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암의 위협, 더 생각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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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난 화요일, 2월 4일은 세계 암의 날이었다. 세계보건기구가 주도해서 매년 기념도 하고 각오도 되새기는 날이다. 한국은 몇몇 언론이 스치듯이 다룬 것을 빼면 조용히 지나갔다.

그래도 언론이 이 정도라도 취급한 것은 오랜 만이다. 다른 해에는 그나마 그냥 지나친 때가 많았다. 마침 세계보건기구의 산하 기구인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2014년 판 <세계 암 보고서>를 펴냈기 때문이다. 아직 원문은 못 봤으니, 센터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참조한다 (바로가기).

 

우선 눈에 들어오는 대목은 암 환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내용. 2012년 암 발병 건수는 약 1천 4백만 건인데, 20년 이내에 연간 2천 2백만 건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예측이 맞는다면 암 발생이 57퍼센트나 늘어나는 셈이다.

암이 늘어난다는 경고, 그 자체가 관심사이긴 하다. 국내 언론의 보도 내용도 ‘겁주기-안심-건강행동’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암에 걸려도 이제는 생존율이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예방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검진을 열심히 받으라는 것이 핵심이다. 담배나 술 같은 해로운 습관을 줄이라는 권고까지 보태면 그나마 좀 나은 편이다.

 

그러나 국제암연구센터가 내놓은 보고서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몇 가지 메시지를 더 담고 있다. 첫째는 불평등의 문제. 보고서에서는 주로 국가간 불평등을 지적했다. 이제 개발도상국에서도 암이 큰 문제고 (에이즈와 말라리아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비중으로 보더라도 여기에서 암 발생과 사망이 더 많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다루기는 어려웠겠지만, ‘국내’ 불평등도 심각하다. 암의 발생과 사망은 말할 것도 없고, 예방과 치료도 모두 불평등에서 자유롭지 않다. 모든 나라가 그렇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2012년 연세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서는 위암, 폐암, 간암, 대장암, 자궁경부암 등 대부분 암이 빈곤층에서 더 많이 생긴다 (바로가기). 흡연이나 검진과 같이 예방과 관계된 것들도 빈곤층에게 훨씬 더 불리하다. 치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 대부분 사람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또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제암연구센터는 지금까지의 지식을 잘 실천하기만 해도 절반 이상의 암을 피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개인 차원에서는 금연, 절주,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적절한 체중유지 등이 잘 알려져 있는 예방 방법이다. 하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위안을 찾자면 한국만 이런 것은 아니라는 것.

여기다 한 가지 더, 사실 한국에서는 이것이 더 중요하다. 예방이라고 하면서 건강검진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아예 ‘면죄부’라는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비싸고 항목이 많을수록 믿을 만하다는 태도도 익숙하다. 국가와 국가 제도, 그리고 의료체계가 이런 경향에 힘을 보탠다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예방은 더할 나위 없이 ‘의료화’, ‘기술화’ 되었다.

물론 어떤 암에서는 조기 발견도 중요하다. 대장암이나 유방암, 위암 같은 것들이 그런 암에 속한다. 그러나 모든 암이 그렇지 않고, 비싸다고 만능이 아니며, 자주 한다고 해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지나친 검사로 오히려 암 발생을 걱정해야 하는 역설이 한국적 현실이다.

 

세 번째 문제는 앞의 것과 연관되어 있다. 국제암연구센터의 보고서도 지적했지만, 암 예방은 개인적 노력으로는 불충분하다. 개인의 노력을 보완하는, 또는 그 토대가 되는 구조적이고 사회적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예는 금연이다. 흡연을 개인의 습관으로 보고 오로지 개인의 금연 노력만 강조하는 것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담뱃값을 올리는 것,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것, 광고의 금지 등 법과 제도, 정책이 흡연을 줄이는 핵심 방법이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아니던가.

담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술, 탄산음료와 식품첨가물, 공기와 작업 환경에서 발암 물질 줄이기가 모두 비슷한 맥락에 있다. 가벼운 해외 토픽처럼 지나갔지만, 미국 뉴욕 시의 전임 시장인 블룸버그가 공공장소에서 담배와 탄산음료를 팔지 못하게 한 기억도 새롭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암의 폭발적 유행에 대비하는 자세는 여전히 ‘개인주의’ 모형에 의존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좁은 모델에 ‘붙들려’ 있는 셈이다. 개인을 넘는 환경은 고려 대상이 된 적이 거의 없다.

진작 보건복지부가 만들어 열심히 홍보한 ‘10대 암 예방수칙’을 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좋은 뜻으로 보자면 개인이 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을 망라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흡연 항목도 담배 가격이나 공공장소 금연보다는 ‘피하기’라고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발암성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작업장 안전보건수칙 지키기” 같은 것은 좀 심하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발암성 물질 발생 줄이기”라야 마땅하다. 그러고 보면, 개인이 지키는 ‘암 예방 수칙’이란 것 자체가 이미 어떤 시각을 전제한다고 해석해야 한다.

 

가장 중립적으로 말해도 개인의 노력과 구조/환경이 서로 보완적이다. 그렇다면 ‘암 예방 수칙’과 함께, 적어도 구조와 환경을 바꾸고 개선하는 기본 방침과 정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지금 이 시간까지 그런 것은 없다!

 

우리는 이미 2012년에 국가 수준에서 암을 줄이기 위한 정책과 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가기). 그 가운데서도 암 발생을 줄이기 위해 일차 예방의 틀을 전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 생활습관을 넘어서, 비자발적으로 노출되는 생활 속 유해인자로 인한 암을 예방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물론 고용노동부, 환경부, 식품의약안전청 등의 적극적 연계가 중요하다. 즉, 개인과 가정을 넘어 지역사회, 작업장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발암 가능성이 있는 요인들의 생산-유통-소비-폐기/재활용에 이르는 생산주기 전 과정을 포괄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해물질 생산 및 유발자에 대한 국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보고서 102쪽)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인다. 여기서 ‘유해인자’는 벤젠이나 카드뮴처럼 무슨 물질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교대 근무와 야간노동이 유력한 발암요인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구체적으로는 발암성 물질을 관리하고 그것의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법률을 통해 강제성을 가져야 하고, 구체적인 정책이 뒤따라야 한다.

 

과정도(또는 과정이야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구조와 환경을 고치는 것은 여러 당사자의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그리고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복잡한 과정이다. 언뜻 생각해도 정치, 경제, 사회적 긴장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어렵게 개봉 중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생생한 교훈을!

그러니, 무엇보다 시민의 ‘주권’이 발휘되어야 한다. 참여하고 제 권력을 행사하는 민주적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첨단 의학과 신기술의 ‘주술’로부터 한 걸음 더 빠져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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