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식품 안전성 위기, 보건당국은 왜 안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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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달걀 차례인가? 이른바 ‘살충제 달걀’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비자는 안심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만이 가득하고, 생산자는 경제적 타격이 크다고 아우성이다.

 

먼저 안전성에 대해. 우리는 2017년 8월 18일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내용, 즉 최근까지 나온 과학적, 의학적, 보건학적 증거를 종합한 판단을 믿고 싶다(☞관련 기사 : 의사협회 “살충제 계란 먹어도 독성 한달이면 빠져나가”). 이에 따르면 지나치게 걱정하고 동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급성’ 독성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에 가장 민감한 영유아가 하루에 달걀 2개를 섭취한다고 했을 때도 급성독성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장기간 섭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는 것이 조금 걸린다. 연구와 조사가 더 많이 축적되어야 안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니, 모든 걱정을 내려놓기는 이르다.

 

개인과 가정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또한 의사협회의 권고가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문제없다고 검증한 것은 먹어도 된다. (…) 다만 정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다고 발표된 계란은 가정에서 폐기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아직 정부의 검증과 보증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살충제 성분을 모두 검사하지 않은 지자체가 수두룩하고 전수 조사를 하지 않은 데도 많다는 것. 달걀을 살 때 생산 농장을 구분할 수 있는 ‘난각코드’도 오류와 수정을 되풀이해 혼란을 보탰다. 의사협회가 권하는 대로 정부가 보증하는 달걀은 먹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하나 판단하려면 며칠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이번에도 문제는 이 사태 이후다. 따지고 보면 사단이 난 연유, 큰 문제로 번진 과정, 사회적 반응의 크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 전부가 낯설지 않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건,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 있을 법한 대응도 마찬가지. 급한 일이 마무리된 후 으레 나오는 ‘근본 대책’이 정말 새로울 수 있을까?

 

이번에는 대통령이 나서서 축산업의 근본 개편까지 언급했다고 하지만, 축산 한 가지로 보더라도 구조적 문제들을 금방 해결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예를 들어 공장식 축산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완전히 동의하지만, 축산 ‘시장’을 그냥 두고 어느 정도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더구나 안전한 먹을거리는 축산에 한정되지 않고, 농산과 수산은 물론 ‘자연’과 인공도 구분하지 않는다. 잔류 농약과 호르몬, 유전자 조작, 항생제, 방사능, 유기오염물질(POP), 중금속으로 둘러싸인 것이 지금의 식품 생산이고 식품이다. 자연이 더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자연 상태에서 독소가 생기고 세균과 바이러스가 번식하기도 한다.

 

익숙할 수도 있는 대책에 대해 먼저 확인해 둘 것. 사고가 날 때마다 내놓는 ‘두더지 잡기’식 대응은 곤란하다. 이번에는 달걀과 살충제였지만 다음은 또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메르스에만 해당하는 감염병 예방 대책으로는 지카 바이러스 유행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동원형 대책도 벗어나야 한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메르스가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사고가 생기면 행정조직과 민간부문을 동원하는 것이 능사가 되었다. 그것도 국가적 수준의 총동원 체제. 재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겠지만, 모든 안전과 재난, 공중보건 대책에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곤란하다.

 

우리는 식품안전시스템을 정비, 강화, 재구축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정비’와 ‘강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국가식품관리시스템’이 존재하고, 많은 사람이 개별 사건이 아니라 체계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국가식품관리시스템’ 불신 고조…전문가 “보완 필요”). 식품관리시스템 또는 식품안전관리시스템은 처음 나온 말이 아니고 아예 생소한 대책도 아니니, 창안이라 할 수 없다.

 

현재 논의는 중앙 정부 수준에서 관리체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기능과 역할에 집중되어 있다. 생산단계의 안전 관리는 농식품부와 해수부에 그대로 있고 유통단계는 식약처가 담당하는, 이른바 ‘이원화’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식품안전관리체계가 통합될 필요가 있다는 데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우리는 안전시스템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위험 요인을 보건학적으로 관리하는 데서 얻은 교훈에 기초했다는 점(예를 들어 메르스 사태), 따라서 모두를 망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첫째, 통합과 일원화 체계의 ‘소프트’한 측면을 구축해야 한다. 조직과 인력, 법률이 ‘하드’라면 리더십과 논의, 협력과 조정이 ‘소프트’다. 조직과 법률이 통합과 조정, 일원화를 저절로 보장하지 않는다.

법률적 권한을 이리저리 옮기고 규정해도 개별 부처 간에 지시하고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무리 안전 문제라도 농축수산물을 생산하는 과정에 식약처가 개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차관급 부처인 식약처가 ‘부’를 대상으로 무언가를 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어떻게 구조를 짜더라도 한 부처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개별 부처를 넘는 리더십과 조정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소프트’한 통합 일원화로 가는 길은 정부 내에서 문제와 과제의 우선순위를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서 현장을 시찰하고 대책을 지시하니 우선순위가 충분하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그건 시스템이 아니라 사고와 민원, 불만의 우선순위다. 일상적 리더십과 조정 기능, 그 대상으로서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둘째, 제도와 정책, 구조도 중요하지만, 식품안전시스템은 ‘실행’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과 운영이 중요하다는 뜻과 비슷하다. 식품안전을 말할 때 흔히 규제, 관리, 감시, 감독, 처벌을 말하지만, 먹을거리는 이중 어느 하나도 쉽지 않다.

