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담론의 온상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이 설날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이유라고 한다. 그만큼이 될 수는 없으나, 이번 설에는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지카’)도 자주 입길에 오르지 않을까 한다.
‘지카(Zika)’라는 낯선 이름이지만, 충분히 그럴 만하다. 서른 개가 넘는 나라에 퍼진 데다, 감염 방법도 자꾸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기가 문제라고 했으나, 성 접촉, 침, 소변으로도 옮길 수 있다니 문제가 간단치 않다.
어렵고 생소한 병 이름 때문에 두려움이 더 큰 것 같다. 임산부가 감염되면 ‘소두증’ 신생아를 출산할 수 있다고 한다. 콜롬비아에서만 3000명 이상의 임산부가 감염되었다니, 소두증이 뭔가 찾아본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신경을 마비시키는 길랭-바레 증후군 이야기도 나온다(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응 방법도 막연하다. 예방주사가 없고 병이 나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대증적’, ‘일반적’ 방법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경로가 모기 한 가지라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말라리아나 뎅기열, 뇌염을 봐도 모기를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오는 여름이 걱정인데) 혹시 ‘박멸’은 꿈도 꾸지 마시라.
이쯤에서 메르스 사태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러 가지가 닮은꼴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낯선 것인 데다, 아직 불확실한 것이 적지 않다는 점이 그렇다. 이 병에만 해당하는 특별한 대책이 없는 것도 비슷하다.
물론 다른 점이 더 많다. 병의 원인과 특성이 다르니 당연하다. 여러 가지지만, 예방과 대책의 측면에서는 원인과 전파 경로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메르스는 주로 병원 안에서 전파되었지만, 지카는 모기에 물리거나 성관계 등을 통해 감염된다. 확산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다르다는 뜻이다.
우연하게 이어졌지만, 연속적이기 때문에 지카와 메르스와 비교될 수밖에 없다. 벌써 모든 국면에서 메르스의 기억이 불려 나오는 중이다. 이것은 과거인 동시에 미래, 디딤돌인 동시에 구속이다. 단지 회상이 아니라 기억은 알게 모르게 지카에 대한 대응을 지배할 것이다.
기억된 메르스는 좋은 교훈이 될까. 그렇게 되면 다행이나, 우리는 기억이 흔히 양면적으로 소비된다는 점을 경계한다. 기억과 이를 바탕으로 한 교훈은 갱신의 출발이 될 수 있지만, 또한 한번 (우연히) 익은 행동을 고집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메르스 사태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전자의 예라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격리는 후자의 예다.
기억의 양면성은 과거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과 직접 연관된다. 다시 메르스를 불러오면, 정보 공개는 어느 때보다 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 결과 어느 정도의 규범이 생겼다. 그 덕분에 지카가 유행하더라도 정보의 투명성은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 교훈의 진보성이다.
정보 공개에 비하면 ‘격리'(비감염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정확하게는 ‘검역’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를 둘러싼 기억은 조심스럽다. 사실, 격리는 제대로 논의하지도 못한 채 상황이 끝났다. 전파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되어야 강제 격리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기술적인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인 것’에 대한 논의는 더 부실하다. 예를 들어 격리되는 사람들의 인권 침해는 어떤 경우에 정당화될 수 있는지 하는 것.
공론이 없는 상태에서도 기억과 교훈은 확정적이되 편파적이다. 다른 일이 없다면 격리와 검역은 더 많고 더 엄격하며 더 신속해야 한다는 기억(교훈)이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메르스가 원형으로 남아 있는 한, 집단과 마을을 통째로 ‘분리’ 또는 ‘배제’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메르스를 기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경우는 또 있다. 그중 한 가지가 리더십이다. 메르스 사태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었다. 보건 당국의 수준을 넘는, 정부 차원의 리더십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교훈이었다.
하지만 리더십의 기억은 이질적이고 모호하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적어도 교훈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이런 우리의 기억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집단적 기억이 단지 ‘전시성’ 리더십이라면, 지카에 대응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여 지카에 대비하는 긴급 차관회의를 했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거의 일주일 전 일이다). 무슨 논의를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회의 준비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바쁜) 실무자만 고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그렇다면,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자 전시성 리더십이다. 그런 리더십의 기억을 지우고 다시 구성해야 한다.
또 다른 양면적 기억의 예는 ‘매뉴얼’. 제대로 된 지침이 없어 일선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메르스 사태의 한 단면이다. 한동안 곳곳에서 매뉴얼을 정비하고 새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질병관리본부가 2월 1일에 <2016년 메르스 대응 지침>을 배포한 것도 그런 노력의 결과이리라.
안타깝게도 메르스 매뉴얼로는 지카에 대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같은 기억을 호출하면 이런 매뉴얼을 또 만들어야 할 판이다. 이제 그것도 만든다 치고, 그러다 다른 감염병이 닥치면?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기억도 양면적이다. 고치고 재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대안을 자세하게 논의할 여유는 없지만, 시스템과 기초 체력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메르스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교훈을 모두 얻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평가를 해야 기억과 교훈을 다시 구성할 수 있다. 메르스에 그치지 않는다. 지카 역시 기억과 교훈의 새로운 대상이고,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이 지금부터 진지하게 활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