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전시성 보건의료 사업을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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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다. 광주광역시가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유치하면서 정부 문서를 위조했다는 사건을 말한다. 무슨 변명을 해도 이건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국제대회를 유치한다는 게 뭐라고, 혀를 차고도 남는다. 그러나 좀 과하긴 했어도 이제 와 광주만 탓할 수 없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국제 스포츠 행사를 경쟁적으로 유치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에서 열렸거나 곧 열릴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유니버시아드, 온갖 세계 대회가 익숙하다. 듣다 처음인 포뮬러원(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도 기억에 새롭고, 가장 최근에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 일로 치면 동계올림픽이 단연 으뜸이다.

이런 일이 진행되는 경과는 이제 마치 표준절차라도 만들어진 것 같다. 유치하기 전에는 온갖 장밋빛 전망에 애국심, 애향심이 모두 동원된다. 반대라도 할양이면 괜한 꼬투리잡기가 되기 십상이다. 그 다음 진행 역시 잘 알고 있는 대로다. 표를 파느라 동원하느라 모두가 나서야 한다. 주민은 물론이고, 기업과 학교도 당연히 힘을 보탤 수밖에 없다.

그 후의 결론도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 계획과는 달리 얼마나 빚을 졌는지,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적자 결산이 태반이다. 지난 5월 말 국회의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결과가 실상을 잘 보여 준다 (자료 바로가기).

6개 국제대회만 분석했는데도, 약 6조원의 중앙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한다. 요란하게 축하행사를 한 기억이 새롭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이 대표 격이다. 유치 과정에서 강원도는 알펜시아 리조트를 건립하여 2012년 말 현재 부채가 1조 215억원에 이르고, 연간 이자비용만도 500억원 이상 지출하고 있다.

전시성 사업과 후유증 때문에 두고두고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광주광역시는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때문에 내년까지 가용예산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한단다. 앞서 말한 강원도의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대회가 열릴 때까지는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궁핍한 살림살이를 감내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만도, 국제대회만도 아니다. 그 말 많은 요란한 청사, 물먹는 하마 꼴인 교통 시설, 수백 개의 지역 축제, 올레 길을 따라 비슷하게 만든 수많은 ‘걷는 길’. 닫은 진주의료원과 달리 천문학적 비용을 물고 있는 경남의 마창대교와 거가대교도 한 통속이다.

이미 적지 않은 사례가 있고 학습효과도 웬만큼 쌓였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간 것도 여럿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경제가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어느 곳 없이 경제가 어려우니 어떤 것이라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가릴 처지가 아니다. 그나마 이해할 구석이 있다. 온갖 축제니 둘레길이니 하는 것들을 그 동기만큼은 그래도 좋게 보려고 하는 이유다.

하지만 경제보다 더 큰 이유는 전시성 사업의 유혹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것이든 또는 다음 번 선거를 위한 것이든 정치가 더 크다. 그들에게 전시성 사업은 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노력이고 분투다.

그러고 보면, 눈에 보이는 큰 사업과 적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자체가 전시성 사업에 치우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오래 전부터다. 분야도 가리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곳 없이 다 비슷하다. 전시성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지자체의 정치는 아직 ‘얕은’ 민주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이 글의 초점이 아니어서 그렇지, 이른바 중앙 정치도 다르지 않다). 4년에 한 번, 투표와 선거로만 이루어지는 미숙한 정치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오로지 상징 자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일을 열심히 했다는 것, 힘이 있다는 것, 눈에 띄게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돈을 많이 따 왔다는 것. 여기에 차분하게 따지는 주민의 진정한 편익과 복리는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니 누구도 전시 행정의 유혹과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자체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자고 하면, 결정권자가 아마 이런 질문부터 던질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가 언제 나오는데? 이건 젊잖게 표현한 것이고 그야말로 당장 화끈한 것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보건의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점에서는 가장 강력한 전시효과를 발휘하는지도 모른다. 보건소를 동원하는 무료 진료는 가장 고전적인 것이다. 경로당과 노인정, 수해지역, 후미진 곳의 진료는 그래도 좀 낫다. 요즘은 철도역이나 시장, 다문화 가정, 나아가 해외진료까지, 대상과 내용도 참으로 다양해졌다.

한참 때는 많은 지자체가 비싼 건강검진 버스를 사서 장비를 갖추고 순회검진을 했다. 이제 유행은 좀 지난 것 같지만, 아직도 많은 지자체가 ‘건강버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공사의 적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건강버스는 손으로 만지고 경험할 수 있으니.

전시성 사업에 선심행정이란 말을 듣는 것이면 애당초 효과나 합리성 같은 것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주민들의 ‘가벼운’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때, 행정 관료가 순회진료와 건강검진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따지는 것은 위험하다(!)

중앙 정부와 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대책은 늘 비슷하다. 재정 제도를 개선하고 감독을 강화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효과와 효율에 기초해서 결정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앞서 말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처방도 크게 다르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처방은 과녁을 비켜 간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길들이느라 하는 소리라는 의심이 강하다. 따지고 보면 중앙정부 역시 같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4대강 사업이나 올림픽 유치, 국회에서의 지역사업 예산 내역을 보라). 게다가 전문가들의 기술적 처방은 흔히 중앙정부의 지침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그친다.

지자체의 정치를 빼고는 해결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기술적 처방만으로 효과 없는 전시성 사업을 없애기는 힘들다. 의사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강한 지역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급하다(지역정치를 ‘복원’한다고 할 뻔 했는데, 생각해 보니 복원할 경험이 거의 없다).

정치라고 하지만, 가끔 있는 선거에서 좋은 의원과 단체장을 뽑으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괜찮은 개인이 좀 더 많은 기회와 나은 공간을 줄 수는 있지만 그건 조건을 약간 더 좋게 할 뿐이다.

그보다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민주적 역량과 참여를 키우고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형식상의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넘어 실질적 참여와 민주주의가 성취되어야 한다. 그래야 일부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사업과 정책을 바꿀 수 있다.

지역 주민이 지방 권력에 개입하여 정책과 행정에 더 많은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구체적 목표다. 이는 선거와 투표를 넘어 일상적인 과제이며, 단지 제도 정치뿐 아니라 생활양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년 6월 4일이 지방선거일이다. 선거와 투표가 모든 것을 정하지는 않지만, 참여와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성장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가벼운’ 요구에 기초한 ‘얕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숙고와 토론에 바탕을 둔 ‘심층’ 민주주의로 나아갈 좋은 기회이다.

시간으로 치면 일 년도 채 남지 않았다. 선거와 투표를 꾸준히 진전하는 민주주의의 성장과 발전 과정으로 이해하면, 벌써부터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새로운 또는 오래 된 통로를 통해 참여의 싹을 띄우고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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