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증세 논란에 대응하는 복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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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곧 다시 떠오를 것이 틀림없다.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니 앞으로도 논쟁을 피하기 어렵다.

우선 이번 논란을 간단하게 정리하자.

세제 개편의 핵심이 근로소득의 소득 공제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은 다들 아는 대로다. 기본적으로 소득공제를 줄이고 세액공제로 전환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그동안 소득공제 혜택이 고소득층 중심이었으니 어차피 손을 봐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지적한 대로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담을 올리는 문제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다. 진작부터 증세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실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세금폭탄’이란 비판에 개편안은 침몰했다. 허겁지겁 정부가 다시 내놓은 안은 반발을 피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미시적 조정에 그치다보니 미봉책을 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논란을 완전히 없애기도 힘들게 생겼다. 결과적으로 증세를 둘러싼 논란에 불을 지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고위공직자의 오만한 표현과는 달리, 세제 개편안은 거위의 깃털을 뽑은 것이 아니라 심장을 찔렀다.

세금에 민감하고 작은 손해에도 반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느 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세금은 보통 사람들의 생활에 직결된 가장 민감한 정치 문제였다. 한국사 곳곳에 펼쳐진 그 수많은 민란들이 바로 세금을 둘러싼 것이 아닌가.

공무원 편에서 굳이 변명하자면, 어차피 터질 게 터진 것이긴 하다. 증세가 복지 공약의 재원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정부 출범 초기, 증세 없는 복지를 주창하는 순간 증세와 복지는 한 묶음이 되었다. 이제 와서 ‘디커플링’은 불가능하다. 증세 논란이 다시 복지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복지국가 또는 복지 확충이라는 맥락 없이 세제나 증세를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다시 확인해 두자.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전제하면, 증세는 피할 수 없다.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지출 구조를 합리화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의 공통된 합의다. 한 마디로, 증세 없는 복지국가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길게 따지지 않더라도 누구나 예상하던 결론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결론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누가 얼마나 어떻게 더 내야 하는가. 세금과 복지 모두 모른 체 할 수 있는 노릇은 아니다.

세금을 걷는 문제는 두 가지만 말하는 것으로 그친다(세금 폭탄이라는 악의적 표현은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먼저, 조세 정책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한국의 세정이 아직도 공평한 과세가 아니라 세수 확보에 초점이 있다는 것은 유명하다. 세금의 공평성이란 패러다임이 확립되지 않는 한, 어떤 조세 개편도 숨은 배경을 읽으려는 눈초리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책결정과 집행의 투명성과 도덕성도 빼놓을 수 없다. 돈을 받고 재벌기업의 세금을 깎아주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질릴 정도다. 19명의 역대 국세청장 가운데에 8명이 구속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고 한다. 형편이 이런데도 다들 기꺼이 세금을 내겠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이처럼 조세 정책을 비판하고 신뢰를 문제 삼아도 당장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또한 세금 폭탄을 ‘복지 기여’ 또는 ‘집단 구매’라고 달리 은유해도 마찬가지다. 그 뒤에 숨은 이익의 각축, 그 적나라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복지 또는 복지국가는 걷은 세금을 쓰는 문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둘은 따로 뗄 수 없다. 부인하고 싶어도 엄연한 현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처음 계획보다 세수가 모자라니 복지 공약을 거두어들이자는 소리가 득달같다. 자칫 증세 논란에 밀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복지가 더 후퇴할 판이다. 그냥 걱정이 아니다. 약속된 복지는 당장의 세금에 비해 멀다. 바로 나나 우리 가족에게 꼭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공약은 본래 그런 것“이라는 허약한 정치적 뒷받침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시 복지국가의 힘을 벼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향과 기본 전략도 중요하다. 재원의 종속 변수로서 복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독립항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복지의 논리와 힘을 바탕으로 조세를 압박하는 길. 희망을 버리기는 이르다. 무엇보다 여론과 의식이 복지 확대에 우호적이다. 지난 16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세금을 1년에 20만원 정도 더 내더라도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다 (프레시안 기사).

분명 진지하고 믿을 만한 것이지만, 아직은 도덕이고 규범일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당장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이 동의한 그 복지의 현실 기반을 구성하는 일이다. 그것이 없으면 복지에 대한 추상적 동의는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힘이 되기까지 그 기반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즉자적인 공약 후퇴론, 재정에 종속된 축소 불가피론에 어떻게 맞설까. 복지만큼이나 추상적이고 그만큼 멀어 보였던 민주주의가 현실의 기반을 키워온 경과를 참고하자. 그게 너무 멀다면 최근의 무상급식 사례도 괜찮을 것 같다.

먼저 분명히 해 둘 일이 있다. 어느 나라에서든 세금과 복지는 권력관계의 균형을 반영한다. 어느 세금을 몇 퍼센트나 올리고 공제를 얼마 하는지는 언뜻 기술적 문제로 보이지만, 거의 전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영역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권력과 정치는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한 집단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더욱 두드러질 증세 논쟁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돈 걱정이 아니라 확장된 복지 ‘운동’이다. 운동은 고단한 현실을 드러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미래를 앞당겨 형상화하는 활동을 말한다. 무엇보다 사회적 관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운동은 사람들(참여자든 아니든)의 생각을 만들고 변화시킨다. 세금까지 포함해서, 변화와 발전을 위한 기초 조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미 적지 않은 시도와 축적된 경험이 있다.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지만, 기초생활보호법 제정 운동이 그런 예다. 이 운동은 시혜적 성격을 면하지 못했던 공공부조가 권리(아직 부분적이지만)가 되게 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는 ‘주어지는’ 정책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중요한 진전이다.

한참 전의 건강보험 통합 운동도 비슷하다. 건강보험, 나아가 한국의 복지체계는 이 운동을 통해 형평성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자산으로 얻었다. 개인과 사회 모두 형평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를 더 보탠다. 이들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복지 운동은 보편적 지향, 즉 한국 사회를 더 나은 삶의 공간으로 개혁해 나가는 모든 노력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넓은 범위 때문에라도 대부분 영역에서 복지 운동의 과제와 만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이런 것이다. 보편의 시각에서 복지를, 복지의 시각에서 보편을. 다시 강조하지만, 세금과 복지는 정책 테크닉과 관료적 전문성을 한 걸음에 넘는다. 불가피한 증세 논쟁의 시기에 기술화, 전문화, 정책화 경향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모든 영역에서 정치와 운동으로 복지 의제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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