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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산업의 몰락과 여성 실업의 증가 그리고 “HIV 핫스팟”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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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리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시는 커피의 생산과 이를 둘러싼 시장경제의 흥망성쇠가 질병의 확산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한국인이 가장 즐겨 찾는 기호식품인 커피에 대한 광고를 떠올리면 아프리카계 여성이 원두를 볶는 장면이나, 커피콩을 수확하는 장면이 생각나곤 한다. 특히 에티오피아와 우간다는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커피 생산국들이다.

 

오늘 소개할 연구는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 일대의 커피산업의 역사를 통해 보건학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전염병 “핫스팟” 개념을 단순히 지리적인 경계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핫스팟이 만들어지게 된 정치경제적 맥락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하는 논문이다(논문 바로가기 ☞ 커피 산업이 붕괴되었을 때 : 우간다 HIV의 경제사).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 지역에는 전세계 HIV 감염인구의 54%가 몰려 있다. 그 중 우간다의 남중앙 지역에 위치한 마사카(Masaka)와 라카이(Rakai) 구역의 빅토리아 호수 지역은 1980년대 아프리카의 첫 HIV 사례가 발견된 장소이자, 현재까지도 호수 근처 마을 인구의 50% 정도가 HIV에 감염된 “HIV 핫스팟”으로 전 세계 공중보건학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무어가 이끄는 콜롬비아대학 연구팀은 이곳에 거주하는 젊은 성인들을 포함하여 이 지역의 시장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의료종사자들을 심층면담하고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커피산업의 흥망성쇠와 이후 빅토리아 호수 인근 지역의 변천에 대한 다양한 사료들을 검토하였다. 연구팀은 그 동안의 많은 HIV/AIDS 전파에 관한 연구가 주로 노동이주를 하는 남동지역 아프리카계 남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여성 노동자에 주목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커피산업 발달 이전의 식민지 시기부터 우간다에는 상당히 많은 여성들이 임금노동에 참여해왔다. 주로 농장의 식품가공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 이로 인해 결혼을 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았던 여성들을 지칭하는 자유여성이라는 용어(“banakyeombekedde”)가 있을 정도였다. 이들은 남성들처럼 땅을 사고 팔 수 있는 권한도 있었고, 어느 정도 남성들과 비슷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반면, 자유여성과는 구별되는 미혼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bakirerese”)도 있는데, 이 단어는 남성과 자유연애를 하면서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미혼 여성을 지칭한다. 이 여성 집단은 매춘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표상되었다. 어떤 쪽이든 우간다에서는 결혼만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길은 아니어서, 많은 여성들이 도시화와 젠더화된 노동 패턴이 등장하기 전까지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1970~80년대에 커피가 환금작물로 부상하면서 우간다 국가 경제 발전의 중요한 산업 중 하나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대규모 커피농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이때 농촌 여성들이 대거 고용되었다. 원래 커피는 2차 세계대전까지 식민지 국가들의 플랜테이션 생산 품목 중 하나였지만, 1969년 우간다 정부는 커피 마케팅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가 커피생산협동조합을 독점하며 1990년대까지 커피의 구매와 생산, 가공, 판매 전부를 국영사업으로 운영하였다. 국영사업에는 6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용되었는데, 1980년대 남중앙 우간다에 위치한 커피가공 공장 노동자의 3분의 1이 여성 노동자였다. 협동조합이 여성을 고용한 이유는 저렴한 임금 때문이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그 정도의 임금으로도 생계를 꾸려 나갔다. 노동조합은 공장 근처에 타운을 조성하여 일하는 여성들이 사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며, 기숙사도 제공하였다.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여성 노동자들은 타운의 펍에서 남성 노동자들과 동등하게 교류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시기”는 1990년대 우간다 커피산업의 몰락으로 완전히 변하게 된다. 전 세계적 오일쇼크에 따른 국가 부채 해결을 위하여 1981년 우간다 정부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미국 국제개발처와의 협상을 통해 커피 생산의 국가 독점권을 포기하고 커피시장을 민영화하였다. 이후, 1991년의 워싱턴 합의(Washington Consensus)는 부채가 심한 국가들에게 국가 예산지출을 최소화하고 수출 품목의 가격을 낮추는 조건으로 유상원조를 제공하게 된다.

 

우간다 커피산업의 민영화는 다국적 기업의 폭발적인 진출로 이어졌다. 이와 맞물려서 커피 시들음병이 중앙 우간다를 덮쳤을 때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마사카와 라카이 지역의 커피에 대한 수요가 늘었고, 비슷한 시기 브라질의 심각한 서리 피해로 인해 커피 가격이 또 한번 상승하였다. 그러자 우간다의 커피 제조사들은 공급을 맞추기 위해 생산 속도를 늘렸는데, 그 과정에서 커피콩을 충분히 건조시키지 않아 커피콩의 수분 함량이 증가하면서 커피의 질이 낮아졌다. 보통 국제적 기준의 커피콩의 수분 함량은 13%인데 반하여, 당시 우간다 커피의 수분 함량은 17%에 이르렀다. 게다가 판매할 때 커피와 작은 돌을 섞어서 가공하는 공법(BHP, 부산물)으로 커피의 무게를 늘려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

 

커피 시장의 민영화로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우간다 커피는 높은 수분 함량과 낮은 BHP등급으로 몇 년 만에 세계적인 명성을 잃고 가장 큰 커피 수입국인 유럽 국가들과 미국 시장에서 외면 받게 된다. 늘어나는 국가부채와 커피시장의 붕괴로 인해 많은 여성들을 고용했던 협동조합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여성노동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하였다.

 

커피산업의 몰락이 발생시킨 대규모 실업자들은 1990년대 후반 커피산업을 대체하며 발전한 수출 산업인 어업에 뛰어들기 위해 빅토리아 호수 주변으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업은 커피농장과는 다르게 남성에게만 열려 있는 직종이었고, 여성들을 생계를 위해서 어부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혼자 살면서 맥주나 장작, 조개 등을 판매하며 살아가는 자유여성들도 일부 있었으나, 빅토리아 지역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생선의 확보는 주로 (대부분 남성인) 어부와의 친밀한 관계의 교환이라는 형태로만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관계 맺음은 빅토리아 호수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성노동자라는 낙인을 찍고 이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생산하였다. 이로 인해 어부들도 지역 여성들과의 공식적인 혼인을 꺼렸고, “조건부” 결혼이라는 일시적이고 다중적인 관계를 맺었다. 예전에 국영 커피농장에서 남성들과 똑같이 고용되어 독립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들은 이제 성산업의 형태로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아울러 HIV의 감염에도 취약해졌다.

 

이상에서 보듯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지역이 “HIV 핫스팟”이 된 것은 단순히 지역의 인구밀집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다. 심각한 국가 부채와 커피산업의 몰락, 그로 인한 여성 노동자들의 실업, 그리고 여성에게 더 이상의 고용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젠더 불평등의 정치경제구조가 이곳 여성들의 삶 전체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연구는 감염성 질환의 전파 원인을 전적으로 개인 책임으로만 따질 수 없으며, 이들의 삶을 둘러싼 사회의 복잡한 정치경제적 맥락의 작동과 때로는 그런 구조적 폭력의 결과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서지정보

 

Moore, E. V., Nambi, R., Isabirye, D., Nakyanjo, N., Nalugoda, F., Santelli, J. S., & Hirsch, J. S. (2022). When Coffee Collapsed: An Economic History of HIV in Uganda. Medical Anthropology, 41(1), 49-66.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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