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신당’은 무엇을 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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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이라는 이름이 있지만 그냥 ‘안철수 신당’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그러는 편이 알아듣기 쉬울 것 같아서다. 사람 이름을 계속 쓰는 것도 민망하니 ‘신당’이라고 줄인다. 그래도 크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먼저, 우리가 정당을 말하는 이유부터 밝히는 것이 좋겠다. 이미 여러 차례 주장했듯이 우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이나 이와 직접 관련된 이슈들을 공부하고 훈련하는 곳이다. 그런 조직이 정당(또는 정치)에 참견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오버’하는 것인가?

혹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은 낡은 틀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우리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아니, 권리 정도가 아니라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제 건강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잘 드러낸 그대로다. 건강과 질병은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과 경제, 정치와 사회가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당이 기꺼이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정당과 정치를 문제 삼는 것은 차라리 의무라고 해야 한다. 꼭 건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떤 개별 영역이든 (교육이든 노동이든 또는 문화든)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공적 영역에서 문제와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정치와 정당의 소명이라면 더욱 그렇다.

 

자 이제 본론을 말할 차례다. 그 본론의 결론부터 앞세우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신당’은 종국에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밝히라.

공동체가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고 지지를 구해야 마땅하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 두자. 유독 신당만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당만 그런 것도 아니니, 다른 정당보다 못하단 뜻도 아니다. 그러나 새로움을 지향한다고 했으니, 비판은 신당이 당연히 져야 할 짐이다. 다시 묻는다. 도대체 무엇을 새롭다고 할 것인가.

 

대부분 사람이 가진 아주 소박한 상식으론 정당은 기본적으로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조직이다. 이 때 집권은, 바람직하게는, 단순히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 정치공동체의 비전을 실현하려는 집단적 의지를 실현하는 실천 행위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은 어떤 사회, 어떤 공동체를 지향하는지 그 비전을 명확히 밝히는 일이다. 이른바 ‘가치’ 중심의 정당. 그래야 사람이 모이고 정치적 지지를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적어도 아직까지는) 신당의 비전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다. 발화 지점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모호한 말들이 들끓는다. 합리적 개혁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등등. 그러나 잘 모르겠다.

 

몇몇 사람과 집단이 정치세력화를 논의하는 모색의 시기에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지금은 발기인이 발표되었고 지방선거의 후보가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때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이들이 이렇게 모인 공통의 가치와 지향은 무엇인가. 어떤 약속과 비전을 공유하는가.

강령과 정강, 정책은 이제부터 만든다고 하지만, 이 역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것은 순서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정강, 정책에 준하는 지향성은 진작부터 있어야 하나의 정치 ‘세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당사자들은 억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의심의 근거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벌써부터 신당을 구성하는 사람을 두고 얼마나 말이 많은가.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색이 다른 여러 정치세력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태반이란 것이다.

핵심 추진 세력이라 거론되는 사람들조차 매한가지다. 따로 무슨 어떤 ‘가치’나 지향성을 가졌는지 알기 어렵다. 실무니 참모니, 때로는 실용이니 하면서 정치공학 아니면 이합집산의 분위기가 짙다.

물론, 한국 정당의 ‘비정치성’은 새삼스럽지 않다. 정당의 비정치성! 혹 형용 모순일지도 모르나, 여기서 비정치성은 딴 게 아니다. 정당이 서로 다른 세력과 계층, 계급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이에 기초해 서로 경쟁하지 못하는 것. 정치는 없고 정략만 남은 한국 정당의 민낯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적어도 ‘새정치’를 금과옥조로 내세운다면 순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어떤 지향과 목표를 가지고 정치적 지지를 구하는가. 조금 더디어도, 정치적 성과는 조금 더 늦어도, 이것이 정치는 물론 사회에 보탬이 될 것으로 믿는다.

어디 건강 이슈에만 그럴까. 그러나 다른 여유는 없으니 건강 문제에, 그것도 몇 가지에만 한정하자. 대표적인 질문 몇 가지에 어떤 비전과 지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답해 주기 바란다.

 

첫째, 건강과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과 보건의료의 정치적 성격에 관한 한, 가장 날카로운 구분선은 공공과 시장의 역할 문제라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조화니 보완이니 하는 추상적 개념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공과 시장의 혼합 그 자체는 모든 정치, 경제 공동체의 디폴트다. 무엇이 핵심이고 뼈대이며 어느 쪽이 지배하고 통제하는가가 중요하다.

모든 이에게 익숙한 문제는 공적 사회보장과 민간보험의 역할 분담이리라. 민간보험의 역할과 기능,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개인과 가계는 얼마나 큰 책임을 져야 하는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얼마나 더 높일 것이며, 그 재원은 무엇으로 어떻게 할 요량인가.

건강보장 말고도 또 있다. 서비스 공급의 주체와 방식도 지향이 나뉘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 공적 주체(예를 들어 공공병원)가 공급하는 서비스를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 또, 보건소나 지방의료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둘째, 뜨거운 현안이기도 한 보건의료 영리화, 산업화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 이유와 경과가 무엇이든, 보건의료는 이제 경제정책의 하나가 되었다.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처방전처럼 쓰이는 것을 알 것이다.

지금 논쟁 중인 의료법인의 자법인은 도도한 흐름 속에 있는 한 가지 정책에 지나지 않는다. 보건의료의 영리화, 산업화는 정치경제적 ‘노선’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러니 밝혀야 한다. 신당은 어떤 노선을 가질 것인가. 상품과 산업, 영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가, 아니면 기본권이자 삶의 질, 또는 복리인가.

 

셋째, 불평등에 대한 생각을 밝혀주기 바란다. 왜 이렇게 묻는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믿는다. 다른 배분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건강의 분포도 정의의 핵심 질문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말해야겠다. 몇 가지 질문은 신당을 핑계로 삼았지만, 실은 모든 정당에게 같이 해당한다. 한국의 모든 정당은 이런 문제(또한 비전이기도 하다)에 명확하게 답하고 지지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굳이 유리한 점이라면, 신당이 새로움을 구할 수 있는 이점을 활용해 이 일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극이자 촉매, 페이스메이커 노릇을 할 수 있다.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이렇게 하기 바란다. 그렇지 못하면 단언컨대 ‘새정치’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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