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또 하나의 선택 기준, 재벌과 의료 영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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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재벌 3세가 ‘갑질’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운전기사를 괴롭혔다는 것이 최신 사례다. 솔직히 말해,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 상상의 범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스터 피자, 대림산업, 몽고간장, 대한항공의 소유주나 경영자가 일으킨 사건도 비슷하다.

빙산의 물 아래 6/7은 더 심할지도 모른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계속되리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그러니 더 심한 일, 더 모욕적인 사건이 생겨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어떤 한 사람의 인성이 비뚤어지거나 취향이 괴팍한 탓이 아니지 않은가. 그중에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여럿이다. 모든 것을 ‘구조’ 탓으로 돌릴 수는 없으나, 그 구조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베스킨라빈스는 어떤가. ‘특수관계점’을 두고 88곳의 운영권을 전·현직 임직원과 ‘사회 유력인사’의 친인척에게 나눠줬단다 (기사 바로가기). ‘국민기업’이라 자처하는 포스코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부실기업을 인수했다 날렸다고 재판을 받고 있다. 여기에 검사가 빠질 리 없다. 한 검사는 무슨 신묘한 재주인지, 비상장 게임사의 주식을 사서 120억 원 안팎의 시세차익을 남겼다고 한다.

 

이런 일도 계속 벌어질 것이 뻔하다. 더 희한한 내부거래가 밝혀지더라도 놀라지 말아야 한다. 어떤 한 회사만 이런 방식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관, 아파트, 택배, 광고, 4대강, 아무 데나 뒤지면 나오는 관행이요 전통이다. 재벌 독식 체제가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으나, 곳곳에 드리운 그늘은 넓고도 어둡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대기업의 탐욕도 놀랍다. 밝혀진 것만 해도 두 손으로 다 꼽을 수 없다. 돈이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삼성은 바이오시밀러와 의료기기에 진출해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은 실적이 신통치 않다고 하니,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이제 재벌이 된 카카오가 갈 길도 뻔하다. 겉으로 꾸미는 말은 이 모든 것이 ‘신수종사업’이며 새로운 먹거리, 부가가치다.

물론 전통도 지킨다. 재벌이 구멍가게, 떡볶이집, 세탁소까지 욕심을 낸다는 것은 하루 이틀 된 소리가 아니다. 벌써 기억이 희미하지만, 동네 빵집과 기업형 수퍼마켓(SSM)은 현재진행형이다. 곳곳에서 갈등과 투쟁이 벌어지지만, 승부는 진작 끝났다. 재벌과 대기업의 완승.

재벌 원죄론, 재벌해체 만능, 단순한 환원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둘 재벌에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 재벌을 정점으로 한 한국 경제의 ‘봉건적’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고 판단한다.

 

경제 내부의 일이라 할 수 있는 시장과 경쟁은 왜곡된 지 오래고, 거기서 연유한 법과 행정은 파탄했으며, 급기야 재벌은 문화와 개인의 가치로 깊이 침투했다. 재벌과 대기업은 얼마나 가깝고 내면적인가. 물론, 최종적으로는 그런 가치를 ‘내면화’하는 단계가 뒤따른다. 우리 자신을 맞추어 빚어내는 힘. 취업에도 결혼에도, 삶의 목표와 보람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벌공화국’은 정확한 개념이다.

한국 사회는 장악당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오늘 한국 대기업의 가감 없는 모습이다. 시장을 악용하는 것을 넘어 실정법을 어기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배임, 탈세나 SK 최태원 회장의 횡령은 이제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과거를 묻고, 언제 그랬느냐면서 한국 경제 ‘부활’의 주역임을 자처하는 형편이다.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할 이유가 없다. 갑질을 해도 부정을 저질러도, 다 이유가 있는 법. 재수가 없었거나 오해일 뿐이다. 부에 대한 시샘이나 근거 없는 평등의식의 발로로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에게는 한국의 ‘시장’이 성숙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운전기사에게 무슨 일을 시키든, 프랜차이즈 점포를 어떻게 하든, 시장과 거래, 계약의 룰을 따를 뿐이라고 믿을 것이다. 중소기업을 무너뜨리고 특허를 가로채도 그건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행동과 생각, 가치가 통일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최종 산물이다.

