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삼겹살과 스팸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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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5월 9일 발행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암-처마 밑의 실마리(Cancer: A Clue from Under the Eaves)”라는 기사를 실었다(기사요약). 한국에 있는 전주예수병원 연구팀이 메주에 들어있는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소를 위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지목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도 SNS도 없던 시절이라 요즘 같지는 않았지만, 한국 안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당시 언론이 이 소식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그대로다. 정설은 없다는 차분한 기사도 보이지만, 이 독소가 간암의 45%를 유발한다는 ‘겁나는’ 내용도 있다(예를 들어 <경향신문> 1969년 7월 2일, “식품 속에 도사린 발암독소 아플로톡신”).

별 관계가 없다는 다른 연구가 발표되고 전문가들도 확실하지 않다고 거들면서 더 큰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된장에 항암성분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사정은 뒤바뀌었다. 위험하지 않은 식품을 넘어 “OO 된장 암 억제 99%” 같은 글귀까지 등장했으니 변덕스럽다고 해야 할까.

 

한참 지난 ‘된장 사건’을 꺼낸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햄과 소시지, 육포, 그리고 소고기, 돼지고기가 말썽이다. 10월 26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가공육을 발암물질 1군(群)으로, 붉은 고기를 발암물질 2A군으로 분류해 발표한 덕분이다.

 

먼저, 우리는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내용이 엉터리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어떤 큰 나라의 육류협회가 모든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이해관계에서 나온 반응일 뿐, 설득력은 없다.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한 (잠정적) 결론이므로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본론은 아니지만, 1군, 2군 식의 분류를 오해할 수 있다는 점은 지적해두고자 한다. 1군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충분하다는 뜻이고, 2A군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probably carcinogenic) 뜻이다. 다시 말하지만, 1군이 2군보다 암을 더 잘 일으키는 요인이 아니라 과학적 증거가 더 확실하다는 의미다(가공육보다 붉은 고기가 덜 해롭다는 것이 아니다).

위험(리스크)이 있다는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지만, “술, 담배보다 덜 위험하다”, “육류 소비가 적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기와 햇빛도 발암물질”이라고 논점을 흐리지 말아야 한다.

 

한 가지 현실의 위험을 지적한다. 가공육을 하루 50그램 먹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작은 스팸 한 통이 200그램이다), 붉은 고기 소비량은 이야기가 다르다. 며칠 전 워싱턴포스트 신문에 인용된 경제협력개발기구/식량농업기구(OECD/FAO) 통계를 보면, 한국은 1인당 소비량으로 쳐서 세계 4위의 돼지고기 소비대국이다(바로가기). 유럽연합을 한 나라로 묶은 통계니 과대 평가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순위가 몇 째로 높은 것은 분명하다.

때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식약처가 위험을 평가한 후에 하루 권장량을 발표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람들이 주의하게 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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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회 환경과 조건에 주목해야 하고 필요하면 고쳐야 한다. 건강과 질병은 개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먹는 문제는 더 그렇다. 어떤 식품이 무슨 병에 좋다는 방송이 나간 그 다음 날, 시장과 마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라. 취향과 개인차가 워낙 큰 탓도 있을 것이다.

건강에 나쁘다고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까지 국가가 간섭해야 하는지는 토론이 좀 더 필요하다. 다만,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넘는 사회와 구조가 원인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없다. 다른 것이 있는데도 햄이나 소시지를 선택하는 것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교급식에 나오는 햄과 소시지는 어떤가? (아직 그 정도로 많이 먹지 않는다는 것은 논점이 아니다)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구조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겉으로는 개인이 결정하는 듯 보이지만, 강요된 선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고 바빠서, 가까운데 신선식품을 살 곳이 없어서,… 이렇게 되면 선택이 아니라 강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광고나 문화로 취향 자체가 만들어졌다면 선택인가 아닌가.

눈에 보이는 강요든 좀 더 은밀하게 학습된 것이든,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환경과 조건 때문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부당하다. 먹을거리의 정치경제로 불러야 할까, 앞으로 이런 조건들이 (진정한) 선택을 더욱 제약할 것이다. 제조법을 규제하는 것이 먼저인지도 모른다.

정보가 없거나 몰라서 좋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도 사회적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과의 좋고 나쁜 점을 ‘충분히’ 알고 난 후라야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통계와 과학적인 정보도 필요하지만, 매일 일상을 사느라 여가가 없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 앞서 사회 환경과 조건을 말했지만, 사회적 요소라는 말 속에 이미 불평등이 내재되어 있다. 암에 걸리는 것에서도 나쁘고 불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과 피해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정보와 지식의 기회도 적지만, 먹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할 힘도 작은 것이 보통이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걱정스럽다.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명확하다. 지금 추세라면 햄과 소시지, 베이컨과 같은 가공육 소비도 급증하지 않을까. 문제는 먹는 것이 ‘계급화’되는 것이다.

사회계층에 따라 식품소비 패턴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 많은 나라의 경험이고,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 뻔하다. 좋은 것을 택하고 나쁜 것을 피하는 것은 사회경제적 처지에 좌우된다. 불평등이 몸에 상처를 남기고 결국 병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익숙한 먹을거리가 발암물질이라니, 무관심과 강박증 사이 어딘가에 마음을 두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술이나 담배처럼 일상에 가깝게 있는 만큼, 앞으로 작심삼일과 자책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주어진 것이라면 좋은 계기로 활용하자. 조금 떨어져서, 먹을거리와 먹는 일, 건강, 세계와 생태를 같이 생각해보는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없을까.

 

모든 초점을 개인에게 맞추는 익숙한 방식도 성찰의 소재다. 붉은 고기를 덜 먹고 가공육을 줄이라는 개인 지침만으로 충분할 것인가. 먹는 것은 가장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철저하게 사회적인 것임을 확인했다. 먹는 것과 먹는 일을 두고, 어떻게 좋은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갈까, 그리고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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