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미세먼지의 의료화, 개인화, 그리고 기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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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나빠지고 병이 생긴다고 해야 비로소 ‘환경’을 알아차리는, 말하자면 환경의 ‘의료화’ 현상은 낯설지 않다. 4대강 사업으로 물이 나빠져도, 고압선이 지나가도, 핵발전소가 도시 한복판에 들어서도, 암이 생기고 기형 물고기가 나와야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 삶의 초라한 한계다.

 

미세먼지라고 어찌 다를까. ‘삼천리 금수강산’이나 ‘천고마비’는 잊힌 지 오래 뿌연 하늘이 일상이지만, 이리 건강에 나쁘고 이런 큰 병이 난다고 해야 비로소 관심을 끈다. 실체가 없던 미세먼지가 ‘각인’과 ‘체화’를 거쳐 내 삶으로 들어와야 깨달을 수 있다.

 

환경의 의료화는 또 다른 의료화, 대책의 의료화로 이어진다. 한국에너지공단이 “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내놓은 것은 한 마디로 건강 대책, 더 좁게는 의료 대책이다(바로가기). 무슨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지만, 마스크, 렌즈 대신 안경, 물 많이 마시기, 샤워로 건강을 지키라고 되어 있다.

한국인에게 음식이 빠질 리 없다. 미나리, 마늘, 귤, 브로콜리, 배 같은 것이 미세먼지에 좋은(!) 음식이라고 한다. ‘알리신’ ‘비타민 B1’ ‘설포 라판’ ‘루테올린’ 등의 과학을 동원해 (비록 근거는 불확실하나) 설득력에다 매력까지 갖추었다.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지목했다가 몰매를 맞은 고등어도 좋은 음식이라니, 굽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먹으라는 뜻인가.

 

의료화란 본래 개인을 목표로 삼지만, 미세먼지에 관한 한 다른 ‘개인화’와도 밀접하다. 미세먼지에서는 원인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져, 예를 들어 고등어와 삼겹살을 굽는 것이 주범으로 등장한다. 경유를 쓰는 차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원인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구조 요인은 피하는 것이다.

원인을 개인으로 돌리면, 해결 방법도 (건강과 의료를 포함해)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고등어와 삼겹살을 취급하는 직화구이 식당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그냥 우스개가 아니다. 개인화된 대책이 가장 효율적이고 쉬우니, 정책으로도 가장 자연스럽다. 각자 좋은 마스크를 쓰라는 것, 또는 차를 잘 만드는 것이나 연료를 바꾸는 대책과 차원이 다르지 않다.

 

우연인지는 모르나, 이제라도 좀 더 근본적인 원인에 이르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툭하면 핑계로 삼던 중국이 아니라 국내로 관심을 돌린 것만 해도 조금은 나아갔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유 차량과 석탄 발전소를 원인으로 지목한 덕분에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원인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고 치고, 대책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의료화, 개인화된 대책이 발붙일 수 없었던 것은 대통령이 크게 기여한 것이다. 자칫, 식당을 규제하고 경유에 더 많은 세금을 붙이는 것, 환경보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 될 뻔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문한 그 이상의 특단 대책은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석탄 화력발전소 10기의 가동을 중단하고, 경유차의 조기폐차 정책을 확대하는 것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띈다. 나머지는 ‘제2차 수도권 대기개선대책(2015~2024)’ 등에 나왔던 기존 정책을 재탕, 삼탕한 것이라는 비판이 드세다.

이런 비판은 당연하다. 특단은커녕 단순 대책으로도 수준 미달이니 말이다. 우선, 자세한 현황도 모른 채 무슨 대책이냐는 비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실, 이 비판은 대책이 모자란다는 것보다 더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 10년 이상, 4조원 이상의 돈을 쓰고도 정확한 현황을 모른다니 정부의 기본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장기계획(구상)이 없다는 일부 비판에도 동의한다. 여러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경제와 산업이 같이 가야 하니, 종합적이고 멀리 보는 대책과 목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종합계획을 만들고 사회구성원의 숙의와 동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이 정부가 하는 일로 보면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비판도 맞다. 특히 화력발전소가 원인이라고 하면서도 그런 발전소를 증설한다는 계획을 바꾸지 않으니 대책의 진실성과 실효성이 더 의심스럽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확한 진단과 종합, 장기 구상이 필요한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다. 화력발전소와 경유차에 대한 적극적 대책도 필요하다. 하지만 일부에서(특히 언론) 주장하는 단편적인 (특히 개인화된) 대안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 “2008년부터 경유차 도심 통행을 제한한 영국 런던”(기사 바로가기)을 따르는 것이 무슨 특단이 될 수 있을까.

