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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 열풍에 경계해야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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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꿈의 비만치료제’라 불리는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가 국내 출시되었다. 기존 약들에 비해 식욕 억제 등을 통한 체중감량 효과가 탁월한 탓에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비만은 각종 질병 위험을 높이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비만치료제의 등장을 그 자체로 문제 삼을 수 없다. 다만 위고비 열풍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오남용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위고비는 BMI(체질량지수) 30 이상인 성인이거나 고혈압 등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으면서 BMI 27 이상인 과체중 환자만 처방받을 수 있는 전문의약품이다. 하지만 미용 목적의 다이어트약 수요가 상당한 우리 사회에서 이것의 왜곡된 투약 행태가 횡행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미 그러한 문제가 벌어지고 있다. 의료기관들의 상업적 광고가 난무하는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증상을 묻지 않고 처방해 준다는 병원 목록이 돌고 있으며, 청소년을 포함한 개인 간 불법 중고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비급여 의약품으로 분류돼 병·의원, 약국마다 판매 가격이 제각각인 탓에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고 있다.

 

특히, 전공의 이탈 사태를 계기로 허용 기준이 대폭 완화된 비대면 진료 영역이 부적절한 처방의 온상이 되고 있는데,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별다른 제약 없이, 또 투약법이나 부작용에 대한 설명 없이 단 수십 초 내에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관련기사: 바로가기). 그간 우리 연구소를 비롯하여 시민사회에서 줄기차게 경고했던 비대면 진료의 위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례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무분별한 투약에 따른 부작용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위고비는 허가 범위 내에서 사용해도 두통, 구토, 탈수로 인한 신장 기능 악화, 근 손실, 급성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희귀 눈 질환의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게다가 냉장 보관해야 하는 주사제인 위고비를 불법 유통하는 과정에서 변질·손상이 발생해 건강에 위해를 끼칠 우려도 적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달 국정감사 자리에서 복지부 장관과 식약처장은 위고비 오남용 예방을 위한 홍보 활동을 적극 펼치는 한편 비대면 진료 처방 금지 의약품 범위에 이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는데, 과연 이런 조치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 든다. 과도한 시장 수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제도적 허점을 파고드는 거래 행태를 근절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위고비 열풍의 또 다른 우려는 접근성의 격차, 즉 소위 ‘위고비 디바이드’라 불리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위고비의 국내 병·의원과 약국 공급 가격은 한달 투약 기준으로 37만원이지만, 유통 비용과 진료비 등이 포함된 실제 부담 비용은 최소 40만원대에서 최대 100만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환자들이 부담하기에 결코 적지 않은 가격으로, 이러면 의학적 필요보다는 경제적 능력에 따라 투약 기회가 불균등하게 주어질 우려가 크다.

 

실제로 작년 8월 미국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 가운데 비만율과 당뇨 발병률이 가장 낮은 부촌 지역에서 위고비와 같은 비만치료제 처방 비율이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부익부 빈익빈’의 ‘마태 효과’가 나타난 현상으로 설명했다. 즉, 부유층이 미용 목적으로 비만치료제를 쉽게 더 많이 구매할수록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부족한 비만인들은 이를 구하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강남에 몰려있는 수많은 비만클리닉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국내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성의 격차는 단순히 체중감량과 건강 결과의 불평등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위고비는 부유층의 체중감량 능력을 증대시킴으로써 비만을 더욱 도덕적 문제로 만들 수 있다(☞관련논문: 바로가기). 이는 비만한 사람은 ‘게으르고 불성실하며 절제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그릇된 편견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획기적인 치료제가 존재하는데도 여전히 뚱뚱하다는 건 그만큼 살 빼려는 의지가 부족한 개인의 책임 문제로 해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슈퍼 비만치료제가 등장했다고 해서 비만과 그에 결부된 ‘비만 낙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전의 “뚱뚱한 사람은 살 빼기 위해 열심히 운동해야 한다”는 믿음이 이제는 “살 빼주는 약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믿음 정도로 바뀌게 되었을 뿐이다.

