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성주 군민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드가 배치돼 들어가게 되면 제가 제일 먼저 레이더 앞에 서서 전자파가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제 몸으로 직접 시험해서…”
직접 실험하겠다니, 사드가 무슨 전자레인지인가. 앞에 서 있어도 몸이 날아가거나 화상을 입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말했나, 억지로 좋게 해석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는다. 일부러 이런 소리를 했으면 참 ‘나쁜’ 장관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사드와 전자파, 건강효과에 대한 정부의 실력이 그 정도라는 뜻이다.
정부와 언론이 언제부터 주민 건강에 이렇게 관심이 많았나 싶다. 사드의 건강 효과가 매일 과학 논문 수준으로 발표되고 보도되니 말이다. 예를 들어 국방부의 발언. “사드 레이더 안전거리 밖의 전자파 세기는 국내법과 세계보건기구의 안전기준을 충족한다“. 일부러 뒤져볼 도리는 없지만, 국방부가 ‘세계보건기구’를 언급한 것은 역사상 처음 아닐까?
그동안 보여줬던 사드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생각하면, 국방부 장관의 다음과 같은 ‘과학적’ 자신감은 기이하고 위태롭다.
“한 장관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이미 한미 양국이 여러 군사용 레이더를 사용하고 있고 사드에서 요구하는 (전자파의) 안전거리가 가장 짧다”고 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레이더로 인한 환경파괴나 유해하다는 기록이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단언했다.“
모든 국가기구를 총동원한 홍보도 겉으로 보기에는 과학, 그리고 ‘의학’과 ‘보건학’을 활용하고 있다.
“사드 레이더의 설치 위치(가장 높은 곳) 레이더의 작동 가도(최소 5도 이상) 레이더 전자파의 안전거리(100m) 레이더로부터 철조망까지의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지역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건 국정 홍보인가 과학인가, 그도 아니면 ‘통치’인가? 정말 ‘전문가’인 경북대 물리학과 이형철 교수가 한 이야기가 있으니, 여러 이슈 중 한 가지만 인용해도 ‘논란’으로 삼기에는 충분할 듯하다.
국방부 말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겠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국방부) “거주지보다 높은 곳에 설치하고 5도 이상 위쪽으로만 운영되니 주민들에게 영향을 끼치진 않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중요한 논의라는 것은 인정한다. 전자파와 건강 효과, 새와 참외에 미치는 영향이 왜 필요하지 않겠는가. 건강은 삶 그 자체이고 새와 참외는 삶을 규정하는 조건이니, 삶의 ‘환경’이 나쁘면 사드를 반대할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난다. 그 ‘불확실성’을 다루는 것, 그리고 그런 지식과 정보도 중요하다.
하지만, 전자파를 논란하는 의의는 여기까지다. 건강을 오용, 남용하지 말라. 사드를 전자파로, 다시 전자파를 건강과 안전으로, 게다가 과학적 근거와 기준으로 축소하는 것은 위험하다. 최악은 사드 제작사의 안전기준이나 미군 교범을 두고 다투는 일이다.
전자파가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지 않으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난청이 생기지 않을 정도면? 보건이나 환경, 노동 당국이 정한 기준치 이하면 ‘무사’한 것인가? 미군이 괜찮다고 하면, 또는 인가도 없다는 사드 배치 지역 주변에서 아직 암에 걸린 사람이 나오지 않았으면,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가?
현실의 관심을 건강 문제로 전환하거나 축소하는 것은 익숙하다. 기준치가 우리 삶을 재단하는 것도 낯설지 않다. 이때, 위협의 결과는 눈에 보여야 하고 과학적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백혈병이나 암, 소음성 난청, 자살 정도는 되어야 건강 효과 취급을 받고, 그나마 인과관계가 실험처럼 명확하지 않으면 모두 ‘불확실’한 ‘논란’에 지나지 않는다.
한두 가지 기억을 되살려 보자.
병이 나도 마찬가지. 원인은 다시 논란거리로 남고 오랜 기간 시비를 피할 수 없다. 세월호는 또 어떤가? 남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무슨 몹쓸 병에 걸리지 않으면 여전히 불확실하고 개인적이다. 질병을 유일한 결과로 치환되면, 삶과 그 과정, 고통은 생략되거나 추상화 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장에서의 이런 노동은 어디로 갔을까.
건강 피해와 손상, 질병은 으레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극단적 결과다. 앞서 인용한 반도체 노동자가 증언한 용액, 냄새, 장시간 노동은 병의 원인일 때만 의미가 있으니, 그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건강과는 언뜻 멀어 보이는 다른 가치, 예를 들어 즐거움이나 쾌적함, 불안 같은 것은 아예 관심 대상과 고려 사항이 되기 어렵다.
과정과 ‘저강도’의(또는 ‘소프트’한) 피해를 숨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 인과관계가 분명한 건강과 안전 문제에 국한하면, 좀 더 큰 범위, 근원, 구조는 저절로 숨는다. 반도체 산업의 노동환경과 이를 둘러싼 구조나 바다 오염의 원인과 대기업의 행태는 사라지고 없다. 백혈병의 원인과 기름 오염의 발암성을 다투느라 바쁘고, 그 근본 원인은 늘 그대로 안전하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핵심 질문은 간단하다. “사드 전자파가 얼마나 해로운가?”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공동체와 그 속의 삶이 더 좋아지는 데 기여하는가?”이다. 여기서 ‘우리’와 ‘공동체’가 성주와 그곳 주민의 범위를 넘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판단은 이미 말했다. 모든 논변과 옹호를 종합해 판단해도, 이 땅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결론이다. 전쟁, 그것도 주변의 강대국까지 개입하는 전쟁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점에서 사드 배치는 한반도의 평화 보장과는 반대 길로 가는 것이 명확하다.
대통령이 나서서 답을 달라고 했으니, 사드 배치보다 더 국제정치의 원리에 부합하고 실현 가능성도 높은 우리의 의견을 말한다. 남북의 긴장 완화와 평화체제 구축. 수단으로는 대화와 교류, 그리고 외교. 한 마디로 ‘평화 만들기’다.
성주와 다른 지역 주민의 건강과 안전에도 그리 관심이 많다니, 그 측면에서도 평화체제가 답이다. 사드의 전자파와 소음으로부터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근원적 방법은 핵무기와 미사일, 사드가 무용한 상황이다. 전쟁보다 더 큰 생명과 건강 위험이 어디에 있는가.
지역으로, 그것도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로, 그마저 전자파와 소음으로 초점이 모이면, 피해는 분리되어 ‘그들’만의 것이 된다. 미시적 건강과 안전으로 집중하면 한 번 더 분리되는 것이니,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은 이중적으로 ‘국지화’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다 관련된다는 어마어마한 문제는 사드 배치 지역 반경 몇 킬로미터 이내에 살면 시끄러운가? 또는 암에 걸리는가? 이런 차원으로 바뀌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이 방송 대담에서 말한 내용으로 보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이 전략은 이미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사드 배치가 성주와 인근 주민의 문제에 그칠 리 없다. 국지적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문제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만에 하나, 주민들이 좋다고 해도 그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에 ‘외부’가 있다는 말만큼 터무니없고 한심한 소리가 또 있을까.
이중적 의미에서 ‘탈(脫) 국지화’가 긴급하다. 건강과 안전에 한정해도, 한반도 전체를 향한 질문을 되살려 내야 한다. 그러니 거꾸로 묻는다. 평화체제 구축보다 나와 우리 이웃의 삶과 생명을 지키는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제발) 알려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