교사들의 최근 2년간 병가 사용 기록은 ‘0건’이었다. 규정이 존재해도 노동자가 이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그 제도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인력이 없어서, 혹은 고용상의 불이익이 두려워서 아픈 몸을 이끌고 일터로 향하는 것은 노동자의 선택이 아니라 강요된 폭력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을 포기하고 일터의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현실 속에서 ‘아프면 쉴 권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인권 가이드 라인이다.
- 지침과 법이 무시되는 일터
질병관리청과 교육부의 ‘시설별 인플루엔자 관리지침’에서는 독감을 포함한 법정 감염병 감염자나 의심자에 대해 등원 및 출근을 제한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지침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원장은 지침에 따른 출근 만류는 커녕, 독감 확진 사실을 알린 교사에게 사실상 출근을 압박했다. 법을 지키지 않은 것도 이 비극을 부추겼다. ‘학교보건법’은 유치원까지 포괄하여, “제8조(등교 중지) ① 학교(유치원)의 장은 제7조에 따른 건강검사의 결과나 의사의 진단 결과 감염병에 감염되었거나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거나 감염될 우려가 있는 학생 또는 교직원에 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등교를 중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립 유치원교사들은 사립학교법 제55조에 따라 국가공무원복무규정을 준용 받는다. 이에 따라 이들 교사에게도 병가는 연 60일을 보장해야 한다. 고인이 일하던 부천 유치원은 운영자의 권위 아래 지침과 법이 무시되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었고, 결국 아픈 교사를 죽음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했다.
- 보편적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인권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
정부와 국회는 이제 ‘아프면 쉴 권리’를 시급한 인권의 과제로 인식하고 우리 공동행동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
첫째, 유급병가제도를 즉각 법제화하라. 근로기준법과 학교보건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을 정비하여 사립유치원 교사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가 임금 손실 걱정 없이 쉴 수 있도록 유급병가(임금 100%)를 보장해야 한다. “할 수 있다”가 아닌 “하여야 한다”가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고인이 소속된 경기 교육청은 공무상 병가에만 단기 대체인력을 지원한다. 병가를 낸 사립유치원 교사에 대한 단기 대체인력을 조건 없이 지원하는 교육청은 17개 교육청 중 5곳 뿐이다. 이렇듯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체 인력 지원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둘째, 상병수당의 대상을 ‘일하는 누구나’에게 보장하라. 질병의 종류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일하기 어려운 상태라면 소득을 보전해야 한다. 대기기간을 3일 이하로 단축하여 독감 같은 단기 질병도 보호받게 하고 큰 질병의 경우 안심하고 쉴 수 있도록 최대보장 기간도 국제노동기구 권고기준인 1년 이상이어야 한다.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무리하게 일하게 방치하는 것은 국가에 의한 인권 방임이다.
셋째, 해고 금지 등 강력한 고용 안전망을 구축하라. 유급병가 및 상병수당 사용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를 엄격히 금지하여, 아파서 쉬는 것이 실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4.“죄송합니다”가 마지막 유언이 되지 않는 사회를 향하여
교사의 건강권은 곧 아이들의 안전권이며, 모든 노동자의 쉴 권리는 사회 전체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다. “독감이라 죄송하다”며 출근했던 고인의 마지막 사과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노동 인권 의식을 고발하고 있다. 정부는 제한적 상병수당 제도화 계획 뒤에 숨지 말고, 지금 당장 무너진 인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
‘아프면 쉴 권리 공동행동’은 모든 일하는 사람이 아플 때 죄책감 없이 쉴 수 있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다. 부천 유치원 선생님의 유족과 연대하고, 직무상 재해로 승인받는 과정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아픔을 미안해하지 않는 사회, 쉴 권리가 시혜가 아닌 당연한 권리로 보장받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2026년 4월 3일
아프면쉴권리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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