 

비만 치료가 불필요한 사람들조차 위고비를 찾는 까닭은 간명하다. 바로 ‘비만차별주의(Weightism)’가 만연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한비만학회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6명이 ‘우리 사회가 비만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고 응답했을 정도다. 그리고 당연히 남성(52%)보다 여성(71%)이 비만 낙인과 차별을 더 크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러한 체지방에 대한 집단적 두려움을 설명하려면 몸을 끊임없이 최적화하도록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지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독일 역사학자 위르겐 마르추카트는 <피트니스의 시대>(2021, 호밀밭)에서 몸을 ‘핏하게 가꾸는’ 것이 도덕적 의무가 된 시대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이러한 규범적 이상에 반하여 자기 몸을 엉망이 되도록 방치하는 ‘패트니스(Fatness)’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정당화된다.

 

오늘날 핏한 체형은 능력의 상징, 즉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능력”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능력”의 상징이 되었고, 뚱뚱함은 이런 능력의 결핍으로, 뚱뚱한 사람은 실패자로 간주된다. ‘매력적’인 체형이 취업 가능성을 높이고 임금과 승진 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외모가 경쟁력이 된 시대에 ‘몸매 가꾸기’에 대한 투자는 ‘합리적’ 생존 전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안티비만 담론이 지배적일수록 장애인을 비롯하여 고강도 노동과 저임금 등 사회구조적 원인으로 인해 ‘핏한 몸’을 만들기 힘든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더 큰 피해와 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체형에 따른 부당한 차별 대우에 반대하며 체형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전개될 필요가 있다. 한데 해외 사례가 보여주듯이, 위고비의 출현은 ‘자기 몸 긍정하기(body positivity)’와 같이 비만 낙인에 맞서는 운동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물론 비만 치료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비만의 상당 부분이 생리학적, 유전적 요인에서 기인한다는 것은 일찌감치 규명된 과학적 사실이다. 이에 의료전문가들은 “비만은 질병이다”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 비만 낙인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이러한 비만의 의료화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하는 방식으로 낙인을 강화하고 살찐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측면이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긴장이 발생하는 까닭은 비만 개념의 모호성 때문이다. 세계비만연맹의 정의에 따르면 비만은 단순한 과체중보다는 생리적 (식이섭취 조절) 기능장애에 가깝다. 반면 WHO는 비만을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비정상적이거나 과도한 지방 축적”으로 정의한다. 이는 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BMI 범주가 ‘비만’에 속하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대개 전자의 의미로 “비만은 질병이다”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뚱뚱함은 질병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이 논란을 해결하는 한 가지 철학적 방법은 비만 논의에서 ‘질병’ 개념의 의미를 의도와 맥락에 따라 실용적, 전략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청각장애인 부모가 자녀의 청각장애를 질병이 아니라 정체성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보험회사가 청각장애를 치료받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것이 상호 모순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관련논문: 바로가기).

 

하지만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전문가들이 그냥 용어를 바꾸는 것이다. 미국임상내분비학회가 비만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비만에 대한 새로운 진단 용어로 ‘지방증 기반 만성질환(adiposity-based chronic disease, ABCD)’을 제안했듯이 말이다(☞관련기사: 바로가기).

 

마지막으로 위고비 열풍 현상과 관련해 좀더 넓은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의약품 생산체제의 불평등 문제다. 삭센다와 위고비를 개발한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는 이 약들 덕분에 단숨에 유럽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비만과 같이 큰 수익 창출이 기대되는 치료제로 연구개발이 집중되는 양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이렇게 비만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R&D 예산이 투입될수록 환자 수가 적어 시장성이 부족한 중증 희귀난치성질환이나 소외열대질환 등의 치료제 개발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즉, 슈퍼 비만치료제의 눈부신 성공 이면에는 사회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왜곡함으로써 각종 건강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추세적 경향이라면 조만간 제2, 제3의 위고비가 계속 출시될 것 같다. 그런데 과연 이런 치료제와 산업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불평등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총체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때에야 한편에서는 식품 산업계의 이익을 위해 불량식품으로 살 찌우고 다른 한편에서는 바이오제약 자본의 성장을 위해 핏한 몸이 될 때까지 비만약을 먹이는 체제적 힘, 즉 우리를 ‘비만’이라는 굴레에 가둬 놓고 못 살게 구는 체제의 통치 합리성을 문제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위고비는 우리 사회를 ‘비만 공포(혐오)’로부터 해방시켜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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