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청년이 미래? ‘착취’를 멈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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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논평]  청년이 미래? ‘착취’를 멈추자

 

 

한국인은 아직 ‘퇴보’에 익숙하지 않다. 1960년대부터 거의 모든 것은 커지고 많아졌으며 좋아졌다. 굶지 않게 된 데서 출발했지만, 삶을 지탱하는 물질은 상전벽해로 바뀌었다. 이제 소득, 재산, 학력은 으레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인 줄 안다. ‘확대’와 ‘팽창’은 삶의 원리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와 2008년 무렵 세계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성장과 발전의 ‘멘탈’을 바꾸지는 못한 것 같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 수많은 창업과 자영업의 기획과 좌절, 사회적으로는 정부가 제시한 경제계획을 뜯어보라. 삶의 물리적 조건이 정체하거나 후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사회변화와 생존의 물적 토대를 종합한 한 가지 지표, 건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평균수명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2030년 무렵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강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고 보면, 감소와 후퇴를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성장주의는 한국의 근대적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생활의 물적 토대, 그리고 그를 반영하는 건강은 오른쪽 위로 끝없이 뻗어갈 수 없다. 경제가 후퇴하고 소득이 줄어들 수 있으며, 사회 요소들의 종합 지표인 건강도 나빠질 수 있다.

 

한국을 벗어나 세계적으로는 사회가 퇴보하고 건강이 뒷걸음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현재 상황만 하더라도, 긴축으로 건강이 후퇴한 그리스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데이비드 스터클러와 산제이 바수. <긴축은 죽음의 처방전인가>, 안세민 옮김. 까치 펴냄).

 

 

최근에는 영국이 새로운 사례로 등장했다. 공식 통계로만 봐도, 2014-2016년 잉글랜드와 웨일스 사람들의 전체 평균수명은 거의 100년 만에 처음으로 제자리걸음을 했다(자료 바로가기). 원인을 두고 논쟁이 일었지만, 긴축 정책으로 특히 노인과 빈곤층이 직접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금 더 과거로 가면 ‘스캔들’이라고 불러야 할 사례도 많다. 체제 전환기 러시아에서는 1990년에서 1994년 사이에 사망률이 33% 증가했고, 남성의 평균수명이 63.8세에서 57.7세로 곤두박질쳤다(논문 바로가기). 예외적 현상이라고 쉽게 말하겠지만,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평균수명은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갔다(기사 바로가기).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절대적 건강수준의 후퇴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단지 성장주의의 멘탈을 문제 삼으려는 것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현재와 지금 이 시기의 현실이 (아직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는)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현실이 곧 미래다.

 

아이를 어떻게 낳고 기르는지에 따라, 청소년이 어떻게 성장하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청년이 어떤 조건에서 생활하고 일하는지에 따라 미래 세대의 건강이 결정된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강조한다.

 

건강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또한 삶의 조건과 성취, 그 의미를 가장 끝에서야 드러내는 지표다. 그리스, 영국, 러시아, 스와질란드와 코트디부아르의 수명 감소는 무엇을 증언하는가? 사람과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몸과 맘에 새겨진(또는 체현된) 결과가 바로 건강, 질병, 죽음이다. 미래에 관심을 두는 것은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 같다.

 

오늘 우리는 특별하게 지금 청년 세대의 미래를 걱정한다. 더 정확하게는 미래가 아니라 우울한 현실이 걱정이다. 지금 청년이 겪는 현실을 “단군 이래 부모보다 가난한 첫 세대”로 요약하면(기사 바로가기), 경제뿐 아니라 삶도 후퇴하는 첫 세대로 귀결될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다시, 몸에 새겨지는 그 후퇴의 증거 한 가지는 건강과 생명의 퇴보다.

 

지금 청년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가? 몸과 마음에 어떻게 새겨지는가? 마침 경기도 성남에 있는 <일하는 학교>가 주로 20대에게 ‘청년 마음건강 실태조사’를 하고 1월 15일 저녁에 결과를 발표한다고 한다(http://bit.ly/2mDcaB5). 우리 <연구소>가 조사를 분석하는 데 참여한 덕분에 몇 가지 결과를 미리 얻어서 들여다봤다.

 

– 4명에 한 명은 임금이 월 100만원에 미치지 못함.

– 소득의 24.5%를 주거비로 지출.

– 응답자 중 약 30%에서 채무가 있고, 이들의 평균 채무액은 482만원에 이름. 37%의 응답자는 저축이 전혀 없음.

– 약 34%에서 우울 증상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14.7%가 자살 생각을 한 경험이 있음.

 

개인이 표현하는 고통도 특수한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 현실을 드러낸다.

 

“다른 알바 같은 거 하면, ‘진짜 일하기 싫다,’ 딱 3달만 되면 ‘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 많이 들었거든요. (중략) 근데 지금은 돈이 우선이잖아요. 돈 없으면 안 되니까. (중략) 일하면 스트레스 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일은 하고는 싶은데. 돈 때문에 일은 하고는 싶은데. 팔이 너무 아프기도 하고, 스트레스 받을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 짜증나기도 하고.”

 

양적, 질적 실태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지금 청년 세대에 고용과 노동, 임금은 가능성이 아니라 질곡으로 작용한다는 것. 이런 조건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에 영향을 미치니, 단기로도 삶의 질, 행복, 웰빙, 건강을 결정한다,

 

당면한 삶의 질은 그 자체로 현재적 결과이자 가치이면서, 아울러 청년의 미래를 산출하는 재료이자 원인이다. 저축이나 재산, 집, 직장과 같은 훗날의 경제적 결과물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뿐 아니라 빈곤도 재생산한다.

 

미래의 삶의 질과 가치는 어떨까? 지금 저 청년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부실한 식사, 피로, 스트레스, 열악한 주거,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는 중이다. 건강만 하더라도 그들의 미래가 아슬아슬하다. 지금 축적하는 위험은 몇십 년 후 뇌졸중이나 암과 같은 질병, 우울증, 낮은 행복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사회적 가치 배분은 언뜻 보면 같은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결정인 것처럼 보인다. ‘오늘’ 낮은 임금과 비정규 노동은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이윤 창출의 유력한 방법이다. 편의점 임대료와 가맹비, 카드수수료를 떼고도 수익이 나려면 ‘지금’ 일하는 알바생의 일당을 줄여야 한다. 인건비가 올라 원가가 오르면 공장을 ‘당장’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로 옮기는 방법도 있다.

 

사회적 가치 배분은 또한 역사적인 것으로, 청년에게 배분하는 것은 그들의 미래에 배분하는 것을 포함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청년에게서 뺏는 가치는 상당 부분 그들의 미래에서 옮겨 온 것이다. 그들의 미래 시간과 삶의 조건, 안전과 건강을 앞당겨 사용함으로써 초과 이윤을 만들어낸다. 오늘 건강을 해칠 만큼 일해야 하면 30년 뒤 그들의 건강은, 또 그들의 노동은 어떻게 되는가?

 

미래를 말하지만 사회나 미래를 위해 청년에게 ‘투자’하자는 뜻이 아니다. 어떤 청년도 생산적 노동력 또는 인적 자본으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와 시장의 한계를 고스란히 인정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도 사회적 가치가 정의롭게 배분되어야 하며, 그들도 ‘착취’ 당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 인권의 주체다.

 

마침 최저임금 논란이 한창이다. 비정규 노동 문제도 말만 요란하고 실속이 변변치 않다. 다른 것에 앞서 미래 세대에게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한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수준과 방식으로 노동을 보상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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