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블랙리스트 ‘통치’를 파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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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파면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바로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처음에는 문화예술에만 그런 것이 있는 줄 알았으나,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똑같이 벌어진 일임이 명확해졌다.

분야를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기준도 제 멋대로다. 야당 정치인과 인연이 있다, 정부 여당에 반대하는 선언에 참여했다, 야당 성향의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 단체 이름에 삐딱한 이름이 들어있다,…황당한 이유가 한둘이 아니다(기사 바로가기).

 

이런 ‘황당한’ 이유를 들어 ‘문제단체’ 130곳과 ‘문제인사’ 96명을 골라냈다.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공익사업을 진행하던 단체들은 이후 정부 지원에서 배제됐고, 교수와 전문가들은 정부위원회 위원직 등에서 교체됐다. 단체 100여곳으로 시작한 이른바 ‘문예계 블랙리스트’는 차츰 확대돼 1만여명에 이를 정도가 됐다.

 

보건복지나 환경, 해양수산 등 그래도 덜 정치적인 분야까지 포함된 것을 주목한다. 이런 부처가 포함된 것, 그리고 그 부처들이 만든 리스트에서 기준의 합리성이나 일관성, 결과적 의미 같은 것을 찾으려 하지 말라. 잘 봐줘야 허무한 코미디, ‘봉숭아학당’을 생각나게 한다.

 

보건의료 인터넷 매체인 <라포르시안>의 보도에는 보건의료 쪽 내용이 좀 더 자세히 나와 있다(기사 바로가기). 이 논평을 내는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도 리스트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렸다.

 

노동건강연대의 경우 인권위로부터 지원을 받아 산재노동자의 사회권 보장을 위한 인권실태 조사 및 역량강화, 인권교육 책자 발행 등의 사업을 수행했다. 그런데 노동건강연대가 의료민영화 전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문제단체로 꼽혔다.

 

…(중략)…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김OO 상임연구원은 복지부가 공모한 자살예방 및 지역정신보건 사업의 심사위원에서 배제됐다. 김 상임연구원이 소속된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 배출을 비전으로 하는 단체’라는 이유였다.

 

권력 핵심에 들여놓지 않겠다는 정도로 대단한 목표도 아니다. 가령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장기요양심판위원회, 중앙응급의료위원회, 혈액관리위원회에 무슨 큰 권력이나 있다고, 위원회 위원에서 배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까. 블랙리스트에 찍힌 사람들이 이 위원회에 한 번 참석이나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국가 안위’를 위협하거나 ‘사회 불안’을 조성할 처지도 아니다. 무슨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고, 수십 개 단체와 수백 명이 함께 하는 무슨 ‘본부’나 ‘연합’에 참여했다 해서, 그것이 무슨 대단한 위험 인물이라고.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 배출을 ‘비전’으로 삼았다는 이유는 허망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이런 황당하고 질 낮은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통치술’로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몇몇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 선호를 반영한 것만으로 볼 수 없다(그래서 박근혜가 영화 <변호인>을 싫어해서 송강호가 ‘찍혔다’는 말은 절반만 진실이다). 지식과 문화예술을 포함한 모든 사회활동을 통제하려는 국가 프로젝트로 해석해야 이해할 수 있다.

 

 

한 가지 근거.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하는 데에는 모든 국가 기구가 동원되었다. 정치와 외교안보는 물론, 보건복지부와 환경부에 식약처, 농촌진흥청, 산림청까지 전 부처가 움직였으니 ‘국가사업’이라 해야 옳다. 한 마디로, 정치권력이 국가를 장악하고 운영하는 한 가지 유력한 방식으로 다시 불려나온 것이다(‘다시’라고 한 것은 한국에는 블랙리스트의 유구한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형태는 조금 달랐지만).

통치술로서의 블랙리스트는 물적 토대 또는 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산영화제가 상징하듯, 국가 권력은 블랙리스트를 통해 예산, 정부 지원금, 직간접 보조에 개입한다. 금융지원이나 대출도 주물렀을 것이다. 오늘날 돈은 가장 강력한 통치 도구다.

 

언뜻 봐서는 자유로울 것 같지만, 언론과 학술 연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체제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개인이 생존하고 사회활동이 존속하는 필수 조건을 바꿀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질 수는 없다.

위원회 위원이나 연구비 같은 것은 경제와 직접 관계가 없지 않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더 중요한 물적 토대는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정확한 지적이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통치술’로서의 블랙리스트는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었는지 중요하지 않다. 실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얼마나 많은 돈이 영향을 받았는가 하는 결과도 부수적 관심사다. 어떤 통치 ‘효과’를 발휘했는지가 핵심이다.

 

이것이 블랙리스트 통치의 두 번째 포인트. 국가가 사회활동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강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각 개인이 알아서 협력하는 것이다. 피치자는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권력에 순응하고, 더 나아가면 스스로 그것이 옳다고 믿으면서 (가짜) 주인 노릇을 한다. 블랙리스트는 스스로 순응하고 협력하며 믿는 개인을 만들어내려 한다.

기준이 엉터리거나 일관성이 없다, 꼭 경제적인 것은 아니다, 또는 그것이 실제 얼마나 실행되었는가 하는 것은 블랙리스트의 본질과는 무관하다. 그런 것이 있으니(있을 수 있으니), 내가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하겠다, 이런 말과 일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 각 개인이 이렇게 바뀌는 것으로 블랙리스트는 제 목적을 이룬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연구자(교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국가 연구비에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이 연구자는 그동안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했을까? 끊임없이 조심하고 자기를 검열했을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윗터에 자기 생각 하나를 올릴 때에도 (있을지 모르는) 그 블랙리스트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부양의무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복지 단체나 의료 산업화를 계속 반대하는 의료단체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정부 방침과 다른 이런 주장을 계속하면 혹시 찍히지 않을까? 그러다 그 알량한 정부 보조금도 끊기면? 민간단체 지원 사업에 응모하면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까? 내내 이런 걱정을 해야 하면, 양심과 자유는 없고 순치될 수밖에 없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하는 블랙리스트는 명백하게 헌법을 위반했다. 양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포기해야 생존할 수 있다면, 도대체 다른 어떤 것을 헌법 위반이라 할 것인가. 대통령 탄핵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이를 실행한 비서실장과 비서관, 장관, 고위공무원도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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