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포용국가 전략’ – 문제는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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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6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발표했다(기사 바로가기). 여기에는 대통령이 참석해 여러 의미를 담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국가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국민들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거쳐 책임져야 한다….성장에 의한 혜택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이 포용적 성장…사회정책에서 시작해 경제 교육 노동 등 전 분야에서 포용이 보편적 가치로 추구돼야할 것“

 

우리는 이런 국가운영의 기본 방향 발표를 크게 환영하고 전체 취지에 공감한다. 한 가지 희망 사항이라면, 위원회나 청와대의 정치 일정에 따른 정치용·홍보용 발표가 아니었기를 바란다(그동안 그런 일이 많아 생긴 노파심이다).

정말 가치가 있으려면, 국정 기조를 가다듬고 명확히 하는 의지가 얼마나 담겼는지가 관건이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혁신성장을 비롯한 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의심이 커지고, 이 정부가 과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는 형편이 아닌가.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

 

 

먼저, 내용과 발표의 진정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뜻을 담았다 하니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한 이야기는 아니리라, 상당한 정치적 의지를 담았으리라 믿는다. 현실 정치의 역학도 고려했겠으나 이런 전략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이와 같은 ‘혁신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도 동의한다. 전략의 여러 내용이 옳은지 어떤지는 더 논의가 필요하겠으나,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도전을 생각하면 완전히 새로운 경제·사회 전략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의 배경 설명도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것이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는 아직 개선되지 않고, 다수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불평등 사회 구조도 그대로…저출산, 노인빈곤율, 자살률과 같은 안 좋은 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현실을 뼈아프게 들여다보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앞으로 닥쳐올 초고령 사회에서는 보다 적은 생산인구가 보다 많은 인구를 부양해야 한다….지금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현재보다 미래가 더 어려워…고스란히 미래사회의 부담으로 돌아갈 것”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는 여러 지수나 저출산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국가나 정부는 전체 지수나 평균, 국가 비교 같은 것에 신경이 쓰이겠으나, 사실 그 지표와 숫자의 뒤에 있는 구체적 현실이 더 중요하다. 자살률, 저출산, 빈곤율은 나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이들 지표는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나타내는 종합, 압축, 대표, 상징이라 할 것이다. 복잡한 실재가 아니라 압축적 현상임을 다시 강조한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어떤 정치인이 1억 원씩 출산수당을 주자고 했고, 또 누구는 요즘 세대가 저 혼자 잘 살자고 출산을 피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출산에 대한 판단이 삶 전체에 대한 것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대체로 동의한다. 이는 우리가 그동안 주장하고 요구했던 경제·사회정책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만 그랬던 특별한 방향도 아니니, 이 정권이 선거 이전에 약속했던 범위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강화해 출산과 양육, 교육, 건강, 주거, 노후에 대해 걱정 덜어드려야 한다….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 보장돼야…불평등이 신분처럼 대물림되어서는 안 되며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가 돼야 한다.”

“국민 단 한 명도 차별받지 않고 함께 잘 살아야 한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어야하며 성평등을 실현하고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가 보장돼야 한다.”

불평등 완화가 시대적 과제라는 점, 그리고 공정과 평등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때로는 불평등조차 사치다. 대통령이 사회안전망으로 열거한 출산, 양육, 교육, 건강, 주거, 노후, 성 평등은 평등 이전에 최저선과 기본조차 위협받으니, 차라리 정의와 인권의 요구가 절박하다.

다만 동의하고 환영하는 것은 여기까지만, 대통령의 그다음 진단이 흔쾌하지 않다. 포용국가 전략의 배경과 기본방향이 익숙한 만큼이나, (1) 한국적 상황과 맥락 그리고 (2) 현실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요구는 늘 그랬던 그대로다. 현실이 미래에 개입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책 환경이 결코 쉽지 않다. 우리 앞에 놓인 여건과 상황들은 과거 북구와 서구 선진국이 복지국가를 만들던 당시의 인구, 산업, 고용구조, 높은 사회의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다르다.”

“우리의 현실에 맞는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재원 대책을 포함하여 중장기적으로 계획을 확실하게 세워야 국민들에게 신뢰 줄 수 있고 포용국가로 가는 길도 보여줄 수 있다.”

 

포용국가 전략에도 ‘악마’는 바로 이 현실성 조건에 있다. 현실 정치와 경제를 고려해야 하며 재원을 비롯해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 지금까지 이는 ‘탁상공론’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정부와 정책에서 탁상공론의 운명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재정이 가장 중요한 현실이다. 짐작하건대 예산 담당 부처와 공무원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일자리 만들기에, 최저임금 인상에, 혁신성장에, 사회적 SOC에,…모두 돈 더 들어갈 일밖에 없는데, 포용국가 전략이든 저출산 대책이든, 현실적으로 국가 재정을 더 투입할 여력이 없다.”

우리는 문제의 그 ‘현실성’을 해체하고 재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말한 현실에 맞는 목표와 재원 대책은 무엇일까?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계획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고 할 때는 위원회가 이 계획을 세우라는 뜻인가, 이제부터 정부를 움직여 그렇게 하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청와대가 그런 방향으로 행정부를 통제하겠다는 뜻일까.

모든 현실에는 ‘이성’이 있으니 쉽게 조정할 수 있는 현실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예산만 하더라도 그냥 없애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모든 정책과 예산은 지금 이 순간 가장 현실적이다. 이 현실은 사회경제체제와 그에 바탕을 둔 이념, 가치, 법률, 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정책은 이런 현실성에 기초한다. 현실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또한 그 주도하는 예산 부처, 기획재정부는 비현실적이기 마련인 이런 전략에는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국가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일부러 하지 않는 일은 없다고 생각할 것, 이 틀을 벗어나는 전략은 (그들에게) 모두 비현실적이다.

현실론자들이 이해하는 ‘위원회’의 계획과 전략은 계속 이런 정도였고,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이 비현실적 전략이 다시 공중에 붕 뜨는 것이다. 보고와 보고서로만 남는 기획, 어떤 실행도 담보하지 못하는 로드맵, 정치와 정책은 사라지고 공허한 목표만 존재하는 전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실로 실행이 관건이며 그중에서도 누가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만든 이 전략을 누가 책임지고 실행할 것인가? 다시 물을 것도 없이 대통령과 행정부다. 아울러 전략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파괴하는, 즉 ‘자기 파괴적’인 것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자기 파괴란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바꾸어내는 일이다. 자신을 유지하려는 완고한 현실을 넘어야 하면, 전략이 기존 질서에 부합하도록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전략이 작동할 수 있도록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

기존 예산과 정책 구조에 전략을 끼워 맞추지 말라. 불평등을 줄이는 획기적 정책을 고안하고 전에 없이 큰 예산을 쓸 수 있도록,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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