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18년 6월, 제주도에는 내전을 피해 들어온 예멘 난민 신청자가 500여 명에 달했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법 폐지와 관련한 청원이 올라왔고, 난민 유입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온라인상에서 확대·재생산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이는 단 2명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인도적 체류만 허가받았다. 인도적 체류 지위는 체류 기한이 짧고, 난민과 달리 의료나 주거, 교육 등 사회보장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비인도적’이란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고작 1.3%(2010~2020년)에 불과해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또한 치안, 일자리, 복지재정 등 난민 유입과 관련된 가짜뉴스들은 사람들에게 난민에 대한 환대보다는 적대를 부추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반 정권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이나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 등 본국에서 안전하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은 한국에서의 난민 지위 인정을 기다리고 있다.
난민은 이주 이전 본국에서의 상황과 이주 과정, 이주국에서의 난민 인정과 적응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 트라우마, 가족해체 등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겪게 된다. 난민 신청자 중 성인 남성 비중이 높은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 있으니, 바로 난민 아동이다.
성인도 감당하기 힘든 과정을 겪은 난민 아동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으려면 어떠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까? 오늘은 난민 아동의 정서적 건강과 사회적 맥락 요인 간의 상관성을 밝힌 연구 논문을 소개하고자 한다(☞논문 바로가기: 사회적 맥락 요인과 난민 아동의 정서적 건강).
연구진은 난민 아동의 건강상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기존 연구들과 달리 이들의 정신건강을 ‘증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요인을 밝히는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에 아동의 발달 증진을 위한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생태학 이론에 근거하여 사회적 맥락 요인과 난민 아동의 정서적 건강과의 연관성을 분석하였다.
연구진은 2010~2011년과 2016~2017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위치한 초등학교를 다니는 난민 배경 아동 682명이 응답한 설문조사 자료(MDI, Middle Years Development Instrument)를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분석에 활용된 사회적 맥락 요인은 ‘학교 환경’, ‘학교와 가정에서 성인의 지원’, ‘또래 소속감’이고, 정서적 건강 지표는 ‘삶의 만족도’, ‘자아 개념’, ‘낙관성’, ‘슬픔’이다.
분석 결과, 아이들에게 지지적인 학교 분위기, 아이들에 대한 교사와 부모의 지원, 또래 친구들과의 의미 있는 관계는 난민 아동의 정서적 건강과 긍정적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이주 이전 본국에서 태어난 1세대 난민 아동이나 이주국에서 태어난 2세대 난민 아동 모두에게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구진은 난민 아동이 낯선 이주국에서 겪게 되는 사회적 고립과 배제에 대처함에 있어서 하나의 작은 사회인 학교가 아동의 학습 기능뿐만 아니라 정서적·사회적 기능을 지원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사실상 이 연구 결과는 난민 아동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새롭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난민 아동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21년 한 해 한국에서 난민 인정 신청자 중 18세 미만은 188건이었는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아이들은 0~4세는 32명, 5~17세는 8명으로 총 40명인 것으로 확인된다. 매우 소수에 불과한 이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과 유치원, 학교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돌봄과 교육의 기회는 얻었을까.
국내 실태조사에 따르면 난민 아동은 ‘난민’이라는 이유로 차별, 무시당한 경험은 물론 학교 공부의 어려움, 문화적응 스트레스, 우울 불안 증세가 심각한 것으로 보고된다(초록우산어린이재단, 2018). 또 다른 조사에서는 한국은 난민 보호에 있어 난민 지위의 인정 절차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난민 아동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 및 자원이 미미함을 지적하고 있다(세이브더칠드런, 2018). 이러한 실태는 난민 아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난민 지위 인정을 기다리는 아이들, 이주 배경의 아이들에게도 다르지 않다.
본인의 선택으로 난민이 된 아동이 있을까. 한국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의 비준 당사국으로 난민 아동이 ‘난민’과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보호하고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제도 미비와 정책 부재로 인해 교육뿐만 아니라 의료, 주거 등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현실이다. 제도와 정책 개선이 시급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곁에 있는 난민 아동과 가족들이 한국 사회에서 건강하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애정과 환대 역시 필요하다.
* 서지정보
Emerson, S. D., Gagné Petteni, M., Guhn, M., et al. (2022). Social context factors and refugee children’s emotional health. Social Psychiatry and Psychiatric Epidemiology, 57(4), 829–841.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국내 난민 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 2018.
세이브더칠드런, 〈난민 아동 지원 성과 평가 및 지원 방안에 관한 연구〉, 2018.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