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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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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 없는 규제’, 비극은 계속된다

[서리풀 연구通] 산업안전보건법 ‘집행’의 정치경제학

 

이주연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일이 아니다. 개정된 법을 강력하게 집행하는 일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존 법도 제대로 지켜지기만 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가령 고 김용균 노동자가 일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인 1조 근무규정이 지켜지지 않았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적발 사항이 1029건에 달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임금체불, 연장근로 한도초과 등 근로기준법 위반도 어지간히 심하거나 엽기적이지 않고는 뉴스거리에 오르지조차 못한다. 그만큼 법 따로, 집행 따로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 건강과 안전 보호를 위한 법 집행의 과정과 걸림돌을 분석하려면 이를 둘러싼 정치경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정치, 경제 이익집단의 치밀한 계산이 작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젊은 노동자가 죽고, 그 부모가 눈물로 호소를 하고, 국민적 공분이 이렇게 높은데도 법안 통과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국가와 기업에게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별로 중요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노동자 사망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된 다단계 하청구조를 개혁하기 보다는 ‘그나마’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해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니 법의 집행 또한 그것을 둘러싼 정치경제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우리는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긴축”이라는 정치경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중보건 규제정책의 좌초를 경험한 영국의 역사는 현재 한국사회에 큰 시사점을 준다. 1997년 집권한 블레어 정부는 규제정책 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 2005년 무렵 “더 나은 규제 Better Regulation”라는 이름의 규제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이후 영국 규제정책의 원칙이 되었다. 이는 본질적으로 규제와 집행을 국가자원의 낭비이자 민간기업과 경제 성장을 억압하는 요인으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실상 ‘더 나은’ 규제이기 보다는 “기업친화적인 규제와 법의 집행을 제도화하고 기업의 순응 비용을 줄이며 기업이 생산하는 위해를 효과적으로 비-범죄화함으로써 위해의 비용을 결국 사회화시킨 것에 다름 아니었다.” (Tombs, 2016, p.16).

 

오늘 소개할 영국의 연구 논문은 2003/04년과 2012/13년 동안 식품위생안전, 산업안전보건, 오염규제로 대표되는 보호적 규제정책의 핵심 영역에 일어난 집행의 변화를 추적했다 (바로가기: Making better regulation, making regulation better?). 이 10년은 ‘더 나은 규제’를 필두로 영국 정부의 규제 패러다임이 전환된 시기이면서,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긴축정책을 도입하게 만든 2007/08년의 세계금융위기를 포함하고 있다.

 

분석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세 영역 모두에서 조사감독과 기소, 유죄 선고율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업안전보건 영역을 보자면, 중앙정부가 집행한 총 근로감독 건수는 53% 감소했고 기소 건수와 유죄 선고율도 각각 40%와 32% 감소했다. 마찬가지로 지방정부가 집행한 산업재해 예방점검 건수는 90% 감소했고, 총 근로감독 건수는 56% 감소했으며, 기소 건수와 유죄 선고율도 각각 40%, 4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이 10년 동안 규제 집행이 상대적으로 감소했을 뿐 아니라 절대적 수치도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012/2013년 산업안전보건 규제 대상 250만 개 기업 중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조사 방문 건수는 13만 회에 그쳤다.

 

그렇다면 규제 감독관들은 자신의 업무 지침인 ‘더 나은 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또 현장에서 규제는 어떻게 집행되고 있을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긴축정책은 규제 집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머지사이드 주(州) 5개 지역 중 4개 지역에서 규제 업무를 집행하는 25명의 환경보건감독관을 대상으로 심층 면담을 실시했다. 머지사이드 주는 수도인 리버풀(Liverpool)이 잉글랜드에서 지역박탈수준이 가장 높을 정도로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아 주정부의 복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주민 비율이 높은 곳이다.

 

면담 결과, 우선 규제 원칙으로 도입된 ‘더 나은 규제’가 “집행을 방해한다”는 비판적인 인식이 뚜렷했다. “시민들의 건강을 보호하려는 지방정부의 노력을 어렵게 만든다”거나 “기업에 불리한 집행은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행에 대해서는 감독관들 또한 ‘더 나은 규제’가 전파하려는 담론과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다시 말해, 감독관들에게 집행이란 “(기업의) 장기적 순응에 대한 기대를 갖고 권고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고, ”감독관의 핵심 역할은 기업과 소통하는 것“이며 ”집행은 (기업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 천천히 장기적으로 교육하고 또 교육하고 또 교육하는“ 것이었다. ‘집행 없는 규제’ 이데올로기는 현장 깊숙이 퍼져있었다.

 

감독관 수가 줄어들고 경기 악화로 소규모 영세 자영업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환경에서 감독관들은 이전처럼 관할 지역 기업들을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규제를 지키지 않는 기업이 많아졌을 뿐 아니라 기업 등록을 강제하는 법적 요건이 사라지면서 감독관들은 기업과의 접촉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소수의 비순응 기업’을 대상으로, ‘권고와 교육’을 우선시하는 ‘더 나은 규제’의 기본 원칙조차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규제 집행의 이러한 후퇴가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시작된 긴축정책의 영향이라고 설명한다. 잉글랜드에서는 2009/2010년부터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예산이 삭감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가난한 지방정부일수록 그 타격이 크고, 규제 서비스처럼 용도가 지정되지 않은 예산의 경우 특히 취약해진다. 실제로 머지사이드 주 4개 지역 모두에서 규제를 집행하는 환경보건감독관의 수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층 면담에서도 조사관들은 조사관 수 감소의 영향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험에 빠뜨릴 수준까지 왔다,” “지역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준까지 왔다,” “공중보건의 위기다.” 뿐만 아니라, 심층 면담에서 감독관들은 지방정부 내의 법률서비스 부서가 기소 집행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고, 기소에 대한 정치적 위험이 커졌다고 밝혔다. 감독관들은 규제가 정치적으로 환영받지 못하고 집행도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감독관 규모가 줄어들면서, 남은 감독관들은 안전보건 전문가보다는 다방면에 걸쳐 두루두루 지식을 갖춘 일반 행정가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구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료 온라인 강좌를 제외하면 수련의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집행 없는 규제’는 ‘경제성장과 일자리’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담론이 우세할 때 나타난다. 영국에서 긴축의 정치경제는 규제의 집행을 후퇴시켰다. 규제 집행 업무의 근거가 되는 법과 강령은 감독관이 “기업이 순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Better Regulation Delivery Office, 2014, p.3). 저자는 이것이 기업에 ”대한규제가 아니라 기업을 ”위한규제라고 비판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집행 없는 규제’라는 비판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그나마 힘을 발휘하려면, 현장의 노동자들과 근로감독관의 목소리를 통해 산업안전보건법이 지금까지 왜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는지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과 유가족의 눈물어린 호소로 일구어낸 28년 만의 법 개정마저 무용지물이 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서지정보

Tombs, S. (2016). Making better regulation, making regulation better?. Policy Studies, 37(4), 332-349.

Better Regulation Delivery Office. 2014. Regulators’ Code. Birmingham: Better Regulation Delivery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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