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지역 사회가 참여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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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폐원을 둘러싼 논쟁은 국가적 수준으로 커졌다. 그 일은 그것대로 중요하지만 한 군데 공공병원의 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전체 공공의료 논의의 중요한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미 공식, 비공식으로 많은 참여자가 찬반을 말하고 공론을 만드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당사자인 직원과 노조, 경상남도는 물론이고 중앙 정부와 국회, 언론이 참여했다.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이 한 역할도 중요하다.  
 
아쉬운 것은 지역사회 주민의 존재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역의 시민단체와 노동단체가 목소리를 냈으나 아무래도 지역사회가 논의를 주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론의 구조와 언론을 탓할 수 있지만, 따지면 그것도 결국 현실의 힘을 반영한다. 
 
돌이켜 보면 진주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지역의 중요한 결정은 전국으로 확산되지 않는 한 그냥 묻히기 일쑤였다.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제도’가 의회지만, 이들은 대부분 공고한 기득권 구조 노릇만 했다. 제도와 비제도를 떠나, 주민들이 참여해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결정한 사례는 아주 적다.  
 
현대 국가에서 민주적 참여의 가치를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가 수준에서 민주적으로 정책이 결정되는 것을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주민의 참여 역시 꼭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흔히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부르는 지역사회 참여가 중요한 이유는 다면적이다. 우선, 지역사회는 일상의 수준에서 공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다. 참여와 그에 기초한 결정은 지역사회 구성원의 ‘좋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역사회의 가치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반드시 계층 구조로 볼 필요는 없지만, 지역사회는 국가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토대로 작동한다. 건강과 같이 삶에 밀착한 문제일수록 더욱 그렇다. 지역에서 만든 좋은 모범 사례가 국가 수준으로 확대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는 경험과 훈련의 장이다. 근대적 공론장의 경험이 얕은 한국 사회에서 이 역할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참여와 토론, 숙고와 집단적 의사결정의 경험이 축적되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은 지역사회를 빼고는 찾기 어렵다.    
 
건강과 보건의료의 눈으로 보면 지역사회에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의의를 더 가진다. 하나는 새로운 건강체계가 더 이상 생의학적 관점의 건강과 의료에 머물 수 없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 것과 같이, 건강은 생물학적 요인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건강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자 환경으로서, 그리고 그 요인들을 해결하는 장으로서 지역사회와 주민이 주체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두 번째로, 새로운 건강체계의 전망이 의료기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가진다. 건강과 의료는 현실적으로 국가의 관료적 통제, 의료 전문가의 전문 직업주의, 시장 메커니즘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통제를 받는다. 사람들은 건강을 의료기관을 통해 이해하고, 따라서 의료기관은 사회적 통제를 매개하는 주 경로로 작용한다. 전문가와 시장의 영향력이 더욱 그렇다. 
 
바람직한(또는 우리가 지향하는) 상태는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통제가 나머지 권력을 적절하게 통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특히 의료기관이 매개의 핵심 경로라면, 지역은 민주적, 사회적 통제를 위한 유력한 거점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참여를 규범과 원리로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고 지역에서 성취하는 것은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고 필요한 과제를 충족해야 가능하다. 한국과 외국의 경험 모두 만만치 않은 이론적, 실천적 과제를 제기한다.  
 
여럿 가운데에서도 중요성이 높은 몇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먼저, 민주적 참여는 공적인 의사결정(예를 들어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것이 초점이다. 자원봉사나 종교단체 등 자발적 결사체를 구성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여기에서 말하는 참여는 공적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그렇지 않더라도) ‘제도화’의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제도화는 다시 참여를 촉진하고 참여자를 성장시키는 좋은 순환과정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 과제로 말하고 싶은 것은 참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를 일정한 한계 안에 가두어 놓고 이해하지만, 참여는 소극적, 부분적 간여가 아니라 ‘주체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사실 참여라는 말은 그 자체로 주체화를 방해하는 점이 없지 않다. 자칫 공식적인 의사결정과 실천을 보조 또는 보완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이런 한계 안에서는 좀처럼 스스로 주체가 된다든가 실제적인 결정권을 갖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주체화를 포함하는 것이 참여의 개념이다. 흔히 시민이나 지역사회가 스스로 결정(또는 통제)하는 것을 참여의 가장 높은 단계로 본다. 아른스타인의 유명한 참여 단계 구분에서도 통제를 가장 높은 수준의 참여로 구분했다. 
 
그러나 현실은 여기에 크게 못 미친다. 실제 결정권을 갖거나 주체가 된다는 생각하기 어렵다. 결정이나 실천의 주체는 따로 있고 거기에 부분적으로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참여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단지 개입의 방법을 정교하게 만든다고 해서 참여의 수준이 높아지는(따라서 단순한 참여를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권력이라 하면, 주체의 입장에서 참여하는 것은 국가-시장-사회의 세 축으로 된 권력 관계를 재편하려는 것이 핵심이다.  
 
세 번째 과제는 지역이 사회 권력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사회 권력이 주체로서 국가와 시장에 개입하는 층위는 중층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 수준은 물론, 지방과 지역, 소규모 공동체, 기관 등 다양한 층위에서 개입이 일어날 수 있다. 전략과 방법 역시 다양하다. 
 
지역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사회 권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가 일차적 과제다. 현재는 균형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 권력이 빈약하다. 부인할 수 없는 지역의 과제이자, 긍정적으로 보면 가능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리적 개념이든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에 가깝든, 지역은 사회 권력이 만들어지는 가장 유력한 현장이다. 앞에서 참여는 공적 과정이고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사회 권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거의 전적으로 정치에 의존한다(물론 현실 정치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보건의료의 대안적 생산체제를 고안하고 실험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새로운 보건의료 생산체제를 구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협동조합적 생산방식에 기초한 종합병원이나 장기요양서비스의 공급은 지역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건강과 보건의료를 규율하는 민주적 공공성이나 사회 연대와 같은 원리가 적용되고 실천되는 곳도 일차적으로는 지역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소유와 의사결정, 실천의 주체가 되고, 이는 작은 집단의 자기 이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공공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사회는 광범위한 불평등과 배제, 경제적 이해관계가 실재하는 현장이다. 민주적 공공성이라는 과제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지역에서의 사회 권력이 또 다른 그들만의 권력이 되는 것은 곤란하다. 
 
진주의료원 폐원과 같은 문제에 지역사회가 본격적으로 참여하기까지는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자연발생적인 진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더 많은 시도와 노동이 있어야 할 듯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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