그 많은 안전(위험) 요소를 어떻게 관리, 감독, 모니터링 할 수 있을까? 쉽게 찾을 수 있는 이 방대한 관리 대상과 요소, 그리고 그 다양함을 고려해야 한다.

– 한국에서 식품첨가물로 허가된 품목은 화학적 합성품만 370종 이상 
– 올해 초 구제역 방역 대상이 된 장소가 축산농가와 도축장을 포함해 22만 개 
– 이번에 검사 대상이 된 산란계 농가만 전국적으로 1,239곳 
– 농촌진흥청이 올 상반기에 새로 보급한 농약이 51품목.

 

툭하면 거론되는 ‘전수조사’는 불가능하다. 정보 불균형을 생각하면, 시장에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관료체제도 시장도 규제할 수 없다면, 생산자 스스로 안전을 보증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

인증이 대표적인 제도로, 한국에서도 이미 유기농 인증, 우수관리 인증(GAP), 안전관리인증(HACCP, 헤썹) 등 여러 인증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중이다. 일종의 자기 규제라 할 수 있다. 이 방향을 넓히고 탄탄하게 할 수밖에 없다.

실행을 강조하는 것은 그다음이 문제여서다. 자기 규제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작동한다. 살충제 달걀에 엉터리 친환경인증을 해준 민간업체들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들이라면, 해썹의 지정과 관리가 모두 부실하다면(☞관련 기사 : 해썹 지정·관리도 모두 부실…의무적용 대상업체 절반 이상 미인증), 인증은 또 하나의 관료적 규제로 퇴화할 뿐이다. 거버넌스, 리더십, 관리, 투명성, 이해당사자와 참여 구조 등으로 문제를 줄여야 한다.

시민사회와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새로운 생산-유통-소비체계, 시민사회와 소비자의 압력과 영향,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이념과 문화를 형성할 공간을 달리 찾기 어렵다. 예를 들어 그 말 많은 공장식 축산을 어떻게 줄여갈까를 생각하면 시민사회와 소비자의 역할은 분명하다. 넓은 의미의 구조이지만, 이 또한 실행의 과제다.

 

셋째, 분권형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상자와 항목, 내용, 위험요소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재의 중앙집중형 관리 시스템은 한계가 뚜렷하다. 중앙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현실적 이유다.

이렇게 주장하는 간접 근거 한 가지. 살충제 달걀이 유통된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안 것이 아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되었고 올 4월에는 소비자 단체가 검사결과를 밝혔다. 두 자리 모두 중앙 부처의 책임 있는 공무원이 참석했는데도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원인 가운데 한 가지가 중앙집권형 관리 시스템 때문이라고 본다. 현장에서는 뻔히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식약처나 농식품부만 쳐다보고 있었던 결과가 아닌가? 관행, 능력과 지식 부족, 책임 회피,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내 일(자치, 책임)이 아닌 남의 일인 탓이다.

 

넷째, 식품안전시스템은 전체 식품 정책과 사업에 조화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식품 정책이 어떤가에 따라 안전 문제의 종류와 강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 당연하다. 예를 들어 식품 대부분을 수입하는 정책이면, 식품안전은 수입식품의 안전관리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식품안전이 흔히 지역, 집단, 계층에 따라 다르다는 것도 식품정책과 관련된다. 학생은 급식(집단 급식의 안전)과 유관할 수밖에 없고, 빈곤층은 나쁜 식품위생에 노출되기 쉽다. 식품안전이 식품 가격에 좌우되는 사회에서는 계층과 불평등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은 보건체계와 밀접하게 협력하고 조정, 통합되어야 한다. 식품은 농산, 축산, 수산이지만, 건강과 보건이기도 하다. 식품은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인 동시에 건강과 질병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추정한 것을 보면, 식품 때문에 생기는 질병은 설사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200가지가 넘는다(☞관련 자료 바로 가기). 세계적으로는 연간 6억 명 이상의 인류가 식품안전 때문에 병에 걸리고 42만 명이 사망한다. 식품안전과 건강의 문제가 이렇게 연결되면, 두 시스템은 긴밀하게 협력하거나 통합적인 것이어야 한다.

“(…) 비브리오균 관련 질병이 확산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수산물 안전관리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14일 밝혔다. (…)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비브리오패혈증 환자 수는 2012년 64건(37명ㆍ사망자 수), 2013년 56건(31명), 2014년 61건(40명), 2015년 37건(13명), 2016년 42건(14명)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관련 기사 : 지난해 사망자만 14명, 수산물 비브리오균 예방 나선다)

지도, 점검은 식약처가 하고 질병 통계는 질병관리본부가 책임지는 것, 서로 떨어진 두 체계의 현실이다. 모든 일을 한 군데서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협력하거나 통합적이지 않으면, 식품안전은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살충제 달걀 문제 어디서도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의 존재가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집단의 건강문제를 다루는 공중보건의 경험과 지식이 식품안전을 증진하는 데에도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관료적 영역 다툼을 넘어 더 넓은 범위에서 더 통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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