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전략이 아닌 ‘국가전략’과 ‘정밀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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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미래창조과학부 블로그 바로가기). 본론에 앞서 우선 말을 시비한다. ‘전략(戰略)’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지만, 단어의 한자(戰)가 직접 나타내듯이 전쟁에 대한 은유임이 분명하다. 한국말(정확하게는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한자 말)뿐 아니라, 영어, 프랑스 말, 그리고 그 어원인 그리스 말 모두가 전쟁에서 왔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전략’이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 정도로 전략은 일상 언어가 되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무심코 쓰는 전략이란 표현은 정말 전쟁과 무관할까? 국가, 기업, 집단이나 개인 수준 어디서나 그렇다. 전략이라고 말하면서 혹시 전쟁, 전투, 전술, 전장(戰場)을 떠올리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승전과 패전, 전상(戰傷), 전화(戰禍)와는 무관한가? 물론, 전승(戰勝)과 전공(戰功)도 있기는 하다. 우리는 이번 ‘국가전략’도 전쟁 은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를 내놓자 마자, ‘피로감’과 ‘기시감’을 호소하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런 계획이 도대체 몇 번째며, 지난번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복과 새로운 유행이 뒤섞여 있으니, 새로움을 주장해도 도저히 참신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알파고’는 벌써 ‘포켓몬고’에 밀렸다.

9대 전략에 포함된 것을 보면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성장동력’ 분야는 인공지능, 가상·증강현실, 자율차, 경량소재, 스마트시티 등 다섯 가지, 그리고 ‘국민행복과 삶의 질’ 분야는 정밀의료, 탄소 자원화, 미세먼지, 바이오신약 등 네 가지다.

얼마를 투자해 언제까지 뭘 이룬다는 찍어낸 듯한 계획(차라리 ‘다짐’이라고 해야 할까?)은 굳이 인용하지 않는다. 현실감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어차피 또 바뀔 것을….그냥 냉소가 아니라 역사가 증명한다. 정부의 계획과 발표대로 되었으면 성장동력은 이미 차고 넘쳐야 하고 삶의 질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에서만 적어도 두 번 이상의 비슷한(또는 비슷해 보이는) 종합계획이 나왔다.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한 ‘13대 미래 성장동력’에는 스마트자동차, 5G 이동통신, 심해저 해양플랜트, 맞춤형 건강관리, 웨어러블 기기, 지능형 로봇 등이 들어있었다. 이를 산업통상자원부의 13대 산업엔진과 합쳐 ‘19대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꾼 것이 바로 작년(2015년)이다. 이뿐이랴, 2014년 로드맵을 발표한 ‘30대 중점과학기술’이란 것도 있다(문서 바로가기). ‘창조경제’와는 어떤 것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물으면, 더 혼란스럽다.

 

따지자면 이전 정권도 ‘무죄’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에는 ‘17대 신성장동력 산업’과 녹색성장이 있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차세대 성장동력 10대 산업’이 ‘창안’되었다. 지금까지 계속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으니 효과는 저절로 증명한 바, 이런 것이면 차마 무슨 ‘장기’ 계획이라 하기도 어렵다.

내용을 믿기 어려운 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도 한몫을 한다. 누가, 무슨 근거와 기준으로, 이런 과학기술을 선정했을까? 투자와 효과는 어떻게 계산했는가? 인력과 기반 기술은 있는가? 우리 생각과 일치하는 중앙일보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바로가기).

 

“정부의 이번 9대 국가전략 프로젝트는 지난해 3월 발표한 19대 미래성장동력과 단 두 개, 자율주행차·가상증강현실만 겹친다. 1년여 사이에 국가의 미래를 먹여 살릴 새로운 프로젝트가 7개나 나타났다는 얘기다. 올 3월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 한국시장에 출시되지도 않았는데 화제가 된 증강현실게임 포켓몬고, 지난 수개월간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비판이 뜨거웠던 미세먼지 등에 대한 여론이 국가전략 프로젝트의 우선 순위를 바꿔버린 셈이다.”

 

이러니 이번 프로젝트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결과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연구비가 필요한 연구자들은 이미 잘 알고 실천하는 바, 이런 계획을 그대로 믿고 ‘올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OO형”이나 “OOOO에 기반을 둔”, 또는 “OOOO을 위한 기초연구”로 제목과 강조점만 바꿔 살아남아야 한다.

국가계획의 구조와 과정이 이럴진대, 세부 전략의 내용도 의심스럽다. 우리는 특히 ‘정밀의료’가 포함된 것에 주목한다. 솔직히 말하면, ‘성장동력’ ‘미래산업’ ‘신기술’ ‘보건의료산업’ 등등 어느 언저리에선가 정밀의료가 곧 등장하리라고 예상했다. 최신 ‘유행’이자 ‘상품’을 놓칠 리 있겠는가, 우리 예상보다 꽤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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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가 무엇인가. 이번에 같이 발표한 보건복지부의 보도자료에서 그대로 옮기면 정밀의료는 “유전체 정보, 진료·임상정보, 생활습관정보 등을 통합 분석하여 환자 특성에 맞는 적합한(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진료의 정확도와 치료 효과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다(보도자료 바로가기).