개인의 행동과 대책에 기울어져 있다는 것도 문제지만, 기술에 지나친 기대를 건다는 것도 특단 대책이 갖는 또 다른 한계다. 청정에너지, 배기가스 저감장치, 친환경기술 같은 기술이 문제를 줄일 것이라는 불가능한 희망. 정부 대책에 “미세먼지를 줄일 기술개발 투자에 대한 의지”가 빠져 있다는 비판은 이런 희망의 간절함을 드러낸다(기사 바로가기).

 

이 모든 것을 결합한 한 가지 대안에 유의한다. 한 유력 신문이 앞장선 데서도 알 수 있듯이(기사 바로가기), 미세먼지의 ‘정치화’는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원자력발전”이 목소리를 높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피할 수 없다는 이유로, 또는 차선, 필요악, 기술의 이름으로 핵발전에 대한 희망이 부활할 가능성이 크다.

 

논란과 대안의 막다른 선택지가 때가 급박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상황에 관한 한, 직관과 직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건강과 의료 문제가 되기 훨씬 전부터 환경이 삶을 위협하고 행복을 줄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껏해야 개인 대책과 기술 개발이 특별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안다.

그런데도 변죽을 울릴 뿐 망설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배기가스를 줄이는 장치라고 하지만, 더 많은 자동차와 연료 소비로 어디까지 이룰 수 있을까.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화력발전 대신 핵발전소를 지어야 한다면, 그것의 위협은 또 어떻게 하란 뜻인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또는 그나마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답이 될 수 있는가?

 

좀 더 근본적인, 그러나 이미 논의하고 있는 대안으로 성큼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 점점 더 외형 성장과 소비에 의존하는 삶과 사회에 제동을 걸지 않고는 그 어떤 대안도 아주 약간 속도를 늦출 뿐이다. 사태는 훨씬 더 근본적이다.

근본 대안이라고 해 봐야 아주 멀고 허황한 것만도 아니다. 전기가 남아도 발전소를 더 짓고, 자동차 산업을 어쩌지 못해 경유차를 더 많이 타라고 하는 정책부터 바꾸어야 한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은 처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지지부진이다.

좀 더 바꾸어야 하는 것처럼 들리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 여러 ‘선진’ 국가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른바 친환경 모델. 교통과 에너지만 하더라도, 자동차 교통량을 줄이고 전기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세계의 새로운 규범이 아닌가. 얼른 그만큼이라도 가야 한다.

지속 가능성까지 가면 꽤 많이 나간 것이지만, 이미 확립된 국제 규범이긴 마찬가지다. 삶의 양식과 사회의 조직 원리를 재구성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변화의 폭과 깊이, 그리고 변화의 방법은 논쟁해야 하겠지만, 미세먼지 논란은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미세먼지의 위험은 이미 몸으로 증언할 정도다. 미세먼지가 뇌졸중의 원인이 된다는 최근의 국제 연구 결과도 많은 국내외 연구(그리고 증언)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자료 논문). 병으로 증언할 정도면, 기분, 쾌적함, 냄새, 숨쉬기와 같은 수준을 지났다는 뜻이다. 그것도 일시적이고 약한 위협이 아니라, 몸에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하다는 것. 그냥 ‘위험신호’를 넘어 ‘응급신호’라 해야 한다.

게다가 몇 년 만에 다시 불거진 미세먼지 사건은 마침 드러난 한 가지 위험신호에 지나지 않는다. 위험이라면 어디 미세먼지뿐일까. 물과 공기, 먹는 것을 따로 가릴 수 없으니, 미세먼지로부터 다른 모든 것을 해석해야 할 형편이다.

 

정말 응급이라면 빨리 바꾸고 또 바뀌어야 한다. 근본 원인을 생각하면, 그리고 미세먼지를 넘어 위험의 범위를 생각하면, 뗄 수 없을 정도로 이 시대 삶의 양식과 철저하게 결합해 있다. 그러므로 변화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쉽지 않으니 더욱 근본을! 더 많이 성장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또는 그렇게 만드는 시대적 구조와 힘든 결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성장 없는 번영”(팀 잭슨의 책 제목에서 빌려왔다)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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