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11월 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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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같은 일을 두고 ‘정치’ 논평을 써야 하는 상황이 괴롭다. 정치를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런 중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본래 책임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미국이 그냥 남의 나라인가. 그토록 ‘혈맹’을 강조해 온 한국의 모든 것이 그냥 떨어져 있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영향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예를 들어 수출과 사드, 그리고 의료 보험에 이르기까지, 공부하고 살펴야 할 일이 수두룩하다.

예산도 중요한 때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서 보듯이, 예산은 시시콜콜 생활이고 이해관계다. 요구하고 주장해야, 그리고 민주적이어야 그나마 눈곱만큼이라도 공공성이 생긴다. 그 중요한 것에도 눈길을 줄 여유를 찾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이 중단된 것이 대통령 퇴진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것 한 가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없으니, 대통령이 물러나는 도리밖에 없다. 어정쩡한 중간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민생’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이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물러나야 하는 이유. 나랏일을 챙기고 길을 잡기에는 모든 정치적 권위를 잃은 상태다. 국방과 외교는 계속 담당한다? 내부와 외부가 모두 믿지 않으니, 불가능하다. 2선 후퇴, 책임 총리와 거국 중립 내각? 여당과 야당이 100% 국민의 위임을 받아야 작동할 수 있으나, 이들 또한 정치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니 불안과 불신이 지속할 것이다. 그보다는 한 걸음 더 근본을 해결해야 한다.

요구는 명확하나 방법과 경로가 흐릿하다. 100만 집회가 끝났으니,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연구소도 지난 토요일 거리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다른 것은 언론이 보도했으니 그만두고,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너른 틈을 인식해야 했다. 시민의 요구는 명확하고 강력하지만, 대의 민주주의 체제는 이를 전혀 대표하지 못하는 상태. 그리고 계속될 교착 상태.

우리는 현재 상황을 이렇게 판단한다. 많은 이에게 익숙할, 권력의 크기와 균형이라는 관점이다.

첫째, 지금까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보인 반응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 생각하면, 권력이란 본래 그런 것이 아닌가? 물러나란다고 순순히 말을 들을 것이면, 이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권력을 놓으면 곧 정치적, 사회적 ‘죽음’이라고 생각할 텐데, 그들의 반응과 행동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 모두 아는 대로, 권력의 포기는 반성, 성찰, 결단할 문제가 아니다. 물리적 힘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끝까지, 온갖 핑계를 동원해서 버틸 것이 뻔하다.

둘째, 민주당은 ‘안전 운행’ 모드다. 대선에서 이길 확률이 높다고 보고 6개월쯤 더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승부수를 던지기보다는 패착만 피하자는 것처럼 보인다. 막다른 길이 아니면, 탄핵 소추와 같은 적극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약간만 모양을 더 갖추면 민주당은 동의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명목으로라도 2선 후퇴를 선언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모양만?) ‘거국’ 내각을 구성하는 안에 합의하는 경우다. 이번 주에라도 일은 이렇게 ‘풀릴’ 수 있다.

이런 타협은 2중, 3중으로 문제다.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물론, 대의제 민주주의가 목표로 하는 대표성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내각에 어떤 사람이 장관을 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선언이니 합의니 하는 것으로는 헌법과 법률의 근거가 약하니 현실 변화에도 견디기 어렵다. 박근혜 정권이 (조금이라도) 지지를 회복하는 대로 얼마든지 ‘반동’에 나설 수 있다면, 중립이니 거국이니 하는 것은 불완전한 균형에 지나지 않는다. 반동을 지원할 기존 권력은 충분히 강하다.

셋째, 시민 사회는 자력으로 변화를 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체제 바깥에서 체제를 압박, 침투해야 하는 것이 본질적 한계다. 축적된 힘이 충분치 않고 단독으로는 정치적 실천이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다. 구조에서 비롯된 이런 상황을 금방 역전할 수는 없다.

이런 때에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의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제도 권력을 압박하고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확대와 공고화를 잣대로, 시민 각자가 직접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다.

첫째, 다시 탄핵(소추)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떠나, 탄핵은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파괴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공식’ 절차이다. 우리 사회가 집단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화하며 제도화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임무다. 이 자체가 가치라 해야 한다.

탄핵은 또한 정치 공간이다. 이제 막 100만이 모였으니 다음에는 훨씬 더 큰 규모가 아니면 ‘임팩트’를 보장할 수 없다. 탄핵 소추는 시민의 열기가 유지되고 커질 수 있는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다. “시민이 실천하는 ‘거리 민주주의’는 국가 권력 내부의 정치적 공간(탄핵 소추)과 결합해야 살아나고 자라날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너지 또는 시민 권력의 부분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관련 기사 : ‘탄핵’을 조직해야 한다)

둘째, 탄핵 소추를 위해, 유권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대선 출마 예상자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야 한다. 미국식 정치 운동이라 해도 좋다. 전화, 이메일, 블로그, SNS, 홈 페이지 게시판, 직접 방문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당신과 당신이 소속된 정당이 탄핵에 나서라고 직접 요구해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음에 (자기) 선거에서 지는 것이다. 시민이 곧 유권자라는 평범한 사실에서 출발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하겠다는 경고가 가장 큰 ‘가용’ 권력이다. 보장 받은 대선 주자가 있을 수 없다. 시민이 가진 권력이 ‘대권’ 주자나 정당이 가진 알량한 권력을 이겨야 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셋째, 시민 권력의 힘을 다시 결집하고 더 크게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 총파업’을 조직할 것을 (지난주에 이어) 다시 제안한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어지럽게 한 결과 국민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도 그 책임을 지지 않으니, 국민이 표시할 수 있는 적극적 항의는 국민으로서 해야 할 책임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다.

국민 ‘파업’의 권리는 직장, 학교, 가게를 가리지 않고, 생산과 소비를 망라하며, 공공과 민간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정을 마비시켰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희생해서 스스로 비우고 멈춘다. 시민이 보일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은 생산하고 소비하는 물적 토대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비움으로써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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