정밀의료가 보건의료를 어떻게 바꾸고 사람들의 건강과 삶에 어떤 변화를 불러올지는 충분히 연구하고 논의할 만한 주제다.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중요한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다른 기회로 미루자.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정부가 정밀의료를 꺼내 든 맥락이다. 정책에서는 맥락이 동기와 지향을 설명하고 그것이 다시 내용과 초점을 결정한다. 보건복지부, 그리고 이 정부는 무엇을 위해 정밀의료를 ‘국가전략’으로 선택했을까? 정치인가, 정책인가, 다만 기록에만 남는 ‘실적용’인가?

정부가 보도자료 안에 이미 밝혀놓은 것이 진정한 이유이자 동력이다. 보도자료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복지부, 정밀의료를 통해 ‘개인 맞춤의료 실현’ 및 ‘미래 신성장 동력 확보’ 추진”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기대 효과.

 

보건복지부는 정밀의료 기술개발을 통해, ‘25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기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측

■ 건강수명 3년 연장(73세 → 76세) 및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의료비* 증가율 감소(7% → 3%)

   * ’10년 대비 ’14년 20대 위암환자의 1인당 평균 진료비 증가율: 7.1%

■ 3대 전이암(폐암, 위암, 대장암) 5년 생존율 6% 증가(8.4% → 14.4%)

■ 147조원 세계 정밀의료 시장*의 7%를 점유, 10.3조원 부가가치 창출 및 약 12만명의 고용 유발

   * ‘15년 45조원 → ‘25년 147조원 추정(연평균 12.6% 성장, ’16. Research & Markets)

 

진심은 무엇인가? 국민의 질병과 고통을 줄이는 것? 산업과 부가가치? 사실 이 기대효과 자체가 ‘모순’이다. 의료비 증가 감소와 부가가치(시장)를 창출하는 목표를 한꺼번에 제시했지만, 의료비 증가와 부가가치 상승은 같은 현상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부가가치가 경제적 가치인 바에야 의료비용 없이 어디서 돈이 나온다는 소리인가(수출은 별개다)?

정밀의료 발전의 목표를 건강에 두는 것과 산업에 두는 것은 정책철학은 물론, 목표와 투자 대상, 내용과 과정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 문제, 결핵(!)을 해결하는 데에 정밀의료가 큰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성장동력을 내세우는 한 ‘9대 국가전략’이 결핵에 투자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내기를 걸어도 좋다.

진심이 부가가치형 산업에 있으면, 내용과 방식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다. 인력이나 지식 기반이 있든 없든 실제 건강문제를 해결하든 못하든 왜 문제가 되며, 기초연구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장기 투자는 한가한 소리, 상품화된 산업 논리에 충실하면 된다.

 

앙드레 고르의 지적은 상품이 된 정밀의료에도 타당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 시장이 내놓는 “상품은 다른 것과 견줄 수 없는 물건으로 보”이려 하는 것으로, 그것이 성공하는 한 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상품의 가격은 “새로움, 희소성, 배타성에서 기인하는 지대”이며, “기술혁신은 지대의 원천이 되는 희소성을 창출하는 수단”이다(<에콜로지카>, 임희근, 정혜영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전략이 발표되자 마자 정밀의료 계획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있었지만(관련 기사 바로가기), 그것은 관점의 문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혁신적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산업으로 보는 한, 하나도 부실하지 않은 계획. 정밀의료를 둘러싼 정책이자 정치의 본질이다.

 

왜 정밀의료를 하려 하느냐고, 진심으로 묻는다. 정밀의료가 유명해진 데에는, 그리고 이렇게 국가전략까지 들어오게 된 데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크다. 작년 연두교서를 통해 정밀의료에 대한 대규모 국가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했고, 정밀의료는 세계적으로 그야말로 유행이 되었다. 백악관의 홈페이지는 바로 그 연설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누리집 바로가기). 아무리 찾아봐도 정확한 진단과 치료, 그리고 좋고 쉬운 건강관리가 목표다.

 

정밀의료가 “국민행복과 삶의 질 제고”를 위한 국가전략 프로젝트 4개 중 하나에 들어간 것은 ‘희극’이자 ‘비극’이다. 행복과 삶의 질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 가망 없는 성장동력으로 소모될 것 같다(‘원격의료’를 생각해 보라!). 행복과 삶의 질을 바꿀 기회 하나가 또 흩어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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