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문케어’는 시작일 뿐, 더 큰 것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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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획기적인 것은 맞다(프레시안 관련 기사 바로 가기, 라포르시안 관련 기사 바로 가기). 특히 국민건강보험에 포함되지 않았던 비급여를 대책에 포함했다는 점이 그렇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언론 보도를 참고하기 바란다.

국민건강보험만 놓고 보면 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보험(자발적으로 가입하는 민간보험 또는 사보험과 달리, 국민건강보험은 흔히 ‘사회보험’이나 ‘공보험’으로 부른다)만으로 의료 이용과 비용 부담을 해결하자는 기본 방향에 찬성한다(다만, ‘현재로서는’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방향에 찬성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시민 누구나 경제적 부담 능력에 무관하게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60% 초반(정부는 2015년 기준으로 63.4%라고 명시했다)에 머물러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으로는 빈곤층을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도 의료비의 두려움과 걱정을 떨칠 수 없다.

정부가 집권 기간 안에 달성할 목표를 내놓은 마당에 보장성 강화를 다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동의가 있다고 믿는다. 이 <논평>은 아쉬운 점을 짚고 의견을 달리하거나 찬성하기 어려운 점을 말하는 것을 역할로 삼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한다. 건강보험의 ‘정치경제’를 배제하거나 ‘탈정치화’하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가장 걱정스럽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정치와 경제가 아니면 그렇게 해도 문제가 없지만, 그것 없이 가능하지 않은 일을 정책, 기술, 행정관리, 실무로만 접근하면 반드시 어려워진다.

첫째, 건강보험의 보장성 목표를 70%로 삼은 것에 대해 아쉽고 미흡하다는 반응이 많다. 대통령은 5년간 30조 6천억 원을 투입해 보장성 수준을 2022년까지 70%대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지만, 이것이 영 부족하다는 것이다. 목표가 좀 더 적극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서 우리도 불만스럽다(‘실무적’, ‘정책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적극성이나 불만, 선언이나 목표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이 고민이다. 70%가 아닌 80%가 되려면 그만큼 재정이 더 필요하고 세금이나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정부가 이런 정치적 부담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증세는 넓은 의미의 정치일 뿐 아니라 지금 이 시기 여야가 다투는 경쟁과 싸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적 지지와 세력의 문제에서 무관하지 않으니, 건강보험료 인상은 그 어떤 과학과 논리를 동원해도 정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정부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도 건강보험료 인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행정부는 관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만, 한국의 의료는 이미 충분할 정도로 ‘시장’이다. 제도가 확대 지향이면 의료이용과 비용은 반드시 늘어난다.

행정관리만으로 3천 개가 넘는 병원, 60만 개에 가까운 병상, 3만 개에 이르는 의원의 ‘행동’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연간 1천 5백만 건이 넘는 입원, 14억 건에 가까운 외래 이용 하나하나를 무슨 수로 들여다보고 관리한단 말인가.

 

둘째, 병원이나 의사 등이 주도권을 가진 ‘의료공급의 정치경제’를 소홀하게 다루지 않아야 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비급여 대책. 정부는 환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핵심 원인 중 한 가지로 비급여를 꼽고, 꼭 건강보험에 넣지 않아도 될(비용이나 효과성 측면에서) 비급여까지 ‘예비 급여’ 제도 등을 통해 건강보험에 편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에 대해 의사와 병원이 반발하는 것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건강보험 급여에 대한 진료비(수가)가 낮아 비급여로 수입을 보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비급여가 급여로 바뀌면 가격과 서비스가 모두 규제를 받고, 본인부담이 몇 퍼센트든 상관없이 수입이 줄어든다.

환자에게는 비급여가 의료 서비스고 비용이지만 의사와 병원에게는 곧 수입이다. 한국 상황에서는 특별한 경제이자 생활의 이해관계가 된 지 오래, 의료공급의 경제를 건드리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른 대안 없이 수입의 원천을 막으면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지금까지 건강보험의 경험이 아닌가?

정부는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겠지만 장담할 수 없다. 모든 비급여를 급여로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완전히 미용만을 목적으로 하는 수술이나 근거도 의심스러운 백옥주사, 마늘주사를 급여로 하는 것은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문제는 급여와 비급여를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는 것.

