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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아닌, 사람들의 삶과 고통을 돌보는 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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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재유행 속에서 정부는 지난 13일 ‘과학방역(혹은 과학적 코로나 위기관리)’을 내세우며 <코로나19 재유행 대비 방역·의료 대응방안>을 발표했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코로나19 대응방안 발표 직후 언론은 이것이 정말로 객관적 자료와 근거에 기반한 정책 결정이 맞느냐며 반문했고, 도대체 과학방역이 무엇인지 물었다.

 

언론을 통하여 유력한 복지부 장관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는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은 여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과학은 그야말로 아주 광범위한 범위입니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도 과학입니다…(중략)…그렇지만 지금은 앞으로는 우리가 전체적인 코로나 위기를 관리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적인 코로나 위기관리’라고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 바로가기)

 

과학방역의 범위에 사회과학을 포함한다는데 동의한다. 사회과학이야 말로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하고 또 돌보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방역이 전체적인 코로나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라는데 역시 동의한다. 코로나 위기는 공중보건은 물론,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규범 등 여러 층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더군다나 각 층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해서 우리 삶과 건강의 고통으로 결과하기 때문이다.

 

과학방역의 정의가 이렇다면, 코로나19 대응은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코로나19로 인한 삶의 여러 ‘고통’을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정부의 대응은 과연 그러한가?

 

 

코로나 19와 관련된 현 정부의 정책은 위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매일이 아니라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해 불어난 ‘적자’ 즉, 재정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방역의 사회과학은 경제로 축소되고, 전체적인 코로나 위기는 국가 재정위기로 수렴한다.

 

따라서 코로나19 (재)유행 대응체계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긴축’을 그 핵심에 둔다. 정부의 재정 긴축은 우리 삶에 직결된다. 정부는 필요한 곳에 재원을 쓰고 재유행을 대비한 재정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 사회지출을 줄이겠다 했다. 정부는 당장에 재택치료 본인부담금 지원을 중단하고 생활지원비 및 유급휴가비 지원 대상을 축소했다(관련 보도자료 바로가기).

 

지난 2년의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준 교훈은 현 정부가 축소하겠다고 한, 바로 그 영역들에 재원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이 ‘성공적’ 방역을 자처할 수 있게 된 근원에는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선제적인 노력들이 있었다. 외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엄격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정 기간 확진자 수 증가 추세를 낮추는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실상 그 과정은 시민들의 참여와 인내, 희생의 연속이었다. 이때 발생한 경제적 고통은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되었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었다.

 

많은 국가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사회구성원들의 고통을 덜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하여 재정적자를 감수해왔다. 한국은 2020년 OECD 주요 국가 중 GDP 규모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분류되었다. 미국 14.9%, 영국 12.3%, 스페인 11.0%. 한국은 2.3%에 불과하였다. 이에 반해 2020년 순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중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가장 높은 국가로 분류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의 맥락에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재정지출은 가장 적었고, 그래서 그 고통을 스스로 감내한 사회 구성원들은 가장 많았던 국가이다.

 

하지만, 많이 부족했을지언정 정부가 공적 지출을 통해서 지원하였던 재난지원금, 유급휴가비, 고용안정지원금, 의료비 등은 사람들의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점에서 질문한다. 긴축이 정말 코로나19 재유행의 처방전인가? 현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긴축의 과학적 결론은 그것이 위기의 처방전이기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의 고통을 가중하면서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제공한 과학적 근거다(관련 자료 바로가기).

 

긴축은 또한 이미 심화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 긴축은 보건의료, 돌봄, 교육, 소득보장 등 재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 지출 감소로 이어지고, 그 영향은 여성, 이주민, 저소득, 저숙련, 청년, 노인 등 힘의 크기가 작은이들에게서 더욱 크다. 긴축 이전에도 이들의 고통은 이미 충분하였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서 고통을 더 심화시켜서야 되겠는가! 지속가능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애초에 적자는 지출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생산과 고용 불황(recession)으로 인한 세수 감소가 함께 작동한 결과다. 그런데도 이미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낙수효과를 내세워서 감세를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긴축을 통해 지출을 효율화하겠다는 이 신자유주의적 사고 구조는 그야말로 비과학적이면서 정치적이다.

 

시민사회를 배제한 긴축의 결정 과정은 또한 민주주의와도 멀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긴축을 중심으로 또 다시 중첩하고 강화하는 공중보건, 경제, 정치의 위기는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위기로 이어진다. 이 위기에서 사람들은 또 다시 각자도생이다.

 

긴축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그 중심에 두고 이들의 고통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솟아날 구멍은 공공성 강화다.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다면 최근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독일 정부가 시민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통합적 부담 완화 정책(Entlastungspaket)을 참고해보자(참고자료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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