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논평

부정부패를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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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절전은 뜨거운 여름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냉방은커녕 조명까지 끄고 일하는 공기관 직원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한편의 소극이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다른 대책 없이 몇 년 째 절전만 내세우는 정부라니.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둘러싼 비리가 짜증을 보태는 데에 크게 한 몫을 했다. 말마따나 무슨 양파 껍질 까기도 아니고 파면 팔수록 그동안 숨겨진 실상이 참 볼만하다. 이제 지난 정부의 권력 핵심까지 얽혀 있다니, 해도 너무 한다 싶다.

어디 원전만 그런가, 4대강 사업도 꼭 같다. 그 사이에 모든 국민이 경험으로 갈고 닦은(?) 상식의 범위 안에 있다. 대형 국책 사업에 뒤따르는 부정과 비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또 다른 예를 찾는 것도 쉽다. 지난 정부가 자원 외교에 2조를 낭비했다는 보도 같은 것. 용감하게 미리 예상하자면, 머잖아 부정과 협잡을 수사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래저래 보통 사람들은 마음 공부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현 정부가 예정하고 있다는 후반기의 ‘고강도 사정’을 응원할 생각은 없다. 원전과 4대강 사업, 자원외교가 다 마찬가지지만, 큰 비리와 부정은 꼭 그 다음 정부에서야 드러난다. 반대는 더구나 아니지만, 흔쾌하게 칭찬하기도 어렵다.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감사원이 모두 한 통속이다. 약속이나 한 듯 뒤늦게 ‘비리 척결’에 나선다. 권력기관이 생명을 부지하는 타고난 기술이라는 비아냥거림을 어찌 가볍게 들을 수 있을까. 뉴스거리가 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덩치 큰 부패는 이처럼 현실 정치다.

관심이 달라서 그렇지 거창한 것만 있을 턱이 없다. 부정과 부패는 범위가 넓고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기왕에 정치로서의 부패를 말했으니, 무엇을 부정과 부패로 볼 것인지는 잠시 미루어 두자. 원인부터 먼저 따지면 무엇이 부정이고 부패인지 혼란스럽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부패의 그 다음 원인은 제도로, 인허가를 둘러싼 문제가 가장 자주 거론된다. 규제완화와 시장친화적 정책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바로 그 항목이다. 공무원이대부분 주인공 노릇을 한다.

그 다음이 이른바 ‘개인적’ 이유. 무엇이 되었든 개인이 비윤리적이고 나빠서 벌어진 일이라는 소리다. 같은 제도와 구조 속에서도 어떤 이는 그렇고 다른 이는 그렇지 않다고, 결국 개인이 문제라고 논박하는 것을 많이 본다.

이제 무엇을 부패로 볼 것인지로 돌아가자. 흔히 말하는 부패는 대부분 돈 문제, 특히 뇌물이라고 부르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만큼 중요한 것이 없을 테니 상식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파악이다.

그러나 이런 기준은 실제 유용하긴 하지만, 너무 좁은 것이 탈이다. 돈이 걸려 있지 않은 무형의 이익도 많다. 예를 들어 사람을 뽑을 권한을 가진 사람이 친구나 상사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뇌물 없이도 부패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국제투명성기구는 개인(또는 개별 집단)의 이익을 위해 주어진 힘(권력)을 잘못 쓰는(오용하는) 모든 행위를 부패라고 한다. 부패의 뜻이 한결 넓어진다. 그저 관행이나 도리, 인정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살펴볼 일이다.

부패의 뜻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정의를 명확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보다, 뜻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달라진다.

할 수 있는 권한이나 힘을 이용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것, 전부가 부정이고 부패다. 꼭 원전이나 4대강 정도가 아니어도, 그리고 인허가나 자사고의 입학생 선발이 아니어도 그렇다.

이런 부정부패의 한국적 상황이 어떤지는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떤 잣대나 표현을 동원해도 한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교적 좁은 뜻으로 봐도 그러니, 체감하는 부패의 정도는 훨씬 더 심할 것이다.