명백하게 의학적 필요가 없는 비급여, 지금보다 이상하고 극단적인 비급여가 개발, 도입, 유행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어디 비급여뿐이랴. 의원이나 병원 수입에 도움이 된다면, 급여 안에서도 왜곡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수익이 문제라면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지점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불법을 왜 막지 못하냐고? 의료는 워낙 회색 지대가 넓어, 법과 규정으로는 옳고 그름의 경계를 정하기 어렵다. 윤리를 따져도 마찬가지다. 2주에 한 번 하던 검사가 열흘이나 1주일에 한 번 하는 것으로 늘리는 것을 무슨 근거로 기준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공명영상(MRI)을 언제 얼마나 자주 찍어야 하는지를 행정 지침으로 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옳은 의료와 그렇지 않은 의료 사이에는 넓은 틈이 존재하고 그 경계는 놀랄 만큼 희미하다.

결과적으로, 관료적 통제도 (서비스나 가격에 대한) 시장 경쟁도 수익을 찾아 움직이는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막기 어렵다. 비급여를 관리한다고 하지만, 의료 비용을 모두 감독,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담한다. 으레 나타날 의료인이나 병원의 수익 추구를 비난하는 ‘윤리화’ 전략도 정치경제의 측면에서는 말이 안 된다.

 

셋째, 건강보험의 의료 이용과 공급, 이에 따른 재정은 홀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의 한 요소다.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이용과 공급, 재정을 관리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필요하지 않은 데도 대학병원과 ‘빅5’ 병원을 찾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과잉 진료와 과잉 이용, 재정 팽창을 관리하기는 어렵다. 일차의료, 동네 병원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큰 병원 이용을 억제한들, 적자를 보지 않겠다고 목을 매는 병원들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막무가내로 ‘죽음’을 강요할 수는 없으니, 비급여와 과잉 진료는 저절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방향에는 동의해도 감시와 처벌로 비급여와 과잉 진료를 통제하기는 어렵다. 비급여와 과잉 진료에 대한 동기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대학병원이 아니라 동네 의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개인과 병원을 옥죄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문케어’가 내포한 세 가지 한계를 말했지만, 누군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변화를 제안하고 주도하는 정부의 고민이 가장 클 것으로 이해한다. 정부가 스스로 내놓은 제안의 한계와 그 성격을 왜 모를까. 의도적으로 ‘정책화’(정치화와 대비되는 말로)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해하는 것은 여기까지, 판단은 이제부터 갈린다. 정책으로 접근한 것을 이해하지만, 정치화를 하지 않고는 내놓은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겉으로 목표를 달성해도, 온갖 부작용과 왜곡을 동반하는 그야말로 서류로만 존재하는 성과로 끝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한다. 건강보험만으로 보면 우리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모든 것,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기대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얽혀 있는데 한 가지도 만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는 데에, 시민이 동의하는 가운데 건강보험료를 ‘적정화’하는 데에,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는 데에, 왜곡된 의료와 시장 참여자가 새로운 체계에 연착륙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너무 조급하면 그르친다. 기초 체력이 허약한데 무리하면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지사. 우리는 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숫자로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내기보다는 진정한 ‘개혁’의 주춧돌을 놓는 것이라 본다.

근본 구조를 바꾸는 것은 바라지 못한다. 앞서 말한 한계가 곧 보장성 강화를 가로막는 조건들이니, 그것을 치우는 것이 핵심이다.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건강보험 재정, 급여와 비급여 정리, 일차의료를 포함한 의료전달체계, 민간의료기관의 구조와 역할을 논의해야 새로운 체계로 가는 징검다리가 놓인다. 성과와 과실은 다음 정부가 가져가면 또 어떤가, 역사가 기초 작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기록할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다시 건강보험의 정치가 필요하다. 많은 당사자가 알게 된 것은 다행이고 기회다. 이제부터 더 많은 시민이 이해하고 대안을 거론하는 데에 이르러, 그 개혁의 동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병원과 의료인 등 의료공급자 또한 이해하고 바꾸어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하여 이해당사자 대부분이 받아들일 만한 구조적 환경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보험 개혁이 성공하려면 평범한 시민과 의료공급자가 우군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저항보다는 개혁의 동력이 충분히 더 커야 전진하고 성취할 수 있다. 정책, 관료체계, 행정을 넘어선, 건강보험의 (재)정치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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