 

좋든 싫든, 그 모든 폭력과 봉건의 부작용에도, 한국 경제는 계속 대기업과 재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런 주장은 금방 없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길게 연명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새삼 그 노선의 ‘파탄’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 한국 경제의 현실을 놓고 무슨 근거가 또 필요할까 싶어서다.

새삼스럽게 재벌과 대기업을 말하는 이유는 딱 이틀 남은 총선 때문이다. 물론, 총선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이고, 국가 정책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의미 있는 공약은 대부분 지역을 노린 것이니, 국가 경제정책은 순서가 한참 처진다. 대기업과 재벌로 ‘완성된’ 경제, 사회체제를 하루아침에 혁파할 뾰족한 방법도 마땅치 않다. 다른 무엇보다, 공약을 진정한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 모든 무력감에도, 재벌과 대기업 정책은 한 정당이 우리나라 경제와 국민의 살림살이를 어떻게 보는가를 드러내는 ‘시금석’이다. 이것만 봐도 전체를 미루어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이 즉각 영향을 받고, 소상공인과 구멍가게, 자영자의 앞날이 달렸다.

직접 말하는 정책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노동정책, 농촌공약, 일자리 약속이라고 내놓는 것을 믿느니 차라리 재벌 정책을 보는 것이 낫다. 노동자와 농민의 살림살이, 그리고 일자리는 대기업 정책과 재벌 개혁에 직결된다.

 

대기업과 재벌에 관련된 공약을 아는 것이 어렵고 번거로우면 좋은 방법이 있다. 보기에 편한 보건의료 공약을 대신 참고하시라. 마침 ‘보건의료단체연합’이 각 정당의 공약을 요약, 정리해 놓았으니 한눈에 판단할 수 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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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재벌 정책이 보건의료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두 가지 점에서 밀접하다. 우선, 보건의료의 민영화, 영리화는 경제 정책의 기조와 상관관계가 아주 높다. 재벌 위주, 시장 친화로 갈수록 의료는 권리가 아니라 영리다. 건강과 삶의 질이 아니라 상품이며 화폐다. 누가 건강을 영리와 상품으로 보는지는 삼척동자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 앞서 말한 상관관계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건강과 의료분야는 이제 몇 남지 않은 ‘가치’의 원천이 되었다(물론 돈의 가치 또는 잉여가치!). 약품(바이오시밀러 포함)과 장비(예를 들어 초음파)도 그 자체로 돈벌이가 되겠지만. 이는 더 큰 영리로 가는 징검다리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 서비스와 병원이 붙고 보험이 결합할 것이다. 파생된 서비스는 얼마나 또 많은가.

원격의료도 그 중 하나다. 이는 한쪽으로는 농촌과 독거노인의 복지지만, 다른 쪽으로는 그 많은 기계와 장비,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자본의 각축장이다. 사정이 이런데, 대기업과 재벌, 경제정책이 어찌 보건의료와 무관하겠는가. 어떤 경제정책, 어느 대기업정책도 이제 건강과 보건의료를 의식해야 한다.

 

공약 비교를 끝내셨는지?

 

투표의 효능(감)은 새삼스럽지 않다. 당선이나 낙선에 미치지 못해도, 표의 수와 지지율은 개인과 정당을 끝까지 따라다니고 압박한다. 당선된 날부터 다음 선거 준비를 한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무엇 때문에 반대하고 무엇 때문에 찬성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그러면, 꼭 한 표, 두 표로 당락이 결정되지 않아도 표는 충분히 제값을 한다.

모든 표는 효능이 있다! 발언하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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