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국정감사 철을 지나 예산 심의로 전환했다. 모르긴 해도 무대 뒤에선 벌써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려는 정부 부처, 지방정부, 국회의원, 이해당사자의 힘겨루기가 한창일 것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보통 사람들 눈에는 누가 무슨 힘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보이지 않으니, 경쟁과 갈등도 ‘그들’끼리다. 이를 투명성이라 일컫는 사람도 있지만, 전적으로 민주주의를 둘러싼 문제다.
대의 민주주의는 다원주의와 다양한 가치를 내세우지만, 권력의 균형과 그에 따른 결정은 몹시 일방적이고 치우쳐 있다. 예산에 적용되는 원리와 현실도 다를 바 없다. ‘1인 1표’는 말로만 존재할 뿐, 소수가 다수를 압도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적 현실이 아닌가.
여야를 물을 것 없이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도 명분이 그럴싸하다. 예를 들어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예산안 처리 방침을 보면 정부가 낸 예산을 깎기도 하지만 오히려 늘리겠다는 지출도 많다(기사 바로가기).
한국당은…▲ 저출산 해소 ▲ 교육 ▲ 국가기간산업 부활 ▲ 지역균형 발전 ▲ 국가유공자 예우 ▲ 공동체 부활 ▲ 어르신 등 취약 계층 등 ‘7대 20개 사업’은 증액 리스트에 올렸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출산 지원 예산으로는 임산부 30만명에게 ‘토탈케어카드’ 200만원 지급, 출산장려금 2천만원 일시 지급, 아동수당 확대, 청소년 내일 수당 신설 등을 제시했다.
나쁘지 않은 항목이 제법 많다. 예를 들어 이제라도 아동수당을 전체 어린이에 다 주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으니 다행이다. 보수를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이 먼저 ‘취약 계층’ 지원을 주장하는 것도 반갑다. 아무쪼록 여든 야든 한두 가지 사업에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예산 쓰기의 전체 방향과 지향으로, 즉 이 시기 국가재정 지출의 ‘틀’로 확정하기를 기대한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정부 예산과 국가재정이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는 점,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부정적 측면이 더 크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 함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크게는 체제의 성격을 반영하는 동시에 작게는 힘을 가진 모든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을 뜻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는 예산이 달라지는 것이 전자의 예라면, 어떤 국회의원이 지역구 도로건설 예산을 따고 무슨 국립대학이 새 건물을 지을 예산을 얻었다는 소문이 후자다. 물론, 이런 종류의 정치를 지금 시작하는 것은 늦었으니, 행정부가 낸 예산안은 지난봄부터 공을 들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크게 고치지 못하고 틀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예산이 전적으로 정치의 산물이면, 두 가지 구조적 한계를 피하기 어렵다. 첫째, 현실 정치의 이익이 없거나 약하면 예산 정치는 작동하지 않는다. 명분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다음 선거에서 표로 돌아오지 않으면 관심을 두는 국회의원이 적다.
지역구를 지나는 도로건설 예산이 ‘제2의 메르스’를 막는 국가방역체계 예산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모든 국회의원이 말로는 ‘국공립 유치원 증설’과 ‘공공의료 강화’에 찬성하겠지만, 예산 국회에서 누가 무슨 동기가 있다고 앞장서 짐을 질 것인가?
국회의원이란 말 속에서는 ‘나라(國)’가 들어있으되 마음과 정성은 온통 지역구에 몰려 있으니, 국가 예산을 지역구 예산으로 보는 의원이 한둘이 아니다. 내 지역구에 내 업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강 건너 불구경에 지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비례대표가 있다 하나, 이들도 나랏일 정치를 하는지 자기 정치를 하는지 잘 알 수 없는 때가 많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자유한국당의 예산 국회 방침도, 아니 그 어떤 정당의 다짐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저들은 틀림없이 표 계산을 하고 있을 텐데, 악마가 있다는 디테일 또는 숨겨 눈에 보이지 않는 이익 실현이 더 중요할 터이다.
예산을 옹호하거나 방어해야 할 관료 또한 정치적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종류만 다를 뿐 이들은 부처나 부서, 개인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기 쉽다. 자기 권력을 확대하고 평판을 높이며 조직과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피하는 것, 이들이 얻으려는 정치적 이익은 대개 이런 범위 안에 있다.
둘째 한계는 단기적 전망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 현실 정치가 드러내는 고질적인 ‘근시성’은 예산을 정하고 집행하는 구조에서 연유하는 점도 있지만, 앞서 말한 정치적 이익의 단기성과도 밀접하다.
예는 부지기수다. 정부는 저출산·고령화 예산을 크게 늘렸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런지 잘 알기 어렵다. 지금까지 예로 보면, 기간이 길거나 종합적이거나 구조적인 정책이면, 으레 눈앞의 현실에 대응하는 여러 단기 예산을 모아 이름만 붙인 것이 태반이었다. 고령화 대응 예산이 그렇고 일자리 예산도 마찬가지다. 10년 이상 저출산 예산에 엄청난 돈을 썼다는 것은 사실일까?
예산 규모는 국방 예산(43조20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 그런데도 정작 저출산에 직접 들어가는 돈은 많지 않다….올해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450억원), 청년 해외취업 촉진(424억원) 등 저출산과 무관한 돈이 모두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돼 있다(기사 바로가기).
10월 초 정부가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도 장기예산을 다루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2025년까지 어떻게 한다는 말이 여러 군데 나오지만, 그때까지 예산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모호하고 불확실하다(보도자료 바로가기). 도대체 재정을 장담할 수 없는 장기계획이란.
예산 체제가 이런 답답하기 짝이 없는 구조적 결함을 안고 있는 한, 예산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로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확대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갔던 힘센 곳이 다음에도 더 많은 예산을 쓰는 구조. 힘이 없으니 문제 제기가 어렵고, 예산이 없으니 다시 크게 문제를 드러내기도 힘든 영역. 드러나지 않으면 또 관심도 받지 못하는 악순환. 부익부 빈익빈. 이른바 ‘마태 효과’.
올해 예산을 당장 바꾸기는 역부족이지만 그래도 할 일이 있다. 먼저,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예산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 있는지, 국회는 누가 어느 곳에서 무엇을 언제 심의하는지, 그렇게 힘이 세다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위원은 누구인지, 게다가 악명 높은 예결위의 ‘소소위원회’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는지(기사 바로가기), 그 ‘쪽지예산’으로 이익을 보는 지역구 사람은 누구인지, 잘 알아야 하겠다.
감시와 문제 제기, 요구를 내는 것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겠다. 똑바로 보고 시시콜콜 따지려는 것을 의식하면, 국회(의원)와 행정부(관료)가 좀 나아지리라 전제한다. 역량 강화, 시민 참여, 민주주의의 제도화는 그다음이다.
늘 어디서나 불평등 구조가 작동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문제의 포착과 이해부터 불평등은 내장되어 있으니. 누구도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고 대표하지 못하는, 힘없고 약한 이를 위한 예산은 누가 나서서 옹호하고 주장할 것인가. 예산 정치의 불평등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