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프레시안 기사 바로가기)
‘순환기계 질환’을 2위로 따돌린 2001년 이래, ‘암’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언론은 발암 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하거나,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생활방식을 우려하는 보도들로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관련 기사 : “한국인 햄·소시지 섭취량…충분히 암 발생률 높여”) 전 세계적으로 암의 발생 원인과 치료법에 관해 무수히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암 발생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무엇이 암을 유발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지만, 주류 의학계와 언론은 암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여러 원인들을 개인이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생활 습관(lifestyle)의 관리가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믿음은 과학의 이름으로 뒷받침되어 왔다. 물론, 건강한 생활습관은 암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질병들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 볼 점은, 때로는 자기 관리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개인이 암에 걸린 것은 오로지 개인이 ‘잘못 살았기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또 아직 암 발생의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습관의 중요성이 “과학적(이라고 여겨지는)” 근거를 기반으로 마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인류학자 커스틴 벨(Kirsten Bell)은 바로 이 지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암 치료에 있어서 생활습관의 변화를 강조하는 믿음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현장 연구(fieldwork)를 통해 보여준다. 2015년 논문에서는 미국 암 연구 학회(American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 AICR)와 암 생존 연구 학회(the biennial Cancer Survivorship Research: Recovery and Beyond, CSR)의 2010년 학술 대회를 각각 참여 관찰한 결과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학계에서조차, “생활습관의 변화를 통해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주관적 믿음이, ‘취사선택’된 근거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것처럼’ 통용되는 경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관련 자료 : Communicating “Evidence” : Lifestyle, Cancer, and the Promise of a Disease-free Future)
저자들은 암 관련 두 학회 모두, 생활습관과 암 관리 간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성을 보였다고 말한다. 이 경향성은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다.
첫째, 한 발표자가 “여기서 암과 비만의 상관관계에 관해 따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일 테니까요.”라고 말한 것처럼, 학술 대회 발표자뿐 아니라 청중도 대부분 생활습관과 암 간의 상관성을 ‘객관적’ 사실로 전제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이들이 상관관계의 여부 자체에 주목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개인들이 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건강에 책임을 지게 만들 것인가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한다. AICR의 학술 대회에서 대부분의 발표가 상관관계를 전제한 반면, CSR의 학술대회에서는 “근거 기반(evidence base)”을 강조하는 차이가 있었지만, 여기서 ‘근거’에 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았다.
발표자들이 제시한 ‘근거들’은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여주지 않았으며, “그럴듯하다(suggestive),” “가능성이 있다(biologically plausible)”와 같은 추측성 표현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오히려 ‘근거들’은 그 자체로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불확실성을 인정하여 비난을 받을 여지를 차단하는 기제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불확실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습관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청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저자들은 인류학자 사이다 호지(Saida Hodžič)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이들 학회가 “객관성의 퍼포먼스(performance of objectivity)”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발표자들이 불확실성을 전제하는, 따라서 문자 그대로 ‘객관적’일 수 없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포장함으로써, 해당 지식과 정보에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통계 수치는 강력한 설득의 논거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1) “35%의 식도암이 과체중/비만 관리를 통해서 예방할 수 있다.”
(2) “이 수치들이 여러분들이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치들을 봐라! 과체중/비만이 특정한 암을 유발할 수 있고, 우리는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고 주장하는 한 발표자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질병 발생의 ‘가능성’이→’수치’로 정당화되고→’근거’가 되는 메커니즘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암이 마치 개인적 선택인 것처럼 여겨졌다는 점이다.
신체적 비(非)활동성, 체중 조절과 식이 조절에 대해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암을 예방할 수 있는 것처럼 논의가 이루어졌다. 많은 발표자들이, 항암 치료를 받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암 환자들의 지속적 자기 관리와 올바른 생활 습관 유지를 강조했다. 암 예방을 위해서라면 “운동을 시작하기에 늦은 시기는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 관리는 일종의 도덕적 의무로서 간주되었다. 하지만 암 환자들은 항암 치료의 부작용으로 신체 활동 능력이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발표자들은 이를 간과한 채, 규칙적 운동과 체중 조절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셋째, 모두가 잠재적 암 환자인 것처럼 묘사되었다는 점이다.
