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블록체인, 사람과 삶을 위한 기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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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논평] 블록체인, 사람과 삶을 위한 기술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이 일상용어가 되었다. 비트코인은 투자와 투기의 ‘광풍’에 휘말렸고, 정부가 이를 규제하겠다고 나서자 급기야 세대 문제로 비화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긴 하나, 우리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체계 안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투자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가상화폐는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처럼 땅이나 기업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거액의 자본금이 없어도 문제없다”고 하고, “흙수저도 진입장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투자”라고 한단다(기사 바로가기). 경제와 금융, 기술을 넘어 바야흐로 정치와 사회로 확대되었다는 증거다. 앞으로 벌어질 사태는 ‘정치경제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먼저 이런 ‘시장’에 대한 의견부터. 부동산과 주식 투기로 돈을 번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는 이해한다. 형편과 심사가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사회적 이해는 딱 거기까지다. 하루 40%나 오르내리는 ‘미친’ 시장에 청년이 온 미래 희망을 거는 사회를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변동이 큰 주식 시장이 ‘몸’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산지석 삼아 내리는 판단이다(서리풀연구통 바로가기). 시장을 폐쇄해 해결하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하지만, 우리는 투기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오늘 우리의 본격적 관심은 유례없이 경제와 사회에 개입한 기술 문제다. 기술은 개입했을 뿐 아니라 경제, 사회와 뒤섞여 있고 또한 결합해 있다. 먼저, 전문가들이 이 기술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한 언론보도를 인용한다.

 

“더 중요한 건 국민 피해뿐 아니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향후 광범위한 활용 가능성 등을 고려해 섬세하게 처방해야 한다.” 또는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의 플랫폼만이 아니라 향후 기업-기업, 기업-소비자 간 거래에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쳐 전 세계 경제 및 금융 시스템에 큰 변화를 야기할 것.”(기사 바로가기).

 

이 말 자체는 그리 문제 될 것이 없다. 투기에 따른 피해는 방지해야 하지만 기술 발전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섬세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누가 반대할까. 앞으로 경제와 금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데도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이런 ‘기술론’이 비트코인 투자(투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기술적으로 “블록체인이 암호화폐의 기반”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이 이익과 이윤의 원천이 되고 경제와 성장의 동력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바로 그 ‘성장동력론’과 결합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과학기술의 경제화!

 

질문을 정리하면 이렇다. (암호화폐를 지나치게 규제하지 않아야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한다고 전제하고 – 논리적 비약이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한국’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국가에 앞서 또는 다른 국가보다 더 많이 이 기술에 ‘투자’해야 하는 것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인가?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규제하지 않아야 하는 까닭은?

 

이 땅의 현실은 그나마 ‘과학입국론’이나 ‘성장동력론’이 과학기술 투자를 뒷받침하는 상황일 터. 암호화폐를 엄격하게 규제하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감소하고, 따라서 기술발전의 물적 토대나 동력이 상당 부분 줄어들지도 모른다.

 

백 보를 양보해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더라도, 그것이 암호화폐를 키우고 확대하는 근거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과학기술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 더 정확하게는 국가와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를 다르게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가치를 구현하고 인간의 조건을 향상한다…(중략)…기술을 통해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특히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음을 믿는다. 이는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기술의 혜택이 “성별, 종교, 인종, 언어, 출신지역, 장애, 나이, 성적 지향, 학력, 사상, 정치적 의견, 사회적 신분”(국가인권위원회 헌법개정안)에 관계없이 골고루 돌아가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라는 뜻이다.”(기사 바로가기)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면, 또 그렇게 발전하도록 지지를 받아야 하면, 이런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아가 기술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인 암호화폐의 가치도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기술의 물신화 현상, 기술이 자기 운동을 통해 기어코 삶을 재단하고 구속하는 가치의 역전 가능성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는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대표 분야로 꼽히지만, 원격의료의 전철을 밟으면 블록체인 기술 또한 의료 ‘영리화’의 첨병 노릇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시비할 다음 차례는 보건의료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기술 담론이 정치경제적 맥락을 피할 수 없다면, 제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동력’의 중심을 차지하는 의료 영역은 블록체인 유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기사 바로가기). 행위자, 정보, 물적 토대, 거래 등의 모든 조건이 그러고도 남는다.

 

모든 기술발전이 그렇듯, 이런 가능성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블록체인 기술 또한 건강과 의료에 관련된 삶의 조건과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미국의 다국적 경영 자문회사인 딜로이트는 블록체인 기술이 보건의료를 개선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기사 바로가기).

 

이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의료체계의 핵심이 ‘통합성’이라고 주장한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도,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계속 변화하는 환자의 진료기록과 진료비 기록, 약품과 재료, 병원정보 등을 통합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극도로 분산된 미국의 의료 환경 때문에 효과를 과장했을 수도 있지만, 어느 사회에나 적용되는 보편적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보건소, 여러 의원, 여러 병원에 분산된 의료정보를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공유하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환자가 누리는 의료의 질과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환자 – 의료기관(들) – 건강보험공단 –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체제와 상호관계가 ‘사람 중심’으로 혁명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삶이 아닌 산업의 가능성으로 접근하면 기술의 현실적 목표는 완전히 다르다. 어떤 기술, 장비, 정보시스템이 필요하고, 얼마나 부가가치를 생산할 것이며, 고용효과와 산업연관효과가 얼마나 큰지 따지게 될 것이다. 환자와 시민은 자칫 돈만 더 내야 할지도 모른다.

기본 방향에 대해서는 다시 원격의료가 좋은 교훈을 제공한다. 삶의 가치와 연관해 의료 서비스는 무엇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했다. 어떤 기술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지 찾는 것은 그다음 순서다.

 

키워야 하는 기술을 미리 정해놓고 어디다 이것을 가져다 붙일까를 고민하면, 순서도 가치도 역전된다. 기술발전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고 투자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보건의료를 바꾸자는 순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원격의료에 필요한 기계와 시스템을 팔기 위해 의료체계를 고치자는 것과 블록체인 기술을 ‘화폐화’하기 위해 보건의료를 바꾸자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다.

 

현실의 순서는 (필요와 기술 사이에서) 늘 상호작용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목표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기술을 활용할 것인가? 블록체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누구의 어떤 삶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인가?

 

가치와 그 우선순위를 따지는 일은 늘 정치적이다. 비트코인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만, 블록체인 기술조차 과학기술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 가치의 진공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만큼, 민주주의 원리의 실천, 예를 들어 참여와 사회적 통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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