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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사람의 성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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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현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처음 본 사이든 가까운 사이든 대화가 멈추는 순간이 있다. 이때 16가지 성격유형은 대화의 빈틈을 메우고 새로운 대화주제를 발굴하는 데 쓸만한 도구다. 저 사람은 왜 저러나 의아한 순간에 이해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용함도 갖췄다. 이분법은 넘어서야 하고 유사과학은 경계해야 한다지만, 이상한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른 사람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도구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겪은 부당함을 토로하는 대화를 통해 어떤 사람은 슬픔을 반으로 나눠지며 공감하고 누군가는 슬픈 사람이 둘이 되지 않도록 대안을 골몰한다. 방식은 달라도 사회적 지지는 차별을 극복할 힘이 되어준다.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한다. 차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은 사회적 지지가 차별로 인한 건강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는데 기여함을 밝혀왔다. 하지만 차별의 위험은 당사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타인이 겪은 차별을 보고 듣는 간접적 노출로 인한 ‘대리차별(Vicarious discrimination)’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종차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스트레스가 심리적,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는 ‘대리인종차별(Vicarious racism)’ 개념에서 출발한 연구들은 차별의 영향이 생애주기에 따라, 혹은 세대 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드러냈다. 배우자나 자녀가 차별을 경험하면 우울이 증가하거나 주관적 건강이 악화될 수 있고, 유년기 대리인종차별 경험이 성인이 되었을 때 여성의 조산과 산후우울증, 자녀의 출산 시 저체중 위험이 높아진다.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인종과 장애 같은 특정 요인에 편견을 심어주거나 이를 빌미로 부당하게 대우하는 미세하고도 일상적인 차별 경험이 가족이나 지인을 넘어 불특정 다수에게 매우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게 되었다. 플로리다 대학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종차별 관련 스트레스 요인과 건강을 연구하던 연구진은 이 점을 지적하며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건강형평성 연구에서 고려해야 할 대리차별의 양상을 발표했다(☞논문 바로가기: 대리차별의 사회적 정형화: 건강 형평성에 대한 시사점).

 

연구진은 차별이 발생한 상황, 직접 차별을 당한 당사자와의 관계, 간접 차별의 영향요인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대리차별의 사회적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때 간접 경험의 경로는 개인적 인간관계로 한정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대중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대리차별과 구별했다. 분석을 위해 연구진은 미국 플로리다주 주도인 탤러핼시에서 지역사회기반 참여연구를 수행하며 수집한 자료를 활용했다.

 

자료는 2011년 7월부터 2012년 8월까지 지역에 거주하는 25세부터 65세 성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참여자 178명에게서 수집되었다. 참여자 모집에는 총 세 단계를 거쳤는데, 인종과 물질적 결핍에 따라 집단을 나누고, 각 집단에서 무작위로 뽑힌 가구에서 다시 1명의 가구원을 무작위로 선별했다. 최종 응답율은 49.3%로 전체 참여자의 67%가 여성이었고 평균연령은 41.8세였다. 참여자들은 일상적 차별(everyday discrimination) 경험, 직접 차별을 경험한 사회적 영역(학교, 경찰, 직장, 등), 자신을 포함해 배우자, 자식, 손자녀, 친구, 친인척 등 주변 사람들 중 차별을 경험한 당사자에 대해 응답했다. 그 외에도 차별에 관련된 12개 요인과 아동기 주양육자, 현재 부모의 생존여부, 부모와의 교류정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수와 그들과의 교류정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분석 결과, 참여자들에게 있어 인종은 통계적으로도 인식 상으로도 가장 흔한 차별 요인이었다. 모든 유형의 차별에서 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경험해보았다고 응답했지만 그 중에서도 남성은 여성보다 일상적 차별, 직접적인 차별, 대리차별 경험이 유의하게 높았다. 직접 차별보다 대리차별을 경험한 비율은 더욱 높았고, 연령에 따라 대리차별 경험율이 가장 높은 세대는 40대 후반이었다. 전체 참가자의 5명 중 1명 이상은 직접 차별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대리차별은 경험해보았다고 응답했다.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차별을 경험한 상황의 성별 차이는 뚜렷했다. 여성은 직업 관련 차별(29.66%)이 가장 많았고 경찰과 관련된 차별(4.83%)은 가장 적었다. 남성은 직업(14.71%) 외에도 경찰(19.12%)과 법원(13.97%) 관련 차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성은 남성보다 아동의 차별경험을 더 자주 접하는 만큼 학교가 대리차별의 장소로 꼽힌 비율도 더 높았다. 한편, 시가나 처가에서 경험한 차별에 대한 소식은 여성이 더 많이 접했지만, 친인척이 차별당한 경험을 접한 비율은 남성에게서 더 많이 보고되었다. 이는 가족관계가 차별이 발생하는 상황이자 차별경험을 공유하는 사회망으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리차별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본 연구진은 본인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사회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인간관계란 대리차별으로 인한 스트레스 요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대리차별의 가능성은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일상적 차별을 많이 경험할수록, 부모와 소통하고 지낼수록, 친구들과 자주 소통할수록, 모친 단독인 경우보다 양부모가 모두 주양육자인 경우에 증가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당사자가 직접 경험한 차별에 한정한 건강형평성 연구에서 차별의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오분류 편향이 발생할 위험을 경고한다. 대리차별은 우리가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 그것이 곧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개념이다. 나아가 연구결과는 젠더규범에 따른 대리차별의 성차를 드러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은 자신을 비롯한 친인척과 지인들이 겪는 공권력에 의한 차별을,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차별을 체감하고 있었다. 층층이 쌓인 차별의 구조는 개인이 교육 등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하는 방식으로 차별을 회피하거나 건강을 증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구진은 차별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집행과 직장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법집행과 직장에 관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적 합의라는 단서에 의해 좌절되는 동안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제도마저 누군가를 차별할 구실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강타한 성격유형검사만 해도 차별을 경험한 사람을 방치하거나 조롱한다는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차별은 사람의 성격이 아니다.

 

*서지정보

Quinn, E. B., Ross, J. D., Boston, P. Q., et al. (2023). The social patterning of vicarious discrimination: Implications for health equity. Social Science & Medicine, 116104.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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