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총리 후보에게 복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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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공동체, 밑천이 모두 드러난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총리를 바꾸고 내각을 새롭게 하자는 출발이었다. 그러나 다시 진창에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근본적인 사고 원인을 찾고 시스템을 혁신하는 것. 어느새 유족을 비롯한 힘없는 보통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오죽하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안전한 나라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천만인 서명 운동까지 해야 할까.

힘 있는 국가 권력은 무엇 때문인지 일부러 ‘봉창’을 두드리는 것만 같다. 대통령이 거듭 유 아무개의 체포를 지시하고 군대와 반상회까지 동원되었다. 시스템과 정책은 어디로 가고, 마치 게임 하듯 핵심을 빗나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새 국무총리 후보가 보기 드문 말썽의 당사자가 되었다. 아니면 역시 이번에도 예상했다고 해야 옳을까. 일부러 나서도 이렇게 하기는 어렵겠다. 항간에는 대통령의 수첩이 ‘데스 노트’라는 웃지 못 할 소문이 떠돌 정도다.

그 이의 비틀어진 역사관과 이념적 편향을 분석하는 일은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말을 보태지 않는다. 애국과 애족, 국가 발전을 앞세우는 이른바 ‘주류’ 사람들의 정체를 학습하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 만족하자.

그러나 한 가지, 그가 생각하는 복지가 무엇인지는 좀 알아봐야 하겠다. 청문회를 거쳐 총리가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 생각과 시각은 어차피 두고두고 되씹을 거리다.

 

복지 문제를 다룬 글 하나는 몇일 사이 꽤 알려졌다. 2010년 3월 30일에 중앙일보에 실린 ‘공짜 점심은 싫다’라는 칼럼이다 (바로 가기). 이 글이 가진 문제점, 또한 그에 비추어 본 생각의 퇴영은 여러 군데서 지적되었으니 생략한다.

다만 한 가지, 모든 생각과 판단이 이미 폐기된 매카시즘 수준의 냉전 의식에 붙들려 있다는 것은 지적해야 하겠다. 스스로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썼다.

겉으로 개인의 책임, 가정의 역할, 효율성, 선택 같은 가치를 말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겉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전체주의,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구실로 바뀌는 것이다. 그의 복지 이해는 그 정도에서 머물러 있다.

편향이고 시대착오적이기도 하지만 논리도 허술하다. 그 신문사의 직원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보수 신문이라 해도 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 시 교육청이 직무연수 교재에서 그가 쓴 칼럼 하나를 나쁜 글쓰기 사례로 꼽았다더니, 역시 이유가 없지 않다 싶다.

 

내친 김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다른 글도 살펴보자. 그래도 일관성은 있다고 좋게 봐줘야 할까. 미루어 짐작하는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여러 ‘보수적’ 복지국가는 물론 새누리당의 복지 정책도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극우에 시장 만능주의의 전형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치 그 자체보다는 냉전과 북한, 반공에 기초한 재구성된 매커시즘의 혐의가 짙다.

 

우선 그는 복지를 극단적으로 개인 문제로 돌린다. 가난이 왜 생기는가, 왜 누구는 가난하고 누구는 부유한가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글은 찾기 어렵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일부러 이 문제는 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 일간 신문에 쓴 글에서는 최저선의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받았을 것이다 (교회나 강연에서는 더 솔직하지 않았을까). 그 대신, 그는 자주 복지병과 공짜 의식과 게으름을 말한다. 혹 다르게는 ‘신의 뜻’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설사 그렇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표현만 다를 뿐 드러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복지가 문제인 것은 다들 공짜만 바라고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다. 아주 가끔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건 방어를 위한 장식 노릇에 그친다.

 

독립심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탁하는 병든 인간을 만들기 바쁘다. 내 책임보다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이런 병든 문화는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중앙일보 2006년 9월 5일. “병든 문화, 시드는 나라”, 바로가기)

그것은 부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바로 ‘공짜 병’이다. 사회복지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사람들은 노력한 것보다 더 큰 대가를 바라고, 심해지면 일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모든 걸 국가가 대신해 주겠다는데 누가 일하려 하겠는가. 기생(寄生)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중앙일보 2011년 6월 28일. “부패보다 무서운 병”, 바로가기)

 

그에게 가난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시기나 질투쯤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마음을 고쳐먹으면 해결될 번뇌와 고민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적 빈곤감은 정부가 나서서 분배에 앞장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문제다. 세상은 돈 이외에도 값진 가치들이 넘친다는 것을 알면 돈이 적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안 된다. 각자가 좋아하는 길, 잘하는 길로 가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2006년 2월 21일. “가난에 대하여”, 바로 가기)

 

또 하나, 그는 복지를 뺏고 뺏기는 것으로 본다. 어떤 시각이나 이론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핵심은 부자가 가진 것을 자격도 없는 자들이 염치없이 뺏는다는 것이다.

이런 복지에 대해 부자들이 분노해야 (아니면 떨쳐 일어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선동한다. 좀 길지만 적의가 가득한(어떤 편의 것인지는 저절로 드러난다) 글을 그대로 인용하는 편이 좋겠다.

 

지금 분위기는 부자들은 당연히 더 내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받을 권리가 있다고 부채질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한쪽에게는 자기의 정당한 몫을 빼앗긴다는 박탈감만 주고, 다른 쪽에게는 타인의 노력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뻔뻔함만을 키워 준다. 도와줌으로써 기쁘고, 도움을 받음으로써 감사하다는 마음 대신에 빼앗기고 빼앗는 살벌한 마음만 키워 준다. 이런 사회라면 누가 열심히 일하고 싶겠는가? 버는 사람은 없고 쓰는 사람만 많아지면 결국 어떻게 되겠는가?” (중앙일보 2011년 1월 25일. “그들 손에 맡기지 말라”, 바로가기)

 

이런 인식 때문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의 고통과 필요에는 참으로 무감각하다. 어쩌다 표현한다 하더라도 공허하거나 형식적이다. 말만 언론인이지 같은 시간과 공간을 힘겹게 살아내는 사람들의 삶들을 이해하는지 실로 의심스럽다.

그러니 대안도 빈약하다. 복지는 한사코 비난하지만 대안은 말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선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진짜 그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짐작으로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것, 또는 시장 원리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상대적 빈곤감은 말 그대로 상대적이기 때문에 가진 자들이 겸손하면 해결할 수 있다. 부를 과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담으로 생각하고 조심한다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소박한 진리처럼 부를 스스로 나눌 수 있을 때 가난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앞의 글. “가난에 대하여”)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사회적 안전망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가난의 문제는 국가가 알아서 다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중략)…우리는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한다. 이런 기막힌 참상이 더 이상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이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웃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외면하고 국가에 미룰수록 그 만큼 국가의, 정부의 권력은 강해진다. 이는 곧 우리의 자유가 줄어들며 권력의 속박을 자초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2003년 7월 29일. “불쌍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바로가기)

 

아무리 총리가 하는 일이 없다지만, 과연 이런 인물 밖에 없을까. 그는 현 정부의 부실한 복지 기조조차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그간의 삶으로 보면 이제 입 밖에 내진 않겠지만.

온 사회와 국가는 언감생심 걱정할 형편도 아니다. 그래도 남은 기간이 꽤 있는데, 앞으로 최소한의 복지 공약과 정책은 어떻게 하려고. 게다가 그는 한국적 복지국가의 경로(확대와 축소의 지향에 관계없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흔들고 깰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이 정부를 위해서도 진심으로 권고한다. 이쯤에서 멈추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그가 스스로 그럴 능력은 없을 테니, 누구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이제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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