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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 논평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4월 16일이 세월호 참사 3주기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아직 찾지 못한 이들도 금방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이제라도 사고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을 묻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다음 정부가 바로 해야 할 일이다. 오늘 우리는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 다시 물으려 한다. 참담한 사고를 겪고도 달라진 것이 없으면 그보다 허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세월호의 진실과 함께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 사회를 크게 흔들고 국가적 대응이 있었다고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초대형 재난이었던 메르스 사태와 경주 지진이 부정의 증거다. 최근 일인 구제역과 AI는 또 어떤가. 혼란과 부실, 무능력을 다시 경험했고 시스템의 부재를 확인했다. 시민이 체감하는 (무)변화는 설문조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 경향신문과 국회의장실이 의뢰하고 갤럽이 조사한 결과, 세월호 참사 후 안전이 얼마나 개선됐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1.3%가 ‘변화 없다’고 답했다. ‘악화된 편’ 8.3%, ‘매우 악화된 편’ 6.6% 등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한 사람도 14.9%였다(http://bit.ly/2pEgYoX).   비난과 비판을 듣는 당사자, 특히 정부 당국은 억울할지 모른다.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유명무실한 상태로 있던 ‘재난관리체계’를 많이 정비하고 개선했다고 항변한다. 공무원들이 위기관리 시스템, 매뉴얼, 훈련을 실적으로 내놓는 이유도 지난 3년의 성과를 알아달라는 뜻이 아닌가. 아마도 맞는 말이겠지만, 옳은 답변은 아니다. 해경이 해체되고 중앙정부 부처가 하나 새로 만들어질 지경이었으면, 그

서리풀 논평

‘지카’ 유행, 메르스 사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명정은 담론의 온상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설날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만큼이 될 수는 없으나, 이번 설에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지카’)도 자주 입길에 오르지 않을까 한다. ‘지카(Zika)’라는 낯선 이름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하다. 서른 개가 넘는 나라에 퍼진 데다, 감염 방법도 자꾸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가 문제라고 했으나, 성 접촉, 침, 소변으로도 옮길 수 있다니 문제가 간단치 않다. 어렵고 생소한 병 이름 때문에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임산부가 감염되면 ‘소두증’ 신생아를 출산할 수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에서만 3000명 이상의 임산부가 감염되었다니, 소두증이 뭔가 찾아본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길랭-바레 증후군 이야기도 나온다(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응 방법도 막연하다. 예방주사가 없고 병이 나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대증적’, ‘일반적’ 방법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경로가 모기 한 가지라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말라리아나 뎅기열, 뇌염을 봐도 모기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오는 여름이 걱정인데) 혹시 ‘박멸’은 꿈도 꾸지 마시라. 이쯤에서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러 가지가 닮은꼴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낯선 것인 데다, 아직 불확실한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 그렇다. 이 병에만 해당하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병의 원인과 특성이 다르니 당연하다. 여러 가지지만, 예방과 대책의 측면에서는 원인과 전파 경로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메르스는 주로 병원 안에서 전파되었지만, 지카는 모기에 물리거나 성관계 등을

서리풀 논평

메르스 파동 – 지도자가 해야 할 역할

  메르스 사태는 위기의 양상과 크기로 볼 때 이미 ‘정치’의 장에 진입한지 오래다(현실 정치가 아니라 넓은 범위의 정치를 뜻한다). 따라서 유례없는 정치적 지도력의 시험대, 그것이 이번 사태의 또 하나의 본질이다.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지도력 없이는 해결은커녕 더 큰 혼란과 위기를 불러온다는 데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는 크게 두 가지 리더쉽 유형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정치인(정무직 공무원)이 전문가(전문관료)의 도움을 받아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고, 다른 방식은 전문관료가 권한을 위임받아 전체 의사결정을 관장하고 정치 지도자가 이를 지원하는 형식이다(로라 칸(Luara H. Kahn), <누구의 책임인가? 전염병 유행, 생물테러,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의 지도력(Who’s In Charge?: Leadership during Epidemics, Bioterror Attacks, and Other Public Health Crises)> 바로가기).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두 가지 유형 가운데 대체로 후자가 더 많다. 즉, 전문가나 전문관료가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정치 지도자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 체계다. 로라 칸은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두 가지 가운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든 협력의 경험, 적절한 역할 분담, 정확한 의사소통, 상호 이해가 있으면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차분히 되돌아볼 여유가 없으므로 우리에게 어느 유형의 리더쉽이 더 나은지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태의 시작부터 치면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으므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정치적 지도력을 정비하는 것은 지금 이 시점에도 중요성이 줄지 않았다. 불확실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