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안전하게 진료하고 치료받을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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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진료 중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목숨을 해치는 일이 일어났다. 충격적이고 참담하지만, 한편으로 누구나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 점에서 가족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촉구한 ‘바람직한’ 사회적 대응 방안이 무엇보다 반갑고 미덥다. 아울러 환자와 공동체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애정에 경의를 표한다. 덕분에 자칫 차별, 혐오, 배제로 흐를 뻔한 사회적 반응이 조금은 차분하고 합리적인 논의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 또한 냉소와 비관보다는 다시 자세를 추스르려 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유족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 환자들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당부했다지 않는가. 불행한 사고가 생긴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가 진보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마땅히 새로운 희망의 근거로 삼고자 한다.

 

모두가 알고 지적하듯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돌아봐야 할 사회적 과제는 크게 두 가지로 수렴된다. 하나는 진료와 의료진의 안전 문제, 그리고 또 하나는 만성정신질환자 또는 정신장애인이 적절한 치료와 돌봄, 지원을 받는 일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안전한 진료라는 과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안전도 따지자면 그리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이번에는 한국의 진료 환경, 병원과 의료의 범위를 넘는 문화의 문제, 의료진과 환자의 관계 등, 안전성을 둘러싼 ‘구조’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당장 우리의 관심사는 안전한 진료를 보장하는 실질적인 방법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대로 진료를 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만 폭력의 주체가 되거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만 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아니다. 병원만 그런 것도 아니며, 이번에 사고가 생긴 외래 진료실만 그런 장소일 리 없다.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던 응급실에서의 폭력은 이미 알고 있는 예에 지나지 않는 것, 사고와 폭력은 의료 현장 어디서도 발생할 수 있다.

 

할 수 있으나 미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지금이라도 보완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부 환자, 일부 기관, 일부 부서에만 해당하는 ‘특수한’ 조치는 경계해야 한다. 당장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미봉책’은 병원과 의료진의 부담만 늘리고 무용지물로 전락할지 모른다.

 

예를 들어 금속탐지기를 설치하자는 제안. 총이라면 모르겠으나 방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방문객을 막을 수 있을까? 의료진이 대피할 통로, 보안요원이나 호신 도구 등의 아이디어도 있다지만, 갖가지 위험에 어느 정도나 효과가 있을지 미덥지 않다.

 

지금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은 진료의 안전성 보장을 위한 원칙과 방향이며, 여기에는 의료진뿐 아니라 환자와 방문객도 포함한다. 집단과 공간 전체의 위험과 위협은 의료진과 환자, 방문객을 가리지 않으니 당연한 범위이자 대상 설정이다. 누가 방화나 폭발 사고를 일으키면, 누가 피해자가 될지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원칙은 (1) 안전을 보장하는 한 가지의 ‘완전한’ 방법은 없으며, (2) 조직과 기관 전체의 ‘안전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조직과 기관, 즉 ‘시스템’이 좀 더 안전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느리지만) 최선의 접근이라 생각한다.

 

 

 

2014년 6월, 장성의 요양병원에서 큰 불이 나고 환자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서리풀 논평>은 이렇게 주장했다(바로가기).

개별과 특수의 대안이 아니라 바로 시스템 접근을 말한 것이었다.

 

“위험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널리 알려진 위험은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숨어 있는 위험에 더 신경 써야 할지도 모른다….위험은 자연과 시설, 기술, 사람, 그 어디든 잠재되어 있다. 설사 시설과 기술이 완벽하다 해도 사람이란 요소는 여전히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특수한 필요에 맞춘 기준과 행동지침이 설계되고 또한 실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 불이 났을 때 어떤 환자를 누가 무슨 방법으로 대피시킬 것인가. 시설마다 맞춤형의 기준과 지침을 만들고 또한 제대로 연습해야 하지 않을까.”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벌써부터 작은 요양병원에도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려면 국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내내 이 타령을 하다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갈까 걱정스럽다. 사고가 날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이 사람이 제대로 없었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인력기준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도 더 투자해야 한다. 훈련과 연습도 마찬가지다. 짐작이긴 해도, 제대로 된 화재대피 훈련을 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돈,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의료기관평가인증’이라는 제도에 안전 항목이 있지만, 여러 차례 병원 화재에 이어 이번 사고에서도 역부족임이 밝혀졌다. 다음과 같은 형식적인 규정과 기준은, ‘직원안전’을 필수 기준에 포함하는 정도로는, 무력하다는 뜻이다(자료 바로가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인증기준들을 충족하여야 합니다. 특히 안전보장활동의 ‘환자안전’, ‘직원안전’, ‘화재안전’ 범주 및 지속적 질 향상의 ‘질향상 운영체계’, ‘환자안전 보고체계 운영’ 범주에 속하는 9개 기준은 인증을 받기 위한 필수 기준으로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합니다.”

 

시스템 강화의 원칙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디고 돈과 자원이 더 필요하겠지만, 의료기관과 진료의 안전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거듭 시스템 접근을 강조한다. 정신건강의학과만 집중하다 보면, 응급실은 어떻게 하며, 병실은 또 어떻게 하란 말인가. 종합병원에 있는 위험이 동네 의원이라고 하나도 없겠는가.

 

한 가지 더. 이번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정신보건 시스템의 취약성을 고치는 것도 안전을 개혁하는 유력한 방안이다.

 

“정부 차원의 탈수용화와 지역사회 치료로의 정책 전환에 대한 상징적 선언도 없었다. 단지 의학적 치료를 위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의 지불 체계가 건강보장대책의 거의 전부이다 보니 환자는 입원 치료 후 지역사회에서 방치되거나, 입퇴원을 반복하다가 만성 환자로 전락하기 십상인 게 현실이다.”  (기사 바로가기)

 

그 환자가 지역사회에서 방치되지 않았다면, 이번 사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백 걸음을 양보해도 비슷한 사고가 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만성 정신질환과 정신장애에 관한 한, 보건과 안전이 나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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