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은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인간은 모두 존엄하고 편안한 죽음을 원한다. 편안한 장소에서 고통을 최소화한 채 생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병상 부족 등과 같은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제약이나 환자 및 가족의 상황에 따라 원하지 않더라도 다른 병동이나 호스피스 등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기 환자의 이동은 오로지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조직적 압력에만 기인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의료진은 자신들의 행위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단지 병원의 규율과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을까? 말기 환자의 이동에 영향을 끼치는 복잡한 층위를 다루는 논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논문 바로가기: 말기의 이동 경로와 돌봄의 한 형태로서의 전원(傳院)). 이 논문은 궁극적으로 “좋은 돌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연구자는 2016년 9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의 호스피스, 완화의료팀에서 참여관찰과 면담을 주축으로 한 민족지적 연구(혹은 사례연구)를 수행했다. 본고에서 지칭하는 Z병원은 소위 “빅5”라 불리는 대형 상급종합병원 중 하나로서, 입원 치료가 필요한 말기 환자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연구자는 호스피스 교육을 이수하여 정식으로 자원봉사자 등록을 한 이후 환자 돌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며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자는 말기 환자의 이동을 분석하기에 앞서, 먼저 이 환자들이 왜 Z병원에 오게 되었는지, 왜 이동을 할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한다. 한국은 국가 주도의 압축적 근대화를 거치면서 자본이 서울을 중심으로 집약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궤적을 삶 속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환자들에게 서울의 상급종합병원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치료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공급에 비해 폭발적인 수요는 환자들이 머물지 못하고 떠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자는 상급종합병원이 말기돌봄에 큰 관심을 갖지 않으며, 환자의 급성기 문제를 치료한 이후에 최대한 빨리 이동시키는 것이 상급종합병원의 근본적 기능이자 존재 이유라고 지적한다. 즉, 말기로 선언된 환자들은 병원의 목표와 맞지 않는 존재가 되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도 호스피스, 완화의료팀은 환자들 각각에게 ‘좋은 죽음’의 모습과 장소, 필요한 돌봄의 의미를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이동을 숙고하며 실천했다. 일반적으로는 호스피스와 집이 가장 바람직한 경로였고 중환자실은 가급적 보내지 않아야 하는 곳이었지만,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가정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은 가족 구성원의 부단한 노동이 수반될 수 있는 조건이어야만 가능했고, 호스피스로의 이동 역시 환자가 필요로 하는 의료개입의 종류와 정도 등이 원활하게 합의되어야만 가능했다.
연구자는 환자를 다른 곳으로 보내는 전원이 일견 가장 관료적인 것으로만 비춰질 수 있으나, 가까이에서 실천을 들여다 보았을 때 이것은 돌봄의 한 형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전원을 병상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환자를 빨리 보내려는 의료시스템의 실패를 방증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팀은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결국 환자와 가족들이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기에 가장 괜찮은 장소를 확보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양한 환자와 가족들의 요구와 상황을 세심하게 반영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의료시스템의 요구를 거슬러 환자를 보내지 않기 위해 “같이 버텨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본고에서 윤영란 간호사(가명)는 환자 구정혜(가명) 씨가 화요일에 호스피스에 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미 약속된 토요일 퇴원을 넘겨 “같이 버텨보기를” 감행하기도 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병상 부족이나 의료 관행의 문제점들이 많이 지적되어왔지만, 연구자는 더 나아가 병원에서 일하는 말기돌봄 전문가들의 실천을 들여다봄으로써 복잡한 층위들이 어떻게 얽혀있는지 드러내고자 했다. 말기의 이동에는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압력 외에도, 환자 및 가족들의 선호와 필요한 의료 기술, 가족구성원의 노동가능 여부 등이 각 경로와 장소에 결합되어 있었다. 또한 연구자는 돌봄이 결국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덕적이고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실천이라는 것, 돌봄의 주요한 원칙 중 하나는 특정 개인을 넘어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화적 배경까지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등을 논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했을 때 연구자는 호스티스, 완화의료팀에 의한 환자의 이동이 돌봄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우리는 지금 “돌봄 위기”를 수없이 외치고 있지만, 그에 앞서 돌봄을 구성하는 각각의 실천들은 무엇이며 돌봄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돌봄으로서의 의료는 환자와 가족들의 경제적, 관계적, 지리적 조건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조건들을 의료적 기술과 지식을 통해 개선해주는 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료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개선은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다만 돌봄이 지금처럼 협소한 의미와 범위에 갇혀 있는 한, 우리가 꿈꾸는 바람직한 돌봄구조의 실현은 요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지정보
강지연. (2022). 말기의 이동 경로와 돌봄의 한 형태로서의 전원(傳院). 한국문화인류학, 55(2), 77-131.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