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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민영화, 영국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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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기(시민건강연구소 회원)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남도지사 시절 적자 누적을 이유로 진주의료원을 폐원한 지 10년이 지났다. 메르스와 코로나19 유행을 지나며 얻은 상흔과 교훈이 적지 않건만, 홍시장은 “대한민국 의료는 모두 공공의료”라며 여전히 제2대구의료원 건립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관련기사: 보건노조 진주의료원 폐업 홍준표, 대구시민 상대로도 거짓선동). 새 정부의 정책 방향도 다르지 않다. 민간 영리사업자가 의료시장에 진출하는 길을 터주는 일이 최우선. 시민의 건강과 삶에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는 민간병원 지원을 확대하여 해결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시민과 환자의 삶을 낫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공영의료체계(NHS)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서비스를 민간에 위탁하고 시장 경쟁 원리를 도입하는 ‘개혁’을 진행한 영국의 사례는 문제의 실마리를 찾게 해준다. 영국은 지난 수십 년간 보수당과 노동당 정부 모두에서 NHS의 민영화를 진척시켜왔다. 1980~1990년대에는 보수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병원 청소, 급식, 시설 관리 등 부가서비스의 경쟁 입찰과 외부 계약을 추진했다. 2000년대 노동당 정부는 민간 사업자가 일차의료센터를 설립하도록 허용했고, 2012년에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가 보건복지법을 제정하였다. 이 시기부터 임상위임위원회(Clinical Commissioning Group, CCG)가 각 지역의 보건의료서비스 조달을 책임지는 보건당국 역할을 맡았다. 보건복지법은 위원회가 서비스를 발주할 때 NHS 기관에 우선권을 주지 못하게 하고 시장을 민간 영리 업체에 개방하도록 강제했다. 개혁의 바탕에는 시장 경쟁이 성과와 효율을 개선하리라는 기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보건복지법 제정 이후 민간 영리 업체의 서비스 제공 비중이 실제로 커졌는지, 민간 위탁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의견이 분분할 뿐 아니라 평가하기도 쉽지 않다. 영국 전역 200개 이상의 임상위임위원회는 지출 자료를 개별적으로 발간하므로 통합자료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옥스퍼드 대학 연구진은 NHS 서비스 외주화가 환자 에게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연구를 수행했다(논문 바로가기 ☞ 보건의료서비스의 민간 위탁과 치료가능 사망률, 2013-20: NHS 민영화에 대한 관찰 연구). 연구진은 치료가능한 사망, 곧 ‘제때의 효과적인 보건의료 개입을 통해 피할 수 있는 죽음’이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연구 자료는 2013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임상위임위원회의 지출 자료를 각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스크랩해 이어 붙였다. 기업 명부를 확보해 용역 업체를 민간 영리 기업, 비영리 자선 단체, NHS 기관으로 분류하고, 위원회의 총 위탁 비용 중 영리 기업에 지출한 비율을 관심 변수로 삼았다. 분석에 자선 단체를 포함하지 않은 것은 공공 혹은 민간의 소유권보다 영리 행태에 연구의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 지역별 치료가능 사망 자료와 위원회 관할 인구의 특성 차이를 보정하는 변수 자료를 병합해 통합자료를 구축하였다. 최종 분석에는 자료 접근이 가능한 173개 위원회가 포함되었다.

 

분석 결과 NHS 서비스를 영리 사업체에 위탁한 비용은 2013년 전체의 4% 미만에서 2020년 6% 이상으로 유의하게 높아졌다. 사업 지원, IT 지원 분야가 가장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고, 두 분야를 포함해 보건의료 서비스, 사회사업, 운송 분야의 영리 위탁이 꾸준히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는 NHS 민영화를 부정하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영리 업체로 유입하는 NHS 재정이 실제로 많아졌음을 보여준다. 이어서 영리 업체 위탁 비용과 치료가능 사망률의 관계를 분석했을 때, 위탁 비용이 1% 증가할 때마다 다음 해의 치료가능 사망률은 0.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2019년 사이 영리 사업체로 서비스를 외주화했던 173개 위원회 구역에서만 557명이 추가로 사망한 셈이다. 연구 자료를 자체적으로 모았으므로 자료의 오차를 가정하여 분석하거나 분석 모형과 방법을 달리해도 이러한 결과는 견고했다.