암 발생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모두가 잠재적으로 암에 걸릴 위험이 있고, 따라서 평소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지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용되었다. 이는 비단 암 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발표자와 청중 모두를 겨냥한 이야기로, 이러한 논리를 통해 전문가, 잠재적 환자, 환자들 간 경계는 무너지게 된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CSR 학술 대회의 발표에서는 자극적 이미지를 통해 청중들을 긴장하도록 만드는 전략이 흔히 사용되고 있었다. AICR의 학술대회에서는 참석자들에게 스트레칭 밴드(운동 보조 기구 중 하나)를 제공하였는데, 학회장은 개회사 도중 이 기구로 학술 대회 기간 운동할 것을 추천하기도 했다.
저자들은 학술 대회 참석자의 대부분이 의사임을 강조한다. 모두가 잠재적 암 환자일 수 있다는 논리는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 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이러한 지식을 전달하고 “널리 퍼트려야 한다”는 의무를 갖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들은 학술 대회에서 “세상에 (자기 관리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야 한다(spread the world)”는 대화가 오고가는 장면을 묘사하며, 이와 같은 관점이 학술 대회를 통해 (재)생산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내가 어떻게 (암을) 갖게 되었느냐고요? 나도 모르겠어요. 난 꽤 활동적으로 살아왔고 나름대로 (건강한 생활습관에) 맞게 살아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건강하게 먹는 것? 잘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평균이었을 수 있고, 더 잘 먹어야 했을지도 모르죠, 물론. (…)”
암을 유발하는 여러 요인들 중 특히 생활습관의 변화를 강조하는 의학계의 경향 속에서, 암 환자들은 생활습관이 암 재발 방지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커스틴 벨의 2010년 논문에서 자세하게 설명된다. 저자는 8개월간의 현장 연구를 통해, 캐나다의 한 암 환자 단체(cancer support group)에 소속된 환자들이 자기 관리를 강조하는 암 치료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내재화’ 또는 ‘저항’으로 개념화하여 보여준다. (☞관련 자료 : Cancer survivorship, Mor(t)ality and lifestyle discourses on cancer prevention)
저자는 암 환자들에게 “왜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지”를 질문했을 때, 대부분의 환자들이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답하면서도 “아마 내가 뚱뚱하기 때문” 또는 “아마 내가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일 것 이라고 ‘추측’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의사가 원인을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환자들은 (그 원인을) 자신도 모르지만 “의사가 생활습관을 바꾸라고 하니” 아마 내 과거의 생활습관이 무엇인가 문제가 있었지 않았을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암 환자들이 자기 관리를 무엇으로 생각하든지간에, 또 자신이 걸린 암의 종류나 발병 시기에 관계없이, ‘건강하지 않게’ 살아 온 자신을 자책한다고 말한다. 결국, 환자들은 암이라는 질병을 마치 “선택 가능한 결과”인 것처럼 여기고, 이를 선택한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게 된다.
몇몇 환자들은 이러한 죄책감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로 암의 원인을 유전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저항하는 환자들조차도 생활습관의 관리가 암 재발 방지에 중요하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며, 이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으면서도 특정한 생활방식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식이 조절처럼 생활을 특정한 방향으로 조절하는 보완 대체 의학(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al therapies, CAM)으로 암을 극복한 몇몇 신화적인 사례들을 주변에서 보고 들으면, 환자들은 생활습관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의사들이 생산한’ 생활습관에 대한 강조는 환자 공동체 내의 정보 공유를 통해서 ‘재생산’된다.
이들 연구는 객관적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의학 지식이 주관적 선택이 가미되어 (재)생산 될 수 있으며, 나아가 개인들에게 질병의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 암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학 지식은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가진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도록 만든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건강한’ 생활습관은 분명 ‘의학적으로’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건강한’ 생활습관인지, 그리고 생활습관이 질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지 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질병이 오로지 개인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논리의 과학 지식은 질병의 사회적 결정 요인을 무시하고, 질병을 오로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박여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우
- 참고자료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보고서, 2012, 『한국 국가 암 예방 및 관리 정책의 근본적 전환』 (http://health.re.kr/?p=359)
서리풀논평 2014.02.10. 암의 위협, 더 생각할 것들 (http://health.re.kr/?p=1294)
서리풀논평 2015.11.02. 삼겹살과 스팸을 어떻게 할 것인가 (http://health.re.kr/?p=2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