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겨레 신문 2013년 8월 14일자 ‘건강렌즈로 본 사회’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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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이란 기업이 더 나은 성과를 얻기 위해 기업의 소유구조나 운영체계 등 구조를 재편하는 경영 활동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는 이른바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 정리해고는 기업의 이윤을 지키고 기업에 투자한 주주들을 기쁘게 할지 모르지만, 해고 당사자와 그 가족의 생계는 물론 건강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미 수많은 국내외 학술 연구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쌍용차 사태’는 이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이 구조조정의 문제에서 가려져 있는 이들, 즉 대규모 정리해고라는 전쟁터에서 용케 살아남은 이들의 상황은 어떨까?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모드렉과 컬런 교수팀이 <사회과학과 의학>이라는 논문집에 발표한 연구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탐구한 미국의 알루미늄 생산업체 ‘알코아’는 2006년 당시 15개 주의 30개 공장에서 2만2000여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9년 대불황 시기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2010년에는 고용된 노동자 규모가 1만6000명으로 줄었다. 해고 규모는 공장마다 달라서 어떤 곳에서는 무려 40%의 노동자가 해고된 반면, 어떤 곳은 해고 인원이 채 5%가 되지 않았다.
이들의 연구에서는 해고되지 않은 ‘생존자’ 중에서 2009년 이전에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았거나 건강 자료가 불충분한 이들을 제외한 1만3393명을 분석 대상으로 정했다. 이후 이들이 주변 동료들의 정리해고 사건을 겪은 뒤 고혈압, 당뇨, 천식 혹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 우울증 등이 새롭게 발병했는지를 확인했다. 성별이나 나이, 월급제 혹은 시급제 여부, 원래의 건강 상태, 지역의 실업률 수준 등 평소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요소의 영향을 제거한 상태에서 분석한 결과, 소속 사업장의 정리해고 수준이 20% 이상으로 높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고혈압에 걸릴 가능성이 1.5배가량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반적으로 정리해고 ‘생존자’가 해고자에 견줘 평소 건강 상태가 양호했고 이미 건강 문제가 있는 이들은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보수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또 월급제보다는 주로 생산직인 시급제 노동자의 해고 가능성이 더 높았는데, 정리해고가 심한 사업장에서는 월급제 노동자의 당뇨 발생 위험도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커졌다. 이 결과는 정리해고가 해고 당사자는 물론 ‘생존자’의 건강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이를 고용불안정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 건강 생활습관의 변화, 노동조건에 대한 감내 때문인 것으로 추정했다. 결국 정리해고는 그 대상자와 생존자 모두에게 해롭다. 기업이 구조조정의 손쉬운 수단으로 정리해고를 남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권세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영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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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읽어보면 좋을 자료들 *
1. 위에 소개한 논문의 출처는 아래와 같습니다.
Sepideh Modreka, Mark R. Cullen (2013) Health consequences of the ‘Great Recession’ on the employed: Evidence from an industrial cohort in aluminum manufacturing. Social Science & Medicine, 92:105-113. (바로가기)
2. 국내 관련 연구자료
1) 구조조정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 / 건강과대안 이슈페이퍼 2011년 4월 – 바로가기
2)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조사 보고서 / 녹색병원·노동환경연구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금속노동조합,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2011년 4월 – 바로가기
3)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을 계기로 본 정리해고 제도의 개선방향 / 김남근(2012), 노동법연구, Vol 33, 247-291 – 바로가기
4) 국제노동브리프 2012년 3월(Vol.10, No.3) –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