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은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오늘날 맞벌이 여성들이 겪고 있는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은 흔히 “가정 친화적이지 않은 직장”과 “직장 친화적이지 않은 가정”이라는 상징적 어구로 표현되곤 한다. 워킹맘들이 노동 시장에서 경험하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 그리고 가정 내 육아와 가사노동의 더 큰 부담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소시우스(Socius)’에 출판된 한 연구에 따르면, 워킹맘들은 맞벌이가 자녀의 ‘주관적 사회적 지위 인식(subjective social status, SSS)’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하는,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논문 바로가기: 아이들은 스스로의 사회적 계층을 어떻게 인식할까? 교육적으로 동질적인 부모, 워킹맘, 그리고 아이들의 주관적 사회적 지위)
과거에는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따라 남성 가장의 사회적 지위를 아내와 자녀들 모두가 공유한다는 합의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서는 더 이상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유효한 설명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여성의 학력 수준은 남성을 넘어섰고, 경제활동 참여율도 동등해졌다. 특히 여성 학력 수준의 향상은 배우자 선택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결과로 교육적 ‘동질혼(homogamy)’의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이렇듯 교육 수준과 배우자 선택의 측면에 있어서는 전통적 성별 규범이 크게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높아진 학력이 반드시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기에, 가정 내 경제적 책임과 권한에 있어서는 남성의 우위가 지속되는 복잡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남성의 일 대 여성의 일’이라는 이분법적 구분과 그에 걸맞는 행동 양식을 요구하는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적 성별 규범은 가족 내에서 사회적 압력의 형태로 작동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연구진은 부모의 학력 수준의 일치 여부(교육동질혼 대 비동질혼)와 여성의 경제활동이 아이의 주관적 계층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규명하고자 하였다. 사회화의 주요 주체인 가족은 자녀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러한 인식은 자녀의 웰빙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한국노동패널 데이터를 사용해 15세에서 18세 사이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다음 세 가지 가설을 검증하였다.
<가설 1> 지위 극대화 가설: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은 부모의 동질혼과 관계 없으며, 부모 중 가장 높은 지위가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과 관련이 있다.
<가설 2> 추가적 지위 극대화 가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남성보다 높지 않아 전통적인 성별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한,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는 추가적인 지위 극대화의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부모가 동질혼인 경우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이 높게 나타날 수 있다.
<가설 3> 성역할 이탈 가설: 전통적인 성 역할을 따르는 가정의 자녀들보다 전통적인 성 역할을 따르지 않은 가정의 자녀인 경우 자신의 주관적 계층 의식을 더 낮게 인식할 수 있다.
연구 결과, ‘추가적 지위 극대화’ 가설과 ‘성역할 이탈’ 가설이 지지되었다. 즉, 비동질혼의 부모를 둔 자녀일수록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낮게 평가하였다. 이는 학력 불일치로 인한 부모 간 사회경제적 차이가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에 독특한 영향력을 보였다. 여성이 전업주부일 경우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은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여성이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후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은 낮아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가계 소득에서 여성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서도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졌다. 여성의 소득 비중이 가계 소득의 60퍼센트를 넘어갈 때 자녀의 주관적 계층 의식이 반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이 전업주부인 경우보다는 자녀의 주관적 계층의식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비동질혼과 여성의 경제활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연구진은 이에 대해 맞벌이가 가정 내 불화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현실 문제와, 아이 양육에 대한 더 큰 몫과 책임감이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문제, 그리고 워킹맘들이 ‘바람직한’ 모성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문제 등에 주목한다.
이 연구결과는 가족의 경제적 조건 뿐 아니라 차별적인 성별 규범이 자녀의 사회적 지위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으면서도 동시에 ‘바람직한 어머니’의 역할을 충족해야 한다는 압박이 자녀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가정 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여성의 경제활동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 서지 정보
Shin, H., & Kim, C. (2024). How Do Children Self-Locate Themselves in the Social Hierarchy? Educationally Homogamous Parents, Working Mothers, and Children’s Subjective Social Status. Socius, 10, 23780231241274193.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는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