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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건강 통치: 코로나 시기 영국의 ‘노쇠점수’ 에 대한 비판적 담론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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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시정 (시민건강연구소 영펠로우)

 

 

무엇이 ‘숫자’로 표현되는 순간, 그것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숫자 자체는 객관적일 수 있을지언정, 숫자가 가진 힘은 정치적이다. “숫자로 통치한다”는 말처럼 수량화는 어떤 정책을 합법화‧정당화하는 국가 통치 전략의 핵심이다.

 

오늘은 건강과 보건의료 영역에서 숫자가 갖는 통치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국제학술지 <비판공중보건>에 실린 톰노우 팀의 연구를 소개한다(논문 바로가기 ☞ 노쇠함이 퍼져나가다: 영국의 코로나19 국가 임상 가이드라인에 대한 비판적 담론 분석). 이 연구에서는 팬데믹 기간 동안, ‘임상적 노쇠 점수’(Clinical Frailty Score, CFS)에 따라 노인에 대한 의료 배분을 정당화하며 실제 운영되었던 방식에 대해 탐색한다. 학술적 의미에서 노쇠란 여러 원인과 요인들에 의해 근력, 지구력, 생리 기능 등이 감소하여 의존성과 사망위험에 대해 개인의 취약성이 증가하는 의학적 현상이다.

 

연구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의 재정 삭감과 민영화로 인해 영국보건의료서비스(이하 NHS)는 코로나19에 대응할 준비가 미비한 상태였다. 1인당 의사 수나 병상 수 등도 적은 편이었기에 영국 정부는 “NHS를 보호하라(Protect NHS)”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의료 서비스 수요를 줄이는데 집중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이하 NICE)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환자가 최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CFS 사용을 제안했다. CFS란 숙련된 임상의사가 한 개인의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평가하여 대략적으로 정량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NICE는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어떤 65세 이상 노인이 인공호흡 지원을 위한 중환자실에 입원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CFS를 기준삼아 결정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CFS를 둘러싸고 여러 논쟁이 나타났다. CFS 이용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구집단 내에서 노쇠함이라는 것이 불균등하게 분포하는데 CFS 사용은 결과적으로 사회경제적‧민족적 건강불평등을 증가시킨다는 점, 노쇠함이란 ‘연속적’인 성질을 가지는데 ‘범주형 진단’으로 잘못 재현되었다는 점, 노인 의학 전문가의 부재 및 관련 직원 교육 부족으로 인해 노쇠를 확인하는 과정에 결함이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저자들은 푸코주의자들의 생명정치 개념을 분석의 프레임워크로 사용했다. 생명정치란 생명을 인식할 수 있고 통치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전략들을 포함한다. 분석 방법으로 비판적 담론 분석을 활용하여 권력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 안에서 수행되고, 재생산되며, 저항하는 방식에 초점을 두었다. 분석 자료는 2020년 7월 10일자로 검색한 NICE의 가이드라인과 세 명의 보건의료 전문가에 대한 대면 인터뷰 비디오다. 영상에는 임상 환경에서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세 명의 전문가들이 CFS에 대한 그들의 경험과 그들이 생각하는 CFS의 가치, 그리고 CFS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해 답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분석을 통해 저자들은 생명권력의 세 가지 원칙을 발견하였다. 첫째, 노인의 삶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쇠’를 전면화하기. NICE는 의료전문가에게 코로나 감염 상태와 관계없이 응급실에 방문하는 모든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CFS를 측정하도록 추천한다. 이를 통해 노인의 사회적‧정서적‧기능적 복잡성이 단 몇 분 이내로 임상 점수로 변환되는데, 이 작업은 코로나라는 전례없는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임상업무라는 담론을 통해 정당화된다.

 

둘째, 예측도구로서 노쇠함의 (잘못된) 구성. NICE의 지침은 위험과 예측 담론을 통해 개인들을 집단화하고 조직화하여 각기 다르게 개입하도록 한다. CFS는 2020년 초,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던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사망률을 예측하는 기술로 사용되었다. 한 의료전문가는 CFS가 6점이라면 10일 이내로 병원에서 사망할 확률이 6~7%이며, 7점이라면 그 확률은 11~12%로 늘어난다고 답했다. 이는 현장에서 동일한 CFS를 가진 개인들 내부에서의 다양성을 간과하고, 위험과 예측 개념을 담론적으로 융합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즉, 개인의 사망 위험은 질병의 유형‧심각도‧처치 유형 등에 따라 달라지지만 CFS는 전체 수준에서의 위험을 개인 수준의 위험으로 오인하게 만들며, 노쇠라는 개념의 지배력을 확산시킨다.

 

셋째, 개입전략의 근간으로서 노쇠함. NICE 지침의 핵심은 인구를 연령과 CFS를 기준으로 특정 집단들로 분류한 후, 집단별로 특정 치료 방식(장소와 유형)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이다. 이 알고리즘은 65세 미만인 경우 개인화된 평가를, 65세 이상인 경우 노쇠점수 평가를 받게 하는데 이는 나이든 몸에 대한 계층화를 의미한다. 65세 이상 노인 중 CFS가 5점 이하인 경우에는 중환자실 외부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며, 5점 이상인 경우는 임종 치료가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쇠담론은 노인을 노쇠한 혹은 노쇠하지 않은 이라는 이분법적 존재로 간주하며 노쇠함을 쓸모없음과 연결시킨다.

 

CFS를 기반으로 하는 위험의 계층화는 수요에 비해 의료 자원이 부족한 팬데믹 상황에서 제한된 자원의 정당한 배분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저자들은 CFS의 도입으로 인해 위험과 책임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노인과 임상 전문가들로 이전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노쇠함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불평등하게 분포하는데, CFS 기반 치료는 현재의 치우침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다른 연구자들의 우려를 공유한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시 영국과 마찬가지로 ‘의료 붕괴’ 위기론이 등장했고, 병상 부족으로 인해 아파도 입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제 팬데믹과 감염병 위기대응체계에 대한 각종 연구와 평가가 이어질 텐데 여기에는 의료 자원의 확대와 함께 ‘효율적’ 사용에 대한 방안도 포함될 것이다. 만약 지표와 점수를 통해 ‘누구를, 어디서,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의료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국가는 한정된 자원을 합리적으로 사용한다는 ‘통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이 지적했듯이, 그 숫자 이면에서 집단내의 차이와 불평등한 분포를 개선하지 못하고, 집단의 자연화된 취약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서지사항

-Tomkow, L., Pascall-Jones, P., & Carter, D. (2022). Frailty goes viral: a critical discourse analysis of COVID-19 national clinical guidelines in the United Kingdom. Critical Public Health, 1-8.

-이기홍. (2017). 숫자로 통치한다. 사회과학연구, 56(2), 421-449.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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