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는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작년 그 주, 2014년 4월 21일의 논평을 내지 못했다. 이 논평을 정기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2012년 3월 이후, 마침 겹친 두 번의 명절을 빼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모든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마 무엇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말할 수 있을까. 아직 아니다. 사고로부터의 거리로 보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솔직히 아직 말할 것이 많지 않다. 여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적고 의심은 많다.
그래도 이 며칠, 언론이든 모임이든 또는 개인이든 글과 말이 있는 곳이면 누구도 그냥 지나가지는 못하리라. 그 누구라도 빚을 졌으니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 넘칠 것으로 짐작한다. 설사 주저함이 더 강해도 입을 벌려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록할 책임을 느끼는 자,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의 현실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아 망설이면서도, 꾹꾹 눌러 써놓아야 한다. 망각과의 투쟁, 이 논평은 단지 그것을 위한 것이다.
기록이라면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충실히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 시기가 무슨 의미였는지 생각한다. 지난 일 년을 무엇으로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 때, 2014년 4월 28일 논평을 통해 남은 날들이 책임을 둘러싼 투쟁이자 정치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서리풀 논평 바로가기, 프레시안 바로가기). 스스로 평가하건대 그리 많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정부의 책임 문제가 핵심일 것이라고 했던 것도 엇비슷하게 맞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더 나갔다. 국가가 책임을 제대로 따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당연했지만, 그 후 벌어진 일은 카트리나에 대처했던 미국 부시 행정부와 달랐다. 비경제적 취약성과 불확실성, 개인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서 역할을 찾는다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신자유주의 국가와도 다르다.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자. 우리는 지난 일 년을 “소수화를 통한 배제”의 정치가 작동한 때로 기억하려 한다. 소수화와 배제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두 짐작할 것이다. 희생자와 가족들은 끊임없이 더욱 소수(마이너리티)로 몰리고 점점 더 별난 사람들이 되었다.
물론, 저절로 그리 되었을 리 없다. 희생자와 가족을 다수 대중으로부터 분리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고, 드디어 얼마간 성공했다. ‘특별조사위원회’를 얼마나 많은 돈과 인력을 쓰는가의 문제로 만들었고, 희생자와 가족의 (전해지지 않는) 고통은 배상과 보상의 돈(액수)을 둘러싼 시비로 치환했다.
그뿐인가,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자는 정당한 요구는 치안과 질서, 심하면 개인의 성향과 품행 문제로 변질되었다. 희생자 가족을 두고 본래부터 반정부니 정치적이니 하는 소리가 딴 것이 아니다. 단식을 통한 절박한 요구조차 예외적인 사람과 일로 몰아붙일 정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당사자 아닌 사람들을 멀리 떼어 놓는 것에 집중된다.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엄청난 액수의 배·보상이나 대학 특례입학, 특별조사의 비용 같은 것만 부각된다(진실이 무엇인지는 관계없이 인상과 상징만 남는 것이 특징이다). 세월호는 (꽤 성공적으로) 소수가 되어가고 있다.
며칠이 지나면 이제 일 년이 지났다는 명분이 새로 보태질 것이다. 이 시기 경제는 국가의 허점이고 약한 고리지만 다시 국가가 스스로를 강화할 수 있는 지렛대 노릇을 한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예의 그 국익론도 단단히 한 몫을 한다(1주기 당일 출국하는 대통령이 무슨 다른 이유를 대겠는가).
희생자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많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이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더 그럴 것이 명백하다. “정말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경제 살리기에 온 힘을 다 하자.” 이를 거부하는 자, 더욱 소수로 몰릴 것이고 더 철저히 배제될 것이다.
소수로 만들기와 배제,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희생자를 배제하고 축출하는 데에 성공한 이후를 더 주목해야 한다. 국가와 그 소수자의 관계가 뒤집히기 때문이다. 사고와 희생의 책임을 져야 할 국가는 이제 자애로운 보호자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다. 국가는 책임 주체로부터 보호와 시혜의 주체, 그것도 소수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주체로 전환된다.
희생자와 가족을 지원한다는 많은 조치가 여기에 속한다. 금융지원, 긴급 생활자금, 대학 특례입학, 의사자 지정 등. 희생자 가족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국가는 최선을 다하는 보호자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사실, 책임을 져야 할 국가가 보호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가난에 대처하는 국가의 자세와 방식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굳이 헌법 정신이나 복잡한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가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명백하고 직접적이다.
그러나 기초생활보호나 의료급여에서 볼 수 있는 국가의 모습은 책임이 아니라 시혜의 뻔뻔함이 아닌가. 그것이 아니면 도덕적 해이를 말하고 감시와 규제를 당연한 일로 여길 수 없다. 전형적인 온정주의에다, 훈육하는 보호자의 모습이다.
국가가 책임을 벗어던지고 보호자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소수로 분리했기 때문이다. 단지 몇몇 사람의 일이어야 국가의 책임은 희미해지고 그것은 개인, 그것도 일탈한 개인의 책임으로 바뀐다. 분리되고 ‘벗어난’ 사람들이 비로소 국가의 규율과 보호, 시혜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따지면 어디 가난뿐일까. 분리와 배제를 통해 유사 보호자 노릇을 하려는 시도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물론, 세월호 희생자는 시작과 끝이 다르다. 하지만 이들을 끊임없이 배제함으로써 국가가 ‘역전’을 노린다는 것은 비슷하다.
이제 일 년이 지나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가 아직 허술하다는 것이 남은 기회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자로부터 책임을 묻는 자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연대가 온 힘으로 그 시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기억하고 공감하며 또한 동참하려 애쓴다. 분리의 시도에 맞서는 것은 일상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그 결과로 반(反)-배제의 연대는 끊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분리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따로 떼어 놓으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해야 한다. 세월호 1주기는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소수화와 배제가 아닌, 주류화와 모두를 끌어안기 위한 새로운 다짐. 그래야 모두가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