그래도 대표적인 지표로 자주 거론되는 것 하나만 소개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가 그것이다. 한국은 2012년 조사에서 전체 45위, OECD 가입 34개국 중에서는 27위 수준을 차지했다 (바로가기). 이 수준이 한심하다는 것은 대통령도 입에 올릴 정도니 아마도 맞을 것이다.

이제 보건의료 차례다. 그 사이 그리 많은 논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보건과 의료는 세계적으로도 부패를 따지는 핵심 영역 가운데 하나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보건과 건강 발전을 저해하는 핵심 이유의 하나가 부패라는 시각이 많다.

부패가 그냥 기분 나쁘고 분한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주목하자. 2006년에 출간된 모린 루이스의 보고서(바로가기)를 참고하면, 한 나라의 부패수준은 영아 사망, 낮은 예방접종률, 저체중아 출산 등과 무관하지 않다(여기서는 주로 개발도상국 얘기다).

한국에서 보건의료 부패 문제의 핵심은 단연 건강보험이 차지한다. 그 가운데서도 관심은 진료 비용을 둘러싼 것이다. 특징적으로 이 문제는 보는 시각이 판이하게 갈라져 있다. 문제의 정의와 문제의 크기(양과 질 모두), 원인, 해결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다.

여기서 건강보험을 둘러싼 구체적인 부패의 양상은 다루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에 해결방법도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만 지적해 둔다. 정부와 건강보험 당국은 주로 개인을 탓하는 것에 비해, 의료인과 의료기관은 제도에 초점을 맞춘다.

건강보험, 그 중에서도 진료비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돈 문제인데다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분명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하면 부패 문제는 건강보험 진료비의 영역을 훌쩍 넘는다.

근래에는 약의 리베이트가 주목을 끌었지만, 그것만도 또 아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말하는 ‘힘’과 ‘이익’을 넓게 해석하면 생각하기 쉽다. 의사 결정의 모든 층위, 대부분의 활동 영역, 결정과 행동에 관계되는 대부분 참여자가 부패의 주체가 될 수도 그리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괜한 일로 문제를 키운다? 굳이 없는 문제를 키우자는 것이 아니다. 귀한 자원과 노력, 많은 사람들의 선의가 부패 때문에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보험료와 세금을 더 내도 다 나은 의료와 건강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사사로운 이득을 채우느라 헛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를 삼는 가장 중요한 동기다.

이런 부패를 줄이는 것은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모든 부패에는 삶의 ‘경제’와 ‘생활양식’이 한 몸처럼 붙어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로 불거지는 것은 그나마 쉬운 면이 있다. 사회적 삶의 체계에 ‘뿌리박은’ 것이 훨씬 어렵다.

개념적 차원의 차이를 무시하고 말하면, 지금까지 시도한,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인, 해결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제도를 바꾸는 것, 기술로 막는 것, 그리고 개인을 처벌하는 것이다. 국제기구도 개별 정부도, 시민운동도 주로 이것을 말해 왔다.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모든 층위에서 민주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는 제도와 기술이 없어서 원전 비리, 4대강 비리가 생겼을까. 잊을 만하면 다시 나오는 떡값과 스폰서는 더 어떤가. 다시 말하지만, 모든 층위에서 다 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다시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방법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보완하는 잠재력을 가졌다. 한 걸음 더 나가자. 제도, 기술, 처벌은 서로 다른 것 같아도, 사실 넓은 의미의 ‘제도 모형’이다.

제도만으로는 모자란다. 가치와 사람이 빠져 있고, 그것을 작동하게 하는 동력이 허술하다.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형식화된 제도를 넘는 것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참여 모델이다. 주민과 시민의 참여와 민주적 의사결정,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민주적 체계가 부패를 방지하는 독립적 효과를 갖는다. 이 과정을 통해 ‘뿌리박힌’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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