 

연구진은 NHS 서비스를 영리업체에 위탁함으로써 나타난 사망률 증가가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두 가지 방법을 취했다. 하나는 어떤 유형의 서비스를 외주화했을 때 사망률 증가로 이어지는지 지출을 분리해서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보건의료 서비스 분야의 위탁만이 치료가능 사망률 증가와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으므로 서비스 질 저하가 사망 증가의 메커니즘이라는 가설이 힘을 얻는다. 다른 방법은 치료가능 사망 대신 예방가능 사망과 영리 업체 위탁 비용의 관계를 분석한 것이다. 치료가능 사망이 보건의료 서비스와 직접 관련된다면, 예방가능 사망은 더 넓은 범위의 건강 결정요인과 관계된다고 보았다. 분석 결과 영리 사업체에 대한 외주화가 늘어도 예방가능 사망은 증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 역시 외주화가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를 통해 악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을 지지한다.

 

2012년 NHS 개혁 이후로 영국 사람들의 건강 지표는 악화해왔다. 그동안 정부의 긴축정책이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는데, 공공서비스 저투자와 복지예산 감축으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나빠졌다는 것이 주된 설명이었다. 이 연구는 여기에 더해 민간 영리 업체에 NHS 서비스를 외주하는 것 또한 보건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를 설명하는 두 가지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첫째, 영리 업체가 처음부터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했을 수 있다. 비용을 아끼려는 유인이 강하므로 적정 인력을 배치하지 않거나 지침을 준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질 저하는 전체 보건의료체계의 부담 증가에서 비롯한 간접 결과일 수 있다. 예컨대 영리 업체가 수익성 있는 환자와 서비스만 골라서 받고, 공공기관은 복잡한 치료를 도맡으면 전체적인 효율성이 떨어진다. 경쟁이 심해져 서비스 제공자가 환자 대기시간처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만을 우선시해 질의 다른 측면을 희생하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이 연구는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했는지 실증하지는 못했지만, NHS 민영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밝힘으로써 보건의료체계에서 민간 업체가 어떤 역할을 얼마나 맡아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영국의 사례를 이미 전체 의료기관의 95%가 민간인 한국 상황에 곧장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제도와 가치, 관행을 바깥의 시선에서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민간 업체의 서비스는 질이 좋고 공공기관 서비스는 질이 나쁘다는 통념이 사실일까? 민간을 중심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상품처럼 거래하는 제도와 관행이 ‘최고 수준의 보건의료’를 이룩한 바탕이 되었을까? 시장적 환경에서는 영리 주체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혁신을 도입하고 효율성을 개선해 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는 것이 일종의 오래된 믿음으로 남아있지만, 소개한 연구는 현실이 그리 단순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윤을 얻기 위해 소비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민간 업체가 눈에 띄거나 측정할 수 있는 영역에 투자할 유인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민과 환자의 삶을 기준으로 두면 이들의 노력이 정말 ‘질 좋은’ 서비스로 이어지는지 불명확할뿐더러, 전체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전반적인 효율성은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임명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와 시민 모두 보건의료체계의 틀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은 과제는 세부 정책들의 ‘미세 조정’일 뿐, 더는 보건의료를 사회적 의제라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근거를 계기로, 고통과 불편의 경험을 그러모아 처음부터 질문해보자. 지금의 방향이 최선일까? 우리의 건강을 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체제를 상상해볼 수는 없을까?

 

*서지 정보

Goodair, B., & Reeves, A. (2022). Outsourcing health-care services to the private sector and treatable mortality rates in England, 2013-20: an observational study of NHS privatisation. The Lancet. Public health, 7(7), e638–e646. https://doi.org/10.1016/S2468-2667(22)00133-5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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