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연구통

지방분권이 지역 주민의 건강을 향상할 수 있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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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윤석열 정부는 6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지방시대’를 설정하고, 진정한 지역주도 균형발전 시대를 열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하였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를 통해 5개년 계획인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였다.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중앙 권한의 지방 이양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국토, 산업, 고용 등 6개 분야, 67개의 우선 이양 과제가 마련되었고, 관계 법령 개정 등이 현재 추진 중이다. 또한 특별자치도나 특례시 출범을 통해 일부 지방정부에는 더 많은 권한과 재정을 위임하고 있다.

 

이러한 지방분권은 지역 보건의료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줄까? 기존의 분권화 연구는 특정한 보건 또는 돌봄 조치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인구집단 건강의 단일 척도 변화만을 분석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권한이양이 전체 보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는 전체 시스템 접근 방식을 활용하여 영국 그레이터맨체스터 지역의 권한이양이 여러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논문이 게재되었다(☞논문 바로가기: 권한이양이 지역 보건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의 증거). 그레이터맨체스터의 권한이양이 지역주민의 기대수명 연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연구는 지난 서리풀연구통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관련기사: 지방분권은 지역주민의 기대수명을 더 늘릴까?). 오늘 소개할 논문은 이전 논문과 동일한 연구진이 수행한 것으로, 보건과 사회적 돌봄의 위임이 다른 공공 서비스의 권한이양과 상호작용하며, 어떤 메커니즘으로 건강결과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잉글랜드 북서쪽에 위치한 그레이터맨체스터는 2014년 11월 권한이양 협정을 가장 먼저 체결한 지역으로, 런던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가장 많은 권한을 이양받은 곳이다. 협정을 통해 교통, 주택, 토지 이용, 기술, 교육, 고용, 치안, 사법 등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와 기금에 대한 의사 결정과 예산 권한이 위임되었다. 이러한 서비스 제공에 대한 책임은 2017년에 공식적으로 선출되기 시작한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과 10개 지방 당국의 시장 및 선출된 지도자를 회원으로 하는 그레이터맨체스터 연합 기구(Greater Manchester Combined Authority, GMCA)에서 분담하였다.

 

또한 그레이터맨체스터는 NHS 잉글랜드와 지역 내 ‘보건 및 사회적 돌봄 서비스 이양에 관한 협정’(이하 ‘이양 협정’)을 체결하였다. 위임된 다른 공공 서비스와 달리 시장과 GMCA는 보건의료 부문에 대한 공식적인 통제권을 갖지 않는다. 대신 지역 파트너십(GM 파트너십)이 설립되었으며, 여기에는 그레이터맨체스터의 10개 임상위원회(Clinical Commisioning Goups, CCGs)와 지방 당국, NHS 잉글랜드가 참여하는 포괄적인 협력 위원회가 포함된다.

 

GM 파트너십은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임상위원회나 지방 당국에 대한 의사결정이나 예산 권한이 제한적이다. 즉, 이양 협정은 서비스 실행에 대한 책임은 이양되었지만, 재정 권한과 자원은 상대적으로 중앙집중화되어 있는 ‘소프트’ 위임이라고 할 수 있다.

 

제한된 권한 위임에도 GM 파트너십은 공식적인 거버넌스 협약을 통해 NHS 기관과 지방정부와 정기적으로 만나 관계를 구축하였으며, 이는 인구집단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 서비스 전반에 걸쳐 더 긴밀한 서비스 통합을 가능하게 했다. 더욱이 그레이터맨체스터는 시장과 GMCA에 위임된 공공 서비스에 대한 권한이 다른 지역보다 더 포괄적이었기 때문에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 정책의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레이터맨체스터는 5년 간 4억 5천만 파운드를 제공하는 ‘국가 지속 가능성과 혁신’ 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받았다. 이 기금은 파트너십의 재량에 따라 10개 자치구에 배분되며, 이를 통해 GM 파트너십은 NHS와 지방 당국에 대한 지역 내 권한을 강화하였다.

 

연구진은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WHO의 보건의료체계 성과 평가 틀을 활용하였다. 평가 틀에서 제시한 각 영역(보건의료체계의 기능, 중간 목표, 최종 목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맞춰 98개의 성과 지표가 선정되었다. 권한이양의 잠재적인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170개의 건강 정책 문서를 분석하였으며, 이양 협정 이후 시행된 보건 정책 개입이 어떤 지표를 목표로 했는지 매핑하였다. 일반화된 합성 통제집단 방법을 사용하여 98개 지표에 대한 권한이양의 영향을 추정하였다. 런던을 제외한 잉글랜드의 나머지 지역이 합성 통제집단에 포함되었고, 코로나19의 영향을 제거하기 위해 이양 협정이 발효된 2016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의 영향을 추정하였다.

 

분석 결과, 보건의료체계의 최종 목표에 해당하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삶의 만족도 모두 추정된 합성 대조군보다 그레이터맨체스터에서 더 많이 증가하였다. 기대수명의 개선은 지역박탈 수준이 높고, 기대수명이 낮았던 지역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이러한 긍정적인 건강 결과는 공중보건, 일차의료, 병원 및 사회적 돌봄 서비스의 개선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 해당하는 알코올 관련 입원과 범죄의 감소, 고용률 증가 등에 의해 주도되었다. 반면, 외래, 정신건강, 산부인과, 치과 서비스에 대한 권한이양의 영향은 엇갈렸으며, 사회적 결정 요인 중 일부 요인은 악화되었다.

 

연구진은 보건의료 자원에 대한 권한 위임이 제한적인 조건 속에서도 권한이양으로 인한 건강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건강과 사회적 돌봄을 포함한 지역 내 공공 서비스 전반에 걸친 의사결정 조정이나 기금 배분과 같은 다른 메커니즘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지방분권의 흐름에 따라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충분한 권한이 지역으로 이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앙정부는 지역으로 ‘지침’과 ‘예산’을 내리며 여전히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지역주도형 정책을 강조하고 있지만, 지방정부의 역할이 전혀 없는 보건의료 사업도 많다. 국비 100%로 운영되는 보건의료 사업은 지역에서 지방정부가 권한을 발휘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특히 중앙에서 지역 의료기관으로 바로 예산이 내려가는 사업의 경우, 지방정부는 사업에 대한 리더십은커녕 현황 파악도 어려운 실정이다.

 

모든 보건의료 사업의 최종 목표인 ‘지역주민의 건강 향상’은 보건의료 분야의 노력만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주택, 고용, 교육 등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소프트’ 이양만 진행된 보건의료 사업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공공 서비스를 위임받은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 사업에서 지방정부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서지 정보

Britteon, P., Fatimah, A., Gillibrand, S., Lau, Y. S., Anselmi, L., Wilson, P., … & Turner, A. J. (2024). The impact of devolution on local health systems: evidence from Greater Manchester, England. Social Science & Medicine, 348, 116801.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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