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의료관광 ‘사업’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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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 들어서도 바뀐 것이 없다. 여당과 행정부의 힘 있는 사람들이 연일 ‘의료산업’에 구애를 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병든 한국 경제에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의료산업의 중심에 의료관광이 있다. ‘의료관광’이란 말로 인터넷 포탈을 검색해 보라. 광고는 물론이고, 수많은 사업과 사업체,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민간 자격증에 언론과 협회까지 있으니,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리는 사업처럼 보인다(노파심에서 말하면, 명백하게 착각이다).

따지고 보면, 이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원하던 대로 되었다. 수익이 나고 경제적 성과가 그만큼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토록 강조하던 의료산업 육성은 현실이 되었고, 의료관광이 그 중심에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관심을 좁히자. 의료관광이 한국 의료의 상업화를 표상하느니, 영리병원과 무슨 관계가 있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의료관광이 정확하게 무얼 뜻하는지 하는 것부터 논의해야 하지만 건너뛴다. 철학이나 정책의 건실성도 다른 기회로 미룬다.

일단 현실을 인정한다. 어차피 의료관광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고 생각해 보자. 그런 전제를 깔고 이 사업의 윤리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휴대전화를 팔든 원자력을 수출하든 비즈니스면 다 같지, 무슨 윤리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다. 아무리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그 세계의 규칙이라 해도 그렇다. 소극적 윤리와 적극적 윤리 모두에서 중요한 지침을 가져야 한다.

소극적인 측면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반적인 비즈니스의 윤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허위와 과장처럼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는 문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과다한 이윤을 추구하거나 품질이 형편없는 경우도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보건의료에서는 한 가지가 더 보태진다. 이른바 정보와 지식의 불균형 문제다. 의료관광이야 처음부터 이윤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고 치자. 그래도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환자와 비전문가를 ‘대리’하는 전문가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은 여전히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최선’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의학적인 측면만 뜻하지 않는다. 어떤 보건의료가 양질이고 최선인지는 의료 전문가든 아니든 이미 익숙할 것이다. 지속성, 포괄성, 비용, 질 등이 모두 포함된다.

잘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이 적극적 윤리이다. 의료관광은 보건의료의 다른 요소와 따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 주로 적극적 윤리의 대상이 된다. 모두 다룰 수는 없으니 몇 가지만 꼽아본다.

우리 쪽에서도 상대 국가에서도 의료관광은 전체 보건의료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전체 보건의료체계(달리 말하면 다른 모든 국민과 시민에게 해당하는)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의료관광만 따로 존재할 수 없다.

우선, 의료관광 사업은 국내 보건의료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문제가 국내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 문제는 가격이나 의료의 질, 인력이나 시설까지 특정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의료관광의 ‘선진국’들은 이미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의료관광 사업의 비중이 커지면 외국인에게는 싸지만 내국인들에게는 비싼 치료가 많아진다. 벌어들인 돈이 공공부문이나 모든 국민에게 돌아가는 일도 드물다.

의사를 비롯한 의료인력 ‘시장’은 직접 영향을 받는다. 이런 나라들일수록 공공병원에 근무하던 의사들이 의료관광 사업을 하는 병원으로 빠져 나가는 일이 흔하다. 이른바 의사의 ‘국내 유출’이 심해진다.

좀 시간이 지난 사례지만, 태국에서 벌어진 한 가지 사건이 의료관광의 국내 효과를 생생하게 증명했다. 2007년 방콕의 공공병원에서 의사 부족 사태가 빚어진 일이 그것이다 (바로가기).

태국 안에서도 의료관광의 중심 병원으로 주가를 올리던 붐룽랏(Bumrungrad) 병원이 사건의 진앙이었다. 이 병원은 높은 급여로 의사들을 불러 모았고 공공병원의 의사들이 그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다른 공공병원에서 의사들을 구하느라 애를 먹은 것은 당연했다.

이런 모든 일을 자연스러운 시장의 논리라고 하면 더 보탤 말이 없다. 사실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병원으로 전직하는 의사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피해는 많은 시민에게 돌아갔다. 이익의 사유화하고 피해(손실)은 사회화하는 전형적 사례다.

이런 문제가 병원 간에만 그리고 인력에서만 생긴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한 병원 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력뿐 아니라 돈이나 시간, 시설 측면에서도 비슷하다.

의료관광에 공을 들이느라 더 많은 인력과 시설, 시간을 이런 환자에게 쏟는다면? 한정된 자원을 나누어 써야 하는 국내 환자 진료는 어떻게 될까. 극단적으로는 형편이 어려운 (국내) 환자가 형편이 더 나은 의료관광 환자를 돕는 일도 생길 수 있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교차보조(cross-subsidy)’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편, ‘사업’의 대상국에 미칠 영향도 윤리적 숙고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과 계층이 의료관광의 수요자, 소비자가 되는지는 새삼 묻지 않는다. 바로 생각할 수 있는 불평등 문제는 상대방 국가의 책임이랄 수도 있다. 의료관광은 어차피 그 사회에서는 충족되지 않는 수요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누가 하든 이미 존재하는 의료 수요를 충족하는 것.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 역시 상대방 국가의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쪽의 의료관광이 상대방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교란하거나 왜곡시킨다면?

대표적인 것이 이들 나라에서 보건의료 투자를 회피하게 되는 일이다. 의료관광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여론 주도층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더 나은 외국 의료기관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 국내 의료체계를 건실하게 만드는 일에 앞장설 까닭이 없다. 의료관광 하나 때문에 그리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역할은 부인하기 어렵다.

선진 의료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의 보건의료 기대와 ‘규범’을 흔드는 일도 흔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을 두고 발달된 의료기술이 확산되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전파되는 기술과 문화, 규범은 필수 의료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의료기관들이 건강검진을 의료관광의 중요한 상품으로 삼고 있다. 이런 서비스에 대해서는 국내에서조차 어떤 의학적 근거가 있고 얼마나 바람직한지 회의하는 전문가가 많다. 그런데 의료관광이 이런 상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지식과 규범, 문화를 ‘수출’하고 있다.

많은 국가가 여전히 ‘적정’ 기술을 요구하는 현실을 생각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의료 문화와 규범을 수출하면 그 효과는 사회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자칫 착실해 발전해 나가야 할 한 나라의 보건의료체계를 교란하는 일을 피해야 한다. 의료관광이 확대되어 기술이나 시스템과 같은 소프트웨어 수출이 되면 고려 사항은 더 많아진다. 한두 가지 특정 서비스보다 전체 체계에 미칠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의료관광과 수출 모두, 흔히 상대 국가에서 부족하고 필요로 하며 그래서 실제 요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것을 충족하는 일은 오히려 바람직하고 윤리적인 일이 아닌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요구가 있고 그것을 충족한다는 것만으로 윤리적 잣대를 삼을 수 없다. 지나친 비교일지는 모르나, 무기나 담배를 필요로 하는 집단이 있다고 해서 수출과 사업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간단한 윤리적 ‘시험 기준’을 제안한다. 우선 한국과 상대방 국가(또는 사회)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거른다. 다음으로, 그 ‘부정적’ 효과는 누구의 관점과 처지를 반영한 것인지 추가로 따져 보아야 한다.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나쁘게 될 가능성은 없는지 묻는 것이 더 구체적인 질문이다.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적 관점에서 의료관광의 ‘영향 평가’가 필요하다. 의료관광 사업의 윤리가